현재 페이지 경로
기능버튼모음
본문

국가유산 도난 정보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도난] 울산 신흥사 부근 석조문화재[우이당 대사 부도] 1점
지정종별
비지정문화재
도난일자
2010년 여름 이전
수량
1점
소유자
국유
도난장소
울산 북구 대안동 산 195 신흥사 전방 500m 능선
도난등록일자
2012-11-25
시대
조선
규격

미상

◎ 연화문을 새긴 사각 몸돌과 지붕돌, 기단석 포함 개략 높이 120~130㎝ 정도이며, 자연석 위에 앙련문이 새겨져 있는 기단돌은 3개로 조합 구성. 특히 사각 몸돌에는 특이하게도 움푹 파인 큰 홈 답사 당시에는 혹 사리공이지 않을까 하는 견해가 있었으나 문확을 재활용한 부도로 추정됨이 있는 면과 다른 면에는 연화문이 새겨 있으며 또다른 면(念哲 愚爾堂 大師 康熙 辛巳年)에는 부도의 주인공 법호와 연호가 각자되어 있음

◎ 당시 지붕돌은 뒤집혀 나뒹굴고 있었으나 함께 세워 본 바, 연화문이 새겨진 몸돌 크기에 맞춘 듯 하고 3개로 구성된 아래 기단돌은 앙련문이 새겨져 있었으며 몸돌에 새겨진 각자를 확인하고 현장에서 판독함.

◎ 각자 서체가 지척 운흥사지에 남아 있는 석조(石槽) 명문들과 유사한 점을 착안 색출하던 바, 운흥사지에서 출토된‘건물지2 명문와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운흥사 발굴보고서》p94~98 ’에 남아있는 인명과 동일한 인물로 추정함.

◎ 곧 명문기와에 보이는‘佛糧都監深海直舍 念哲’과 동일인으로 추정되고 말년에는 인근 신흥사에서 입적한 것으로 보임. 따라서 성종 이후 쇠락하였으리라 여겨지는 운흥사 국사편찬위 제공 《조선왕조실록》 成宗실록 77卷, 8年(1477 丁酉 / 명 성화(成化) 13年) 閏2月 21日(己未) ‘충청도 관찰사 양순석에게 운흥사의 중 상능을 잡아 계문하게 하다’ 참조 사세를 감안하더라도 부도의 주인공은 운흥사 명문와에 보이는 雍正 2년 앞의 주 3) 참조 (1724년) 당시 우이당은 불량도감 佛糧契에 대한 논고는 한상길 「朝鮮後期 寺刹契 硏究」2000 東國大學校 박사학위논문 참조 이었던‘염철’로 운흥사 불공양을 주도한 책임자로 사료됨.

첨부파일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안전기준과 김진만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