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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궁궐의 현판과 주련-창덕궁_성정각 권역]
등록일
2010-08-30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4897








5. 성정각誠正閣 권역

 






5-h-1 영현문迎賢門

 

위치와 연혁 : 지금은 내의원이라 부르는 성정각의 남문이다. 『궁궐지』의 「창덕궁·성정각」조에 “성정각은 세자가 공부하는 곳이다. 그 곳의 남문을 영현문이라 한다.”<원전 1>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성정각이 세자가 공부하는 곳이었다는 것은 문의 편액을 해석할 때 도움이 되는 중요한 단서이다.

 

뜻풀이 : ‘영현(迎賢)’이란 ‘어진이를 맞이한다’는 의미이다. 세자가 공부하는 장소이므로, 어진이를 맞아들여 공부에 힘쓰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제작 정보 : 지금 영현문 안쪽 본채에는 현판이 붙어 있지 않고, ‘조화어약(調和御藥)’, ‘보호성궁(保護聖躬)’이란 편액과 함께 마당에 약을 찧는 절구가 있으므로 내의원으로 불리고 있으나, 이것은 순종 때의 일시적 조치였으므로 성정각으로 회복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5-h-2 보춘정報春亭



 

위치와 연혁 : 성정각의 동쪽 누각에 남향하여 붙은 현판이다. 『궁궐지』에 “희우루와 보춘정은 성정각의 동쪽 누각인데 동쪽이 희우, 남쪽이 보춘이다.”<원전 2>라고 하였다. 『동궐도』에도 표시되어 있다.



 

뜻풀이 : ‘보춘(報春)’은 ‘봄이 옴을 알린다’는 의미이다. 봄은 동쪽을 상징하고 성정각이 춘궁(春宮: 왕세자)이 독서를 하는 곳이므로 ‘춘(春)’ 자가 중의적으로 쓰인 듯하다.






5-h-3 희우루喜雨樓


 

위치와 연혁 : 성정각의 동쪽 누각에 동쪽을 향해 붙은 현판이다. 『궁궐지』에서는 “희우루와 보춘정은 성정각의 동쪽 누각인데 동쪽이 희우, 남쪽이 보춘이다.”<원전 3>라고 하였고, 『동궐도』에서도 비슷하게 기록했다. 『홍재전서(弘齋全書)』 1) 54권에 「희우루지(喜雨樓志)」가 있다. 그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정유(1777, 정조 1)년에 매우 가물었는데, 이 누각을 중건하기 시작하자 마침 비가 내렸고, 또 몇 개월 동안 가물다가 이 누각이 완성되어 임금이 행차하자 다시 비가내려 희우(喜雨)라는 이름을 지어 기념했다는 내용이다.<원전 4>



 

뜻풀이 : ‘희우(喜雨)’는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기뻐한다’[喜雨]는 뜻이다. 송나라 소식(蘇軾,1036~1101년)이 「희우정기(喜雨亭記)」2)를 지은 이래 ‘희우’는 정자의 이름으로서 각지에서 애용되었다. 창덕궁 주합루 뒤에도 희우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다.


 

제작 정보 : ‘喜(희)’ 자는 속자로 써서 하반부 점획(點劃)이 하나 생략되었으며 ‘樓(루)’ 자도 속체로 써서 정자(正字)와는 모양이 많이 다르다.






5-h-4 집희緝熙


 

 

위치와 연혁 : 예전에 왕세자가 거처하던 관물헌(觀物軒) 건물에 걸려 있는 어필 현판이다. 『동궐도』에는 지금의 이름이 아니라 ‘유여청헌(有餘淸軒)’으로 표기되어 있다.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년)가 세자로 책봉된 다음 이 곳에서 서연(書筵) 3)을 한 일이 있고, 1874(고종 11)년에는 순종이 이 곳에서 탄생하였다. 1884(고종 21)년 갑신정변 때에는, 사방을 한눈에 살필 수 있어 수비가 용이하다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개화파가 고종을 모시고 이 곳으로 피신하여 청나라 군사들을 대비하기도 하였다.

 

뜻풀이 : ‘집희(緝熙)’란 ‘계속하여 밝게 빛난다’[緝熙]는 의미이다. 『시경』 「대아(大雅)·문왕(文)」편 4)에 “심원하신 문왕이여, 아! 계속해서 밝히시고 공경하시도다.”<원전 5>라는 구절에서 온 말이다. 주자(朱子, 1130~1200년)는 “집(緝)은 이어지는 것이요, 희(熙)는 밝은 것으로 또한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원전 6>라고 하여 ‘임금[文王]의 밝은 덕이 계속하여 빛난다’는 의미로 풀이하였다.

한편 경희궁(慶熙宮)에도 집희당(緝熙堂)이 있었는데, 영조는 「집희당시(緝熙堂詩)」를 지어 “이 전각은 옛날 세자의 집이라, 집 안에 훌륭한 작품들이 새롭구나. / 계속하여 밝게 빛나니, 어진 이를 높이어 날로 더욱 친하도다.”<원전 7>라고 읊었다. 집희당은 본래 세자의 거처이고 그 뜻이 ‘계속하여 밝게 빛난다(繼續光明)’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제작 정보 : 집희라는 현판에 ‘갑자년(甲子年)’, ‘어필(御筆)’이라 덧붙여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재위하는 동안 갑자년이 들었던 영조·순조·고종 가운데 어느 임금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고종이 즉위 원년에 15세의 나이로 글씨를 썼으므로 다소 서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5-h-5 조화어약調和御藥·보호성궁保護聖躬


 

위치와 연혁 : 현재 성정각 앞 행각에 ‘조화어약’과 ‘보호성궁’이란 편액이 나란히 북쪽을 향하여 걸려 있다. 본래 창덕궁 내의원은 인정전 서쪽의 약방 자리에 있었다. 고종 때 내의원을 전의사(典醫司)로 개편하였고, 순종 때 창덕궁을 개조하면서 내의원이 헐리어 현판과 도구들을 이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뜻풀이 : ‘조화어약(調和御藥)’은 ‘임금이 드시는 약을 조제한다’는 의미이다.

‘보호성궁(保護聖躬)’은 ‘임금의 몸을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성(聖)’은 임금을 뜻하며 ‘궁(躬)’은 몸이라는 뜻이다.





 

제작 정보 : 근래에 나온 일부 책에서 이 현판들을 정조의 어필이라고 본 경우도 있지만, 임금이 스스로 ‘보호성궁’이라고 했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한경지략』에서는 원해진(元海振)이 ‘화제어약(和劑御藥)’ ‘보호성궁(保護聖躬)’여덟 글자를 썼다고 했다.<원전 8> ‘화제어약’은 ‘조화어약’을 착오로 잘못 쓴 것으로 보이며 원해진은 인적 사항 미상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명필로 유명한 원진해(元振海, 1594~1651년)를 잘못 표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5-h-6 자시문資始門



 

위치와 연혁 : 중희당(重熙堂)의 서쪽에 위치했던 문이다. 지금은 중희당이 없으므로 마치 관물헌, 즉 집희의 출입문처럼 되어 있다. 『궁궐지』에는 “중희당이 관물헌 동쪽에 있는데, 1782(정조 6)년에 건립되었고, 동쪽이 중양문(重陽門), 서쪽이 자시문이며, 편액은 정조의 어필이다.”<원전 9>라고 되어 있다.

 

뜻풀이 : ‘자시(資始)’는 ‘만물이 힘입어 비롯한다’는 의미이다. 『주역(周易)』에서 나온 말로 건괘(乾卦; )의 자시(資始)가 곤괘(坤卦; )의 자생(資生)과짝을 이룬다. 「건」의 단사(彖辭) 5)에, “위대하다,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의뢰하여 시작하니[資始], 이에 하늘을 통합하였도다.”라고 했고, 「곤」의 단사에는,“지극하다 곤의 원(元)이여, 만물이 의뢰하여 생겨나니[資生], 이에 순히 하늘을 받든다.”라고 했다. 주자의 풀이를 종합하면, ‘건원은 천덕(天德)의 큰 시작[大始]이므로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 모두 이에 힘입는다. 자시의 시(始)는 기(氣)의 시작이고, 자생의 생(生)은 형(形)의 시작이다.’<원전 10>라고 하였다.


 

제작 정보 : 현재의 현판이 실제 정조가 직접 쓴 글씨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5-h-7 망춘문望春門



 

위치와 연혁 : 관물헌 뒤의 후원으로 이어진 길가에 남쪽 방향으로 난 문이다.『동궐도』에는 희정당의 동문으로서 높은 기단(基壇) 위에 있어서 후원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되어 있다.

 

뜻풀이 : ‘망춘(望春)’이란 ‘봄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동궐도』에 그려진 대로 동향이 되어야 춘(春)의 의미와 어울린다. 망춘은 중국의 수·당 시대 이래로 전각이나 정자의 이름으로 즐겨 사용하였다.

 

제작 정보 : 현판에 쓰인 ‘?(망)’은 ‘望(망)’의 속자이다. 동궐도에는 희정당의 동문으로서 동서 방향으로 그려져 있으나, 현재는 남향으로 되어 있어 방향이 전혀 다르다. 지금 망춘문 바로 아래에 현판이 걸리지 않은 문이 동향으로 나있는데, 『동궐도』 상으로는 이 문이 망춘문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자리는 응경문(凝慶門)이 되어야 할 듯하다.






5-h-8 동인문同仁門



 

위치와 연혁 : 희정당의 동쪽 문으로 경사진 계단 위에 위치해 있다. 현재 집희라는 현판이 걸린 건물과 연결되어 있다.



 

뜻풀이 : ‘동인(同仁)’이란 ‘차별 없이 인애(仁愛)를 베풀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인덕(仁德)을 함께 행한다’는 의미도 있다. 동쪽이 오행상 인(仁)에 해당하는 방위이므로 동인이란 의미와 잘 어울린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20에 “이치가 하나로부터 각기 나누어지므로 비록 차별 없이 인애로 대해주나, 스스로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원전 11>고 하였다. 한(漢)나라 황석공(黃石公) 6)이 쓴 『소서(素書)』의 「안례(安禮)」에서는 “인을 같이하면 서로 근심하고, 악을 같이하면 서로 당파를 짓는다.”<원전 12>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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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재전서』는 정조의 문집이다. 시문·윤음·교지 및 기타 편저를 모았다.

2) 「희우정기」는 소식이 1062년에 부풍이라는 고을에 관리로 부임했을 때 지은 정자를 희우정이라고 부른 내력을 쓴 글이다.

3) 서연은 황태자나 왕세자를 가르치는 강의를 일컫는다. 강의는 조강, 주강,석강이 있었다.

4) 「문왕」은 대아편의 첫 시로, 문왕이 천명을 받아 주나라를 건설한 것을 기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5) 단사는 단전(彖傳)이라고도 하며,『주역』 64괘의 뜻, 덕, 괘문, 괘명 등을 통괄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6) 황석공은 중국진(秦) 나라 말의 은사(隱士)이자 병법가(兵法家)이다. 장량(張良)에게 병서(兵書)를 전해 주었는데, 장량은 이 병서를 읽고서 한나라 고조의 중국 통일을 도왔다고 한다.


 

<원전 1> 『궁궐지』, “春宮 胄筵之所也. 南曰迎賢門.”

<원전 2> 『궁궐지』, “喜雨樓報春亭, 卽誠正閣之東樓. 東曰喜雨, 南曰報春.”

<원전 3> 『궁궐지』, 보춘정 <원전 2> 참조.

<원전 4> 『홍재전서』 권54, 「희우루지」, “予名新建之樓曰喜雨. 喜雨而名其亭, 古也. 歲丁酉,重建斯樓, 時天旱久, 不雨垂月餘. 工役始而雨,左右曰瑞也, 名斯樓喜雨可乎. 予曰未也, 雨未滂?, 田將蕪矣, 曷云瑞. 又數月而不雨, 左右曰樓成矣. 予命夙駕, 共近臣, 言止于樓, 而天作雲, 沛然下雨. 左右復請以喜雨名斯樓, 予曰可. 顧近臣曰, 歲可大有, 而民樂業, 喜其大矣. 古人之以喜雨名其亭, 欲以志喜雨之喜也. 心而喜喜雨而志之, 則志乎心不忘可已. 惡乎名其亭, 心者已知之, 而人之知弗與焉. 志乎心則己獨喜其喜, 而不與人共喜也. 故喜之大者, 志乎心, 志乎心之不足, 志之於物, 志於物之不足, 遂有亭之名焉.於是乎其喜之志也大矣, 故名斯樓曰喜雨樓云.”

<원전 5> 『시경』 「대아·문왕」편,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원전 6> 주자, “緝續, 熙明, 亦不已之意.”

<원전 7> 영조, 「집희당시」, “此閣古春邸, 堂中寶墨新. 繼續光明也, 尊賢日益親.”

<원전 8> 『한경지략』 「내의원(內醫院)」, “正廳所揭板曰 和劑御藥保護聖躬八字 則元海振書也.”

<원전 9> 『궁궐지』, “重熙堂, 在觀物軒東. 正祖六年壬寅建, 東曰重陽門, 西曰資始門.堂額正祖御筆.”

<원전 10> 『주역』 「건」, “(彖曰)大哉乾元, 萬物資始, 乃統天.”: 이 구절에 대한 『본의』의 해석, “此一節者, 釋元義也. 大哉, 歎辭. 元,大也始也. 又爲四德之首而貫乎天德之始終, 故曰統天.”; 『주역』 「곤」, “(彖曰)至哉坤元, 萬物資生, 乃順承天.”: 이 구절에 대한 『본의』의 해석, “此以地道明坤之義, 而首言元也. 至, 極也.比大義差緩. 始者, 氣之始, 生者, 形之始. 順承天, 施地之道也.”

<원전 11> 『주자어류』, 권20, “理一而分殊, 雖貴乎一視同仁, 然不自親始也不得.”

<원전 12> 황석공, 『소서』 「안례」, “同仁相憂,同惡相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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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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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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