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페이지 경로
기능버튼모음
본문

보도/설명

제목
[궁궐의 현판과 주련-칠궁_칠궁 권역2]
등록일
2011-05-02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934

 

 

 

9-h-6 대빈궁大嬪宮

 

 

위치와 연혁 : 경우궁·선희궁 건물의 왼쪽에 있다. 숙종(肅宗,1661~1720년)의 후궁이자 경종(1688~1724년)의 생모인 희빈 장씨(禧嬪張氏)의 신위를 모셨다. 1701(숙종 27)년 희빈이 세상을 떠나자 정동에 있는 사저에 신위를 모시다가, 1722(경종 2)년 교동의 경행방에 사당을 세우고 그 이름을 대빈궁이라 하였다. 1870(고종 7)년에 육상궁 안으로 옮겼다가 경행방으로 다시 옮겼고, 1908(융희 2)년에 다시 육상궁 안으로 옮겨 현재에 이른다.

 

 

뜻풀이 : '대빈(大嬪)'은 '큰 부인' 이라는 의미이다. '빈(嬪)'은 내명부(內命婦)의 정1품 품계인 궁녀로서 왕비 바로 다음 서열이다.

 

 

 

 

 

9-h-7 저경궁儲慶宮

 

 

위치와 연혁 : 서쪽 삼문을 지나 가장 왼쪽 건물이다. 원종(元宗 1580~1619년, 인조의 부친)의 생모 인빈 김씨(仁嬪金氏: 선조의 후궁)의 신위를 모셨다. 인빈이 세상을 뜨자 송현궁에 신위를 모시고, 궁 이름을 저경궁이라 했다. 1870(고종 7)년 계동 경우궁으로 옮겼다가 1908(융희 2)년에 육상궁으로 옮겼다.


뜻풀이 : '저경(儲慶)'이란 '경사를 모아 쌓는다'는 의미이다. '儲(저)'는 '貯(저)'와 뜻이 통하며 '쌓는다'는 뜻이다.

 

 

 

 

 

7-h-8 냉천정冷泉亭

 

 

위치와 연혁 : 내삼문을 지나 동쪽 삼문과 서쪽 삼문 사이에 있다. 영조가 어머니 제삿날에 재계(齋戒)하며 제를 준비하던 곳이다. 1866(고종 3)년 12월 창의궁(彰義宮) 장보각(藏譜閣)에 불이 나자 영조의 어진을 이 곳으로 옮겼고, 이후 1882(고종19)년 육상궁에 불이 났을 때에도 영조 어진을 이 곳으로 옮긴 일이 있다. 건물 뒤 바로 북동쪽에 '냉천'이라는 우물이 있다.


뜻풀이 : '냉천(冷泉)'이란 '차가운 샘'이란 뜻이다.

 


제작 정보 : 글씨는 전서체이다. 냉천 벽면에는 1727(영조 3)년 영조가 쓴 '冷泉'이란 어필과 오언 절구가 새겨져 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御墨雲翰(어묵운한) 어필글씨
昔年靈隱中(석년영은중) 지난 날 항주의 영은산 속에 있더니
今日此亭內(금일차정내) 오늘은 이 정자 안에 있네.
雙手弄淸漪(쌍수농청의) 두 손으로 맑은 물 어루만지니
冷泉自可愛(냉천자가애) 냉천이 절로 사랑스럽네.
時强圉協洽􂝲月上浣也(시강이협흡병월상완야) 정미(1727)년 3월 초순.

 

 

 

 

 

9-h-9 자연紫淵

 

 

위치와 연혁 : 냉천정(冷泉亭) 앞 뜰에 있는 네모난 연못이다.


뜻풀이 : '자연(紫淵)'은 '자줏빛이 감도는 연못'이란 뜻이다. 자줏빛은 수심이 깊은 연못의 빛깔을 표현한 것이므로, '자연'에는 '깊은 연못'이라는 뜻도 있다.『문선(文選)』에 실린 장경양(張景陽, ?~307?년)의 「칠명(七命)」에 "깊은 연못 속에서 빛나는 비늘을 건져 낸다(出華鱗於紫淵之裏)."는 표현이 나오고, 당나라 때의 여향은 그 주석에서 "자연은 그 색이 깊은 것을 말한다(紫淵, 謂其深色然也)." 고 풀이했다.
한편, 북두칠성의 앞 머리 부분인 제1성부터 제4성까지를 선기(璿璣, 璇璣)라 하고 자루 부분인 제5성부터 제7성까지를 옥형(玉衡)이라 하는데, 특히 선기의 네 개 별이 만들어 내는 네모난 공간을 '자연(紫淵)'이라 한다. 이는 다른 말로 요지(瑤池)·요수(瑤水)라고도 하며, 신선의 세계를 나타낸느 도가적 용어이다.


제작 정보 : 글씨는 전서체(篆書體)이다.

 

 

 

 

 

9-h-10 송죽재松竹齋

 

 

위치와 연혁 : 칠궁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있다. 재실(齋室)로 풍월헌과 같은 건물에 있으며, 육상궁을 지키는 관원들이 거처했다. 송죽재 현판은 건물 서편에 걸려 있다.


뜻풀이 : '송죽(松竹)'은 '소나무와 대나무'를 의미한다. 변하지 않는 절개를 상징하는 말이다. 사철 푸른 소나무와 대나무처럼 관원들도 재실에 머물며 늘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을 담은 듯하다.

 

 

제작 정보 : 1882(고종 19)년 8월 육상궁(毓祥宮)에 화재가 났을 때 어진을 냉천정으로 옮겼다가 임시로 송죽정(松竹亭)에 모셔둔 일이 있다. 이 때는 송죽재를 송죽정으로도 부른 듯하다.

 

 

 

 

 

9-h-11 풍월헌風月軒

 

 

위치와 연혁 : 칠궁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있다. 재실로 송죽재와 같은 건물에 있으며, 육상궁을 지키는 관원들이 거처했다. 풍월헌 현판은 건물 동편에 걸려 있다.
『영조실록(英祖實錄)』에 1753(영조 29)년 영조가 육상궁에 행차해, 풍월헌에 나아가 내국제조(內局提
調) 원경하(元景夏, 1698~1761)를 입시(入侍)케 하고, 어머니에게 시호를 올리는 절차를 논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772(영조 48)년에는 대신들을 이 곳에 불러 승지로 하여금 벽 위의 '아첨을 억누르고 예절을 다하면 다시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抑諛盡禮, 復何餘憾)'라는 영조의 어필 현판을 읽게 하고, 팔순(八旬)과 육순(六旬) 때 그린 어진(御眞) 두 본(本)을 걸게 하였으며, 이를 여러 신하들에게 우러러보게 하며 내시들의 힘을 억눌렀다고 한다.

 

 

뜻풀이 : '풍월(風月)'은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란 의미이다. 이 곳이 재계하는 곳이므로 정신을 깨끗하고 고상하게 가진다는 의미를 담은 듯하다.

 

 

 

 

 

9-h-12 삼락당三樂堂

 

 

위치와 연혁 : 송죽재와 풍월헌 뒤쪽에 있는 안채 격인 건물이다. 1753(영조 29)년에 영조가 육상궁에 예를 올리고 난 후, 이 곳에서 이조참판 조명리(趙明履, 1697~1756년)를 불러 풍수를 논의한 일이 있다.

 

 

뜻풀이 : '삼락(三樂)'은 '세 가지 즐거움'이란 뜻이다. 세 가지 즐거움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가장 널리 알려진『맹자』의 삼락을 가리키는 듯하다. 맹자가 말한 세 가지 즐거움이란, '부모가 모두 계시고 형제가 무고하며, 위로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고,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논어』에서는 '예악으로 절제하기를 즐기고, 남의 착한 점을 말하기 즐기고, 어진 벗이 많음을 즐기면 유익하다'고 하였고, 증자(曾子, 기원전 506년~기원전 436년)는 '두려운 어버이가 있고 섬길 임금이 있으며 가르칠 자식이 있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간쟁할 어버이가 있고 떠날 수 있는 임금이 있고 노여워할 자식이 있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며, 타이를 임금이 있고 도와줄 벗이 있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고 하였다.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 3]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첨부파일
    등록된 파일이 없습니다.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