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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가보고 싶은 왕릉과 그 기록-풀어쓴 후릉수개도감의궤』발간
등록일
2008-12-12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041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외규장각 의궤 중의 하나인 후릉수개도감의궤(厚陵修改都監儀軌)를 번역하고 관련 논문 및 사진자료를 함께 수록하여 『가보고 싶은 왕릉과 그 기록-풀어쓴 후릉수개도감의궤』를 발간하였다. 지난 2007년 7월에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외규장각 의궤 중 국내에 없는 유일본 30종의 자료를 확보하고자 프랑스와 협의를 통해 디지털화 사업을 실시하여 2008년 3월에 자료를 입수하였다. 이번에 번역하게 된 『후릉수개도감의궤』는 당시 입수된 유일본 30종 의궤 가운데 하나이다. 후릉은 조선 2대 왕인 정종(定宗)과 그의 비(妃)인 정안왕후(定安王后)의 능으로, 현재 북한의 개풍군 흥교리 백마산 동쪽 기슭에 있다. 오늘날 ‘조선 왕릉’이라고 통칭되고 있는 총 42기 왕릉 가운데 태조의 왕비인 신의왕후(神懿王后) 능인 제릉(齊陵)과 이 후릉만이 북한의 개성 지역에 외롭게 남아 있는 실정이다. 『후릉수개도감의궤』는 후릉의 석물이 어긋나고 잡석이 섞여 있다는 경기감사 김수흥의 보고에 따라 현종 7년(1666)에 임시관청인 ‘수개도감’을 설치하고, 석물을 교체하는 작업 과정 및 결과를 기록하여 1667년에 1책으로 발간한 책이다. 이 책은 모두 3본을 제작하였는데, 현재는 왕이 보았던 어람용 1본만 유일하게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남아 있다. 이번에 발간하게 된 책에는 번역한 내용 이외에도 ‘후릉수개도감의궤의 입수경위와 내용’, ‘후릉의 조성과 양식적 특징’ 등의 글이 실려 있어서 후릉에 대한 다각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이에 따르면 후릉은 조선 초기 왕릉제도가 정비되기 전이어서 봉분 배치, 석물 양식 등이 그 이후와 다르나, 소박한 규모로 인하여 조선 후기 왕릉의 전범(典範)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사람들에게 왕릉의 위치가 풍수적으로 매우 뛰어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흥미로운 사실도 밝혀내고 있다. 사실 후릉은 북한에 있기 때문에 그 동안 주목을 받지 못한 문화재였다. 그러나 이 책의 발간을 계기로 후릉 등 북한에 있는 문화재를 좀더 연구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해외 소재 우리 문화재에 대한 자료 확보가 매우 소중한 일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 부문에 대해 더욱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다. 담당자 :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김인규, 양진조 전화번호 : 042-860-9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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