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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어린이 문화재 박물관 ⑤] 흥겨운 우리 장단, 가야금 산조와 병창
등록일
2007-11-23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356
가야금 산조와 병창은 특별한 재주와 재능이 있어야만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에요.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민요와는 사뭇 다르지요. 대신 전문가들이 하는 연주를 보고 들으면서 흥겨운 가락을 느끼고 즐길 수 있어요. 악기 구성과 장단을 알고 들으면 산조와 병창을 한층 신명나게 즐길 수 있답니다.



자유롭게 연주하는 가야금 산조



가야금 산조는 정해진 악보 없이 연주하는 음악이에요. ‘허튼 가락’, ‘흐트러진 가락’이라고 부르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아주 자유로운 음악이랍니다. 산조를 잘 알려면 먼저 산조의 바탕이 된 ‘시나위’에 대해 알아야 해요. 시나위는 굿판에서 무당이 춤을 출 때 연주하는 음악입니다. 악사 여러 명이 서로 다른 악기를 가지고 그때 그때 흥과 분위기에 따라 연주하지요. 정해진 악보가 없는데도 감탄을 자아낼 만큼 여러 악기들이 잘 맞아떨어진답니다. 가락이 예측할 수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도 음악에 한껏 취할 수 있어요. 산조는 자유롭고 즉흥적인 이 시나위 가락을 장단이라는 틀에 넣어 연주하는 음악입니다.

가야금 산조는 대개 아주 느리게 시작해서 서서히 빨라지다가 아주 빠르게 몰아가면서 끝이 납니다.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장단이지요. 가장 느린 진양조로 시작해서 서서히 빨라지는 중모리, 그리고 좀 더 빠른 중중모리로 흥취를 한껏 돋우고, 숨가쁜 자진모리로 신명을 끌어올린 다음, 가장 빠르고 강렬한 휘모리장단으로 몰아치면서 끝을 맺는 것이지요. 이처럼 산조는 듣는 사람을 서서히 긴장시키면서 집중하도록 만들고, 신명을 끝까지 끌어올리는 힘이 있답니다.

[가야금 산조]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를 처음 만든 사람은 김창조(1865∼1920)이다. 이를 시작으로 최옥산(1902∼1956), 안기옥(1905∼1968), 김죽파(1911∼1989) 등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는데, 스승의 가락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산조 가락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가야금 산조는 김창조류, 최옥산류, 김죽파류 등으로 나눈다.



가야금을 타면서 노래하는 가야금 병창

가야금 병창은 가야금을 타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에요. 가야금 산조를 만든 김창조가 가야금 병창을 처음 시작했다고 해요. 김창조는 가야금은 물론 판소리 또한 뛰어났는데, 가야금이 전문이라 함께 다니는 고수가 없었어요. 고수가 없으니 소리를 해도 흥이 살지 않자 가야금 반주를 하면서 단가를 불러 보았대요. 이렇게 해서 새로운 느낌의 가야금 병창이 탄생한 거예요.

가야금 병창은 단가나 판소리 가운데서 한 대목을 따다가 가야금 반주와 함께 부릅니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판소리와 가야금 특유의 음색이 사람 소리와 악기 소리를 구별하지 못할 만큼 조화를 이루면서 신명을 자아내 듣고 있는 사람도 저절로 몸이 들썩거린답니다.



아는 만큼 느끼는 음악

음악을 따분하다고 생각하나요? 그런 생각이 든다면 들으려는 음악에 나오는 악기의 특성과 장단의 성격에 대해 조금만 공부해 보세요. 그러면 생각보다 재미있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요. 가야금 산조나 병창도 마찬가지랍니다. 가야금에 대해 조금만 알게 되면 음악이 달리 들릴 거예요.

가야금은 음색이 맑고 영롱한 게 특징이에요. 줄을 하나하나 뜯으며 섬세하게 음을 흔들어서 표현하지요. 또 가야금 산조나 병창을 자꾸 듣다 보면 곡의 빠르기가 계속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이것은 장단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장단은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느껴 온 기쁘고 슬프고 즐거운 감정을 시간(빠르기)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진양조는 아주 느리고 서정적이며, 중모리는 안정적이며, 중중모리는 흥취를 돋우며, 자진모리는 밝고 경쾌하며, 휘모리는 강렬하고 급한 느낌이 있지요. 이런 장단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알면 우리 음악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가야금 산조 | 가야금 산조는 장구 반주에 맞추어 연주한다. 정해진 악보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연주하는데, 대개 느리게 연주하다 점점 빨라진다. 악기는 산조를 연주하기 편한 산조가야금을 쓴다.

*가야금 병창 | 가야금 병창은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민요나 단가, 판소리 일부 대목을 부른다. 가야금 병창곡으로 널리 알려진 대목은 「새타령」, 「남원산성」 같은 민요와 「죽장망혜」, 「공명가」 같은 단가, 판소리 가운데 『춘향가』의 「사랑가」, 『흥부가』의 「제비노정가」 등이다.

*단가 |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청을 가다듬으려고 부르는 짧은 노래이다. 판소리에 앞서 부르는 것이므로 담담하게 노래해야 하며, 기교를 부리는 것은 정통성에 어긋난다.



고통 속에 되살아난 예술혼_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 보유자 함동정월



함동정월 할머니는 본명이 함금덕으로, 1917년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아버지 함일권과 어머니 박양근 사이에서 2남 5녀 가운데 여섯째(넷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예술가 집안에서 자라던 할머니는 12세 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광주의 큰 부자인 김창수의 양녀로 갑니다. 그리고 돈을 벌려고 광주 권번에 들어가지요. 권번이란 일제 강점기에 기생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치던 곳이에요. 할머니는 이 곳에서 승무, 검무, 시조, 가야금 등을 익혔어요. 이듬해 권번에서 공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김복술에게 가곡을, 서편제 「흥보가」의 명창인 오수암에게 판소리를, 가야금 산조의 명인인 최옥산에게 가야금을 배웠지요. 20세 되던 해에는 일본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주최한 콩쿠르에 참가해 가장 어린 나이로 판소리 분야에서 1등을 하면서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이것을 계기로 일본으로 건너가 가야금 산조, 가야금 병창과 판소리 등 12장의 음반을 내지요. 할머니는 광주 권번 시절부터 20세 무렵까지 음악 생활의 황금기를 보냅니다. 예술에 정진하면서 음악성을 인정받고, 명예와 부를 얻지요.

하지만 20세부터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할머니는 음악과 거리를 두고 살 수밖에 없었답니다. 결혼에 실패하고, 어린 자식과 함께 돈 한 푼 없이 길거리로 쫓겨나기도 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지요. 그러다가 39세 무렵 대전 국악원에서 연주도 하고 제자도 길러 내면서 새롭게 음악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1976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인정도 받고요. 하지만 할머니는 말년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픔을 겪으면서 셋집을 전전하다가 독주회 한 번 갖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머니는 가야금 산조 명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산조 말고도 악기와 민요, 판소리, 정가, 무용을 두루 잘 했고 끊임없이 기량을 갈고 닦은 예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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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절출판사에서 발간한 [어린이 문화재 박물관②]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과 사계절 출판사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홍보담당관실 (042.481.4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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