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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부여 능산리사지 제11차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개최
등록일
2009-03-11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4250

- 2009.3.11(수) 오후2시, 부여능산리사지 현장 -


 한국전통문화학교(총장 이종철)는 부여군의 의뢰를 받아 2008년 11월에 착수한 부여 능산리사지(사적 제434호) 제11차 발굴조사(책임조사원 정석배 교수)의 성과를 3월 11일(수) 오후 2시에 발굴조사 현장에서 관계 전문가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조사는 사역(寺域) 서편에서 나성(羅城, 도성을 둘러싼 외곽의 성)으로 이어지는 경사면의 성벽 만곡부(彎曲部, 활모양으로 굽은 부분)일대를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나성 성벽 만곡부분의 안쪽(능산리사지 기준)은 성토대지로 조성되었음을 확인하였고, 또한 고려시대 건물지와 백제의 석렬유구, 배수로, 기와 가마 등을 발굴하여 능산리사지의 범위와 성격에 대한 새로운 중요한 연구 자료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고려의 건물지는 나성의 만곡부 안쪽 평탄지에 위치하며, 백제의 성토대지 위에 축조되어 있다. 건물 앞쪽과 좌측면의 기단(基壇 건축물의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단)석렬과 전체 길이 10.7m 정도인 6개의 적심(주춧돌 하부 기초)이 확인되었는데, 대체로 남향이다.  백제의 석렬유구는 나성 만곡부 안쪽의 가운데 부분을 가로지르며 동서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2열의 막돌을 너비 0.9m 간격으로 면을 밖으로 향하게 한 겹 깔아 만들었다. 이 석렬유구는 성토 대지의 중간 깊이 정도에서 확인되고 있고, 위로 좌우와는 구분되는 적갈색의 점토가 쌓여있으며, 그 방향이 능산리사지 금당지와 탑지의 중간을 지나게 배치되어 있어, 사람이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용이나 영혼을 위한 통로로서의 특별한 용도를 지녔을 가능성이 높은데, 확인된 길이는 14.6m이다.  배수로는 능산리 사역의 서쪽 경사면에서 조사되었고, 배수구 부분에 도랑이 형성되어 있으며, 그 도랑은 작은 돌들과 백제의 기와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사실은 나성 만곡부의 아래 경사면 부분에도 백제시기 건축시설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나, 아쉽게도 배수로 이외의 다른 건물과 관련된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기와 가마는 지상에 노출된 부분의 벽을 돌로 쌓은 반지하식 등요(登窯, 오름가마)이며, 회구부(灰丘部, 재와 같은 폐기물이 쌓여있는 부분), 아궁이, 연소실, 소성실(燒成室, 그릇이나 기와가 구워지는 부분), 연도부(煙道部, 굴뚝) 등이 모두 확인되었다. 연소실과 소성실의 벽을 모두 돌로 쌓은 기와 가마는 백제 사비기 가마 중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형식이다. 연소실에서 연도부까지의 길이는 약 5.8m이다.  한국전통문화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는 이번 조사 성과를 토대로 능산리사지와 나성의 상호 관계 및 조영 단계를 파악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담당자 : 한국전통문화학교 정석배, 정치영 전화번호 : 041-830-7392, 7393
부여 능산리사지 제11차 조사지역 전경
<부여 능산리사지 제11차 조사지역 전경>


고려시대 건물지
<고려시대 건물지>


백제 석렬유구
<백제 석렬유구>


백제 배수로
<백제 배수로>


백제 기와가마
<백제 기와가마>


백제 성토대지
<백제 성토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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