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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궁궐의 현판과 주련-창경궁]
등록일
2010-12-13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242








창경궁昌慶宮, 지금에 이르기까지

 

창경궁(昌慶宮)은 창덕궁의 동쪽에 있는 별궁이다. 본래 세종 때부터 상왕(上王)을 모시던 수강궁 자리에 1484(성종 15)년 창경궁을 짓고 세조비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1483년), 덕종비 소혜왕후(昭惠王后: 인수대비, 1437~1504년), 예종비 안순왕후(安順王后, ?~1498년) 세 분의 대비를 모셨다. 이때 외전(外殿)으로 명정전(明政殿), 편전으로 문정전(文政殿), 내전으로 환경전(歡慶殿), 경춘전(景春殿), 인양전(仁陽殿), 통명전(通明殿), 양화당(養和堂), 여휘당(麗暉堂), 사정각(思政閣), 환취정(環翠亭) 등의 전각을 짓고 창경궁이라 이름하였다. 전각의 당호는 서거정(徐居正, 1420~1488년) 1)이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 창덕궁, 종묘와 함께 궁궐의 대부분이 불에 탔고 1616(광해군 8)년 명정전, 환경전 등 주요 전각이 재건되었다. 이후 1624(인조 2)년 이괄(李适)의 난으로 다시 거의 소실되었다. 1633(인조 11)년 다시 중건되었고, 1656(효종 7)년, 1670(현종 11)년, 1186(숙종 12)년, 1756(영조 32)년에 크고 작은 건물을 지어 궁궐의 규모가 확대되었다.

1801(순조 원)년에 통명전이 불탔고, 다시 1830(순조 30)년에 큰 화재로 많은 건물이 불에 타 1834(순조 34)년 복구되었다. 일제 치하에 들어가면서 몇 개의 전각을 제외하고는 모두 훼손되어 동·식물원으로 꾸며졌고, 이름도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되었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궁궐 복원을 진행하였다. 먼저 창경궁의 이름을 회복하였고, 명정전과 문정전 일대를 복원하여 왕궁의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하였다.


 






창경昌慶의 뜻풀이
 

‘창경(昌慶)’은 ‘성대한 경사’라는 뜻이다. ‘창(昌)’은 ‘밝다’, ‘선하다’, ‘창성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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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거정은 조선전기의 학자로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이다. 성리학을 비롯하여 천문·지리·의약 등 다방면에 정통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경국대전』,『동국통감』 등을 편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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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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