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페이지 경로
기능버튼모음
본문

보도/설명

제목
경복궁, 조선의 대표 궁궐
등록일
2007-04-13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2430
조선의 첫 궁궐 경복궁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왕과 신하들이 회의를 하거나 국가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1335~1408)는 왕이 되고 나서, 새로운 궁궐을 어디에 지을지 고민했습니다. 여러 곳을 알아보다가 결국 한양을 도읍으로 정했어요.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왕이 된 만큼 백성들에게 권위 있게 보이고 싶었던 이성계는 1395년(태조 4)에 경복궁을 새로 짓고, 그 곳에서 살았어요.

경복궁에는 왕과 그 가족들이 함께 살았는데, 처음에는 390여 칸으로 근정전과 강녕전, 연생전 등 주요 건물들만 있었으나 새로 경회루도 짓고 차츰 건물 수를 늘렸답니다. 그러다 임진왜란(1592~1598) 때 불이 나는 바람에 경복궁은 폐허가 되었어요. 다시 지으려 했지만 워낙 큰일이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조선 말기 흥선 대원군이 고쳐 지어서 다시 궁궐로 썼습니다. 이 때 다시 지은 경복궁은 원래보다 훨씬 많은 7000칸이 넘었대요. 이렇게 크게 궁궐을 지은 것은 약해진 왕의 권력을 강하게 만들겠다는 흥선 대원군의 뜻이었답니다.



엄숙한 근정전과 편안한 경회루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




근정전과 경회루는 경복궁의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근정전은 왕이 정치 활동을 하는 근엄한 공간이었으며, 경회루는 손님을 맞거나 잔치를 여는 곳이었지요. 근정전에서는 신하들이 왕에게 아침 인사, 새해 인사를 올리거나, 왕의 즉위식이나 세자 책봉식 같은 국가의 공식적인 큰 행사를 치렀습니다.

근정전은 앞에서 보면 다섯 칸, 옆에서도 다섯 칸인데, 나무로 지은 우리나라 건축물 중 가장 크답니다.

또한 근정전은 바닥에 이중으로 단을 만들어 높이 지었습니다. 이것을 ‘기단’이라고 하는데, 기단의 난간이 꺾이는 곳마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수호신과 십이지신상이 있지요. 근정전 앞마당은 주위를 행각으로 둘러싸서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막아 주고, 품계석을 늘어놓아 질서 정연하고 엄숙한 모습을 자아냅니다. 근정전이 엄숙하고 공식적인 건물이라면, 경회루는 그보다 유쾌하고 편안한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금이 머리를 식히거나 손님을 맞이해서 술도 마시며 즐기는 곳이었으니까요. 경회루는 연못을 파고 그 안에 만든 건물이라 주위가 확 트여 있습니다. 사방에서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시를 짓거나 활을 쏘며 풍류를 즐겼을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지요. 이 곳에 서면 인왕산, 북악산, 남산이 한눈에 보입니다. 원래 경회루는 경복궁을 지을 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답니다. 그런데 1492년(태종 12)에 연못을 넓히고 건물도 다시 크게 짓도록 했던 것입니다. 경회루는 단일 평면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누각이지요.



경복궁에서 살았던 사람들

놀랍게도 궁궐에서 지내는 궁녀와 내시만 해도 1000명이 넘었다고 해요. 낮에는 승지나 일하는 사람들이 드나들었으니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궁녀는 옷과 음식, 제사를 준비하는 등 왕실의 일상생활을 도맡아 했지요. 왕에게만 궁녀와 시녀가 150명이 딸려 있었고, 왕비와 대비, 세자, 세자빈, 세손 들에게도 수십 명에서 130여 명에 이르는 시녀들이 있었답니다. 내시는 왕의 명령을 전달하거나 문을 지키거나 관리의 일을 돕거나 궁궐을 수리하거나 청소를 하는 등, 왕실의 정치와 행정 업무를 거들었지요. 궁궐은 이렇게 20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먹고, 자고, 드나들며 활동하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화장실도 스물세 개나 있었다고 해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자미당 터에 고종의 어머니인 조대비(신정익왕후)를 위해 지었으나 불에 타버려 고종 25년(1888)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대비들이 일상생활을 하고 잠을 자는 침전 건물로, 총 44칸 규모이다.-




지금은 경복궁에 몇몇 주요 건물만 남아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권위를 짓밟으려고 일부러 궁궐을 부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궁궐에 딸린 부속 건물을 일본인에게 팔거나 일본의 관공서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1915년에는 궁궐 안에서 ‘조선물산공진회’라는 박람회를 연다며 궁궐을 부수고 서양식 건물을 세우기도 했답니다.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전에 없던 잔디밭도 만들었고요. 지금 경복궁 안에 있는 넓은 잔디밭도 그 때 만들어진 거예요.





-------------------------------------------------------------------------

* 사계절출판사에서 발간한 [어린이 문화재 박물관①]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과 사계절 출판사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홍보담당관실 (042.481.4678)

-------------------------------------------------------------------------


첨부파일
    등록된 파일이 없습니다.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