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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희궁 권역]
등록일
2011-03-21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589

 

 

 

 

5. 경희궁慶熙宮 권역

 

 

 

 

 

 

6-h-1 흥화문興化門

 

 

위치와 연혁 : 경희궁의 동쪽문이자 정문이다. 정조(1752~1800년)가 지은 『경희궁지(慶熙宮志)』에 “궁궐의 정문(正門)은 모두 다섯 개가 있는데, 동쪽에 있는 흥화문(興化門)은 어가(御駕)가 출입하는 정문이고, 그 문의 왼쪽은 흥원문(興元門)이고, 오른쪽은 개양문(開陽門)이며, 서쪽은 숭의문(崇義門)이고, 북쪽은 무덕문(武德門)이다.”<원전 1>라고 하였다. 경희궁이 별궁으로 지어진 까닭에 단층 우진각 지붕으로 간소하게 지었다.
처음에 흥화문은 경희궁의 동쪽 모서리에 있었으나 1915년에 도로 건설에 따라 경희궁 남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1932년에는 박문사(博文寺: 이등박문을 모신 절)정문으로 사용하다가 광복 후에는 영빈관의 정문으로, 그후에는 신라호텔 정문으로 사용하였다. 1988년에는 서울시의 경희궁 복원사업에 따라 경희궁으로 옮겨왔으나 흥화문의 옛 자리에 이미 도로가 나고 구세군회관이 들어와 있어 지금의 자리로 복원하였다. 구세군회관 앞에는 옛 흥화문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뜻풀이 : ‘흥화(興化)’는 ‘교화를 북돋우다’라는 의미이다. 경희궁의 정문이기 때문에 다른 궁궐의 정문처럼‘化(화)’자를 사용하였다.

 


제작 정보 : 『한경지략(漢京識略)』에 “동쪽을 흥화문이라 한다.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으로 이신(李紳)이 썼다.”<원전 2>라고 나와 있다. 흔히 경희궁을 야조개[夜照峴], 야주개 궁궐로 불렀는데 이는 현판의 글씨가 빼어나 밤에도 광채를 발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6-h-2 숭정전崇政殿

 

 

 

위치와 연혁 : 경희궁의 정전(正殿)이다. 『궁궐지(宮闕志)』에 “숭정전은 조회를 받는 정전(正殿)이다. 남쪽은 숭정문(崇政門), 동남쪽은 건명문(建明門), 동쪽은 여춘문(麗春門), 서쪽은 의추문(宜秋門)이다.”<원전 3>라 하였다. 숭정전은 조선 광해군 9년(1617)부터 12년(1620)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경희궁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일제 시대인 1926년에 남산 기슭(현재의 필동 부근)에 있는 일본인 사찰 조계사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동국대학교 안에서 정각원(正覺院)이라는 법당으로 쓰고 있다. 서울시는 이 건물을 제자리로 옮기려 했으나 건물이 낡아 이전이 어렵게 되자 1985년부터 여러 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1989년부터 6년에 걸쳐 원래 자리에 새 건물을 복원했다.

 

뜻풀이 : ‘숭정(崇政)’은 ‘정사를 드높인다’는 뜻이다. 경희궁의 정전(正殿)이므로 근정전(勤政殿), 인정전(仁政殿)처럼 ‘政(정)’자가 들어가 있다.

 

 

 

 

 

6-h-3 숭정문崇政門

 

 
위치와 연혁 : 숭정전의 남문(南門)이다. 광해군 대에 지어진 것으로 이 숭정문에서 경종과 정조, 그리고 헌종이 즉위식을 치렀다. 월대를 2층으로 쌓아 경사를 극복하였고, 계단 가운데에는 봉황이 새겨진 답도(踏道)가 있고 그 양 옆으로는 돌짐승 모양의 소맷돌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숭정전을 복원할 때 함께 복원하였다.


뜻풀이 : ‘숭정(崇政)’은 ‘정사를 드높인다’는 의미이다.

 

 

 

 

 

6-h-4 자정전資政殿

 

 

위치와 연혁 : 숭정전 뒤에 위치한 후전(後殿)이자 편전(便殿)이다. 정조가 지은 「경희궁지(慶熙宮志)」에 “자정문 안에 전(殿)이 있으니, 이는 곧 숭정전의 후전(後殿)이며, 자정전(資政殿)이라 한다.”<원전 4>라고 하였다. 숙종이 승하하자 빈전(殯殿)으로 사용하였고, 때때로 선왕들의 어진(御眞)이나 위패를 봉안하기도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서울시의 경희궁 복원사업에 의하여 새로 복원된 것이다.

 


뜻풀이 : ‘자정(資政)’은 ‘정사를 돕는다’는 의미이다. 자정전이 숭정전 뒤에 있으므로 이곳에 거처하면서 정사와 연향을 행하며 정사를 돕는다는 의미이다.

 

 

 

 

 

6-h-5 자정문資政門

 

 

위치와 연혁 : 자정전의 정문이자 숭정전의 북쪽 문이다. 정조가 지은 「경희궁지(慶熙宮志)」에 “(숭정전에는) 네 개의 문이 있으니, 동쪽을 여춘문(麗春門), 서쪽을 의추문(宜秋門), 남쪽을 숭정문(崇政門), 북쪽을 자정문(資政門)이라 한다.”고 되어 있다. 자정전과 함께 최근 복원되었다.

 


뜻풀이 : ‘자정(資政)’은 ‘정사를 돕는다’는 의미이다.

 

 

 

 

 

6-h-6 태녕전泰寧殿

 

 

위치와 연혁 : 숭정전의 서북쪽에 있으며, 임금의 초상화(御眞)를 받들어 안치하던 건물이다. 영조 20년에 이곳을 수리해 영조의 어진을 안치했다. 본래의 용도는 명확하지 않으나, 정조가 지은 「경희궁지(慶熙宮志)」에 의하면 “태녕전(泰寧殿)은 자정전 서쪽에 있는데, 당저(當宁)의 어진(御眞)을 봉안하는 곳이고, 전 뒤에는 암천(巖泉)의 좋은 경치가 있다.”<원전 5>고 한 것으로 미루어 그 용도를 짐작한다. 현재의 건물은 서울시의 경희궁 복원 사업에 의하여 새로 복원한 것이다.

 

 

뜻풀이 : ‘태녕(泰寧)’은 ‘형통하고 평안하다’는 의미이다. 이 건물이 어진을 모시는 공간이므로 임금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제작 정보 : 현재의 현판은 태녕전 건물을 복원하면서 한석봉(韓石峯, 1543~1605년)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6-h-7 태녕문泰寧門

 

 

위치와 연혁 : 태녕전의 정문이다.「경희궁지(慶熙宮志)」에 “(태녕전에는) 다섯 개의 문이 있는데, 동쪽을 집화문(集和門), 또 그 동쪽을 건경문(建慶門), 남쪽을 태녕문(泰寧門), 서쪽을 제광문(霽光門), 북쪽을 현무문(顯武門)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의 건물은 태녕전과 함께 복원한 것으로, 사당의 문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뜻풀이 : ‘태녕(泰寧)’은 ‘형통하고 평안하다’는 의미이다.


제작 정보 : 태녕전의 현판처럼 한석봉의 글씨를 집자했다.

 

 

 

 

 

6-h-8 용비천龍飛泉

 

 

위치와 연혁 : 경희궁의 우물터다. 일제 강점기에 훼손된 다음 경희궁 터에는 정전이었던 숭정전의 기단부와 근처의 원래 자리에서 옮겨온 석수, 댓돌 등이 남아 있어 이 자리가 궁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밖에 바위에 새긴 글 등도 남아있다.

 


뜻풀이 : ‘용비천龍飛泉’은‘용이 날아간 샘’이라는 뜻이다.


제작 정보 : 서체는 초서(草書)이다. 옛 글씨들은 대부분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써나갔는데, 용비천은 특이하게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쓰여 있다. 이는 용비천의 글씨가 근대 이후에 새겨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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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1> 『홍재전서』 4권, 춘저록(春邸錄)·잡저(雜著), 「경희궁지」, “闕之正門, 統有五焉, 東曰興化, 駕出入之正門也, 門之左爲興元, 右爲開陽, 西曰崇義, 北曰武德”

<원전 2> 『한경지략』, 「경희궁」, “立五門, 東曰興化(此爲正門 李紳書)興元, 南曰開陽, 北曰武德, 西曰崇義”

<원전 3> 『궁궐지』, 「경희궁·숭정전」, “崇政殿, 受朝正殿. 南曰崇政門, 東南曰建明門, 東曰麗春門, 西曰宜秋門.”

<원전 4> 『홍재전서』 4권, 춘저록(春邸錄)·잡저(雜著), 「경희궁지」, “大內之正殿, 曰崇政殿, 卽受朝賀之所也, 在大內之西, 有四門, 東曰麗春, 西曰宜秋, 南曰崇政, 北曰資政, 資政之內有殿, 卽崇政之後殿也, 亦名資政, ”

<원전 5> 『홍재전서』 4권, 춘저록·잡저, 「경희궁지」, “泰寧殿, 在資政之西, 奉當宁御眞之所也, 殿後有巖泉之勝, 三門東曰集和, 又其東曰建慶, 南曰泰寧, 西曰霽光, 北曰顯武, ”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 3]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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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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