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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궁궐의 현판과 주련-덕수궁_중화전 권역 1]
등록일
2011-02-07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588

 

 

 

 

2. 중화전中和殿 권역

 

 

 

 

 

2-h-1 중화전中和殿

 

위치와 연혁 : 덕수궁의 중심 건물이다. 임금이 조회를 비롯해 하례(賀禮)를 받거나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등 나라의 중요한 행사나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다른 건물과 달리 두 단의 돌기단을 쌓고 그 위에 지었는데, 1902년에 지은 것은 1904년 화재로 소실됐고, 지금 것은 1906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중화전 안에는 ‘닫집’ 혹은 ‘당가’라고 불리는 집 속의 집이 있고, 그 안에 임금이 앉던 어좌가 있다.어좌 뒤로는 세 번 접었다하여 ‘섬절 곡병’이라 불리는 병풍이, 그 뒤로는 왕을 상징하는 병풍인 일월오악도(日月崑崙圖) 1)가 놓여 있다.

 

 

  

뜻풀이 : ‘중화(中和)’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성정’이라는 뜻으로, 『중용(中庸)』에서 유래한 말이다. 중용에서는 ‘희로애락이 발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고 하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 중(中)이란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고, 화(和)라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도(道)다. 중화를 지극히 하면,천지가 제자리에 위치하고,만물이 잘 길러진다’<원전 1> 고 했다.

 

 

 

 

 

2-h-2 중화문中和門

 

위치와 연혁 : 중화전의 남쪽 문이자 정문다. 원래는 중화문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담장 구실을 하는 2칸 폭의 긴 행랑(行廊: 복도 건물)이 이어져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모두 헐려 나가고 지금은 중화문 오른쪽 모퉁이에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뜻풀이 : '중화(中和)'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성정(性情)'이라는 뜻으로,『중용(中庸)』에서 유래했다.

 

 

 

 

 

2-h-3 국태평만년國泰平萬年

 

위치와 연혁 : 중화전 앞 동쪽 드므에 새겨진 금석문이다. 드므는 순 우리말로 '넓적하게 생긴 큰 독' 이라는 뜻인데 한자어로는 '두무(豆撫)' 혹은 '길상항(吉祥缸)'이라고도 한다. 궁궐에 놓인 드므는 화재를 막기 위해 상징적 의미로 비치한 것이다. 드므에 물을 담아 놓았으므로 방화용수(防火用水)로 사용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불을 끄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그보다는 물을 담아 놓음으로써 불의 귀신인 화마(火魔)가 왔다가 드므 속 물에 비친 자신의 흉측한 얼굴을 보고 놀라서 도망치게 하려는 뜻이 있다는 속설이 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뜻풀이 : '국태평만년(國泰平萬年)'은 '나라가 태평스럽게 만년토록 오래 지속되라'는 뜻이다. '泰平(태평)'은 흔히 '太平(태평)'으로 더 많이 쓰이며, '만년(萬年)'은 '영원한 세월'을 뜻한다.

 

 

 

 

 

2-h-4 희성수만세囍聖壽萬歲


위치와 연혁 : 중화전 앞 서쪽 드므에 새겨진 금석문이다.

 

 

 

뜻풀이 : '희성수만세(囍聖壽萬歲)'는 '성스러운 임금의 수명이 만년토록 오래 지속됨을 기뻐한다'는 뜻이다. '희(囍)'는 기쁠 희(喜)자가 두 개 겹친 모양으로, 혼인이나 경사가 있을 때 또는 상대방을 축원할 때 쓰는 글자이다.‘만세(萬歲)’는 천자에게만 붙일 수 있던 말로, 이를 통해 중화전 드무는 고종이 황제에 등극한 이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2-h-5 석어당昔御堂

 

위치와 연혁 : 중화전 뒤 동북쪽 방향에 있는 2층 목조 건물이다. 임진왜란으로 피난 갔던 선조가 환도해 1593년부터 임시 어소[時御所]로 사용한 건물이다. 선조는 임진왜란으로 파괴된 경복궁, 창덕궁 등을 중건하지 못한 채 이 곳에서 16년을 지내다 1608(재위 41)년 승하했다. 훗날 임금들은 임진왜란을 상기하며 이곳에서 선조를 추모했다.
1618(광해군 10)년에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이 곳에 유폐했으며, 인조 반정 이후에는 광해군 자신이 이 곳 앞마당에서 인목 대비에게 죄를 고하고 인조에게 옥쇠를 건냈다.
원래 건물은 1904년 덕수궁 대화재로 소실됐고, 지금 건물은 같은 해에 중건한 것이다. 덕수궁에 있는 유일한 2층 목조 건물로, 1층에는 방과 대청이 있고, 2층은 칸막이 없이 마루를 깔았다. 궁궐 안 건물임에도 단청을 하지 않았다.

 

 

뜻풀이 : ‘석어(昔御)’는 ‘옛날에 임어(臨御)하였다’, 즉 옛날 임금이 머물렀다는 의미다. 옛날 임금은 임진왜란으로 이 곳에 처음 머물렀던 선조를 말한다.

 

 


제작 정보 : 석어당에는 현재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위층 처마 밑에 있는 글씨는 1904년 중건 당시 김성근(金聲根, 1835~1918)이 쓴 것이다. 김성근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중원(仲遠), 호는 해사(海士)다. 홍문관 벼슬을 거쳐 도승지,전라도 관찰사 등을 지내고, 이조참판,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서예에 뛰어났고 청렴결백했으나, 국권 피탈 후 자작(子爵)의 작위를 받았다.
여러 궁궐 연구서에서 이 현판의 서사자를 김성진(金聲振)이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국역승정원 일기』에서 원본에 초서로 된 '根(근)'을 '振(진)'으로 오독하였는데, 이것을 그대로 답습한 듯하다.
아래층에 있는 글씨는 고종의 어필(御筆)이다. 오른쪽 상단에 전서로 '어필(御筆)', 왼쪽에 '광무 9년 을사 7월 일(光武九年乙巳七月 日)'이라고 적혀 있어 1905년 고종이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2-j-5 석어당昔御堂 의 주련

 

위치와 연혁 :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뜻풀이 :

(1) 海屋籌添壽八百(해옥주첨수팔백)
해옥(海屋)에 산가지 더하니 수명은 팔백 세요,

(2) 瑤池桃熟歲三千(요지도숙세삼천)
요지(瑤池)에 복숭아 익으니 나이는 삼천 년일세.


석어당에 거처하는 임금의 장수를 기원한 시다. ‘해옥주첨(海屋籌添)’은 장수를 상징하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바닷가 신선이 바다가 뽕나무 밭이 될 때마다 나뭇가지를 하나씩 놓았는데, 세월이 지나 그 나뭇가지가 열 칸의 집에 가득 채울 때까지 살았다고 전한다. ‘요지(瑤池)’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곤륜산(崑崙山)의 연못 이름이다. 불사약(不死藥)을 가진 신녀(神女) 서왕모(西王母)가 이 연못에 살며 복숭아를 심었는데, 열매가 익으려면 3천년 이 걸린다는 전설이 있다.

 

                   

 

제작 정보 : 석어당 주련은 보통의 주련처럼 나무 판에 새긴 것이 아니라 종이에 글씨를 쓴 것을 그대로 기둥에 발라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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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월오악도(日月崑崙圖)의 ‘오악(崑崙)’은 우리나라 동서남북과 중앙에 있는 중요한 산, 즉 전국토를 상징하고, 태양과 달, 소나무 등은 각각 하늘과 땅, 생물계를 상징한다. 즉, 이 병풍에는 왕의 권위가 미치는 모든 곳, 모든 것들이 왕 아래서 대대손손 번창하길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원전 1> 『중용(中庸)』1장,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 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萬物育焉.”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 3]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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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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