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설명
- 제목
- [궁궐의 현판과 주련-창경궁_명정전 권역]
- 등록일
- 2010-12-27
- 주관부서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3012
15. 명정전明政殿 권역
15-h-1 명정전明政殿
위치와 연혁 : 창경궁의 중심 건물이다. 동향의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마당에는 박석(薄石) 1)을 깔고 품계석 2)을 놓았다. 1484(성종 15)년 창건, 임진왜란에 소실된 것을 1616(광해군 8)년에 재건하여 현재에 이른다.
앞뜰에는 품계석이 좌우 양쪽에 놓여 있고, 뒤쪽에는 벽이 없는 긴 회랑이 달려 있다. 『한경지략』, 『궁궐지』 등에 명정전이 고려 때의 건물이라는 설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의 이궁(離宮) 터에 조선 시대에 재건한 것으로 여겨진다. 『궁궐지』에 따르면 인종 임금이 중종 39년 11월 이 명정전에서 등극 하례를 받았다. 영조가 왕세제 3)로 있을 때 명정전 남랑에서 거처한 일이 있다.
뜻풀이 : ‘명정(明政)’이란 ‘정사를 밝힌다’는 의미이다. 명정전이 창경궁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므로 임금이 중심에서 밝은 정치를 해 달라는 염원을 담은 말이다. 『후한서』 「장제기(章帝紀)」에 “정사를 밝히는 것[明政]은 크고 작음이 없이 인재를 얻는 것이 근본이다.”<원전 1>라는 용례가 보인다.
15-h-2 명정문明政門
위치와 연혁 : 명정전의 정문이다. 명정전 동쪽 행각의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창경궁 홍화문과 중심선이 틀어졌으나 일직선상에 위치한 것처럼 보인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양식의 팔작지붕으로 연대가 분명치 않으나 광해군때에 명정전과 함께 재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뜻풀이 : ‘명정(明政)’이란 ‘정사를 밝힌다’는 의미이다. 15-h-1 명정전 참조.
15-h-3 문정전文政殿
위치와 연혁 : 임금이 신하들과 국사를 논의하던 편전이다. 정면과 측면 각 3칸팔작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1484년 창경궁을 지을 때 함께 세웠다. 임진왜란때 화재로 소실되어 광해군 때 재건하였고, 일제 시대에 철거되었다가 1986년에 다시 지었다. 이 때 문정전 앞의 긴 회랑은 복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궐도』의 모양과는 다르다.
명정전은 조회를 하는 정전이고, 문정전은 국사를 의논하는 편전이다. 각 소관부처에서 안건을 제기하면 이 곳에서 어전회의를 열고 다양한 토론을 거쳐 결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임금과 신하의 언행을 사관이 낱낱이 기록하여 실록의 자료를 만들었고, 잘못된 결정이 내려지면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등에서 시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뜻풀이 : ‘문정(文政)’은 ‘문교(文敎)로써 정치를 편다’는 의미이다. 문교는 예악(禮樂)과 법도(法度)로써 백성들을 교화하는 것을 말한다.
15-h-4 문정문文政門
위치와 연혁 : 문정전의 정문이다. 인조 23년 4월 27일 소현세자의 상을 치를 때 시강원(侍講院) 4), 익위사(翊衛司) 5) 및 정원(政院), 옥당이 함께 문정문 밖에 나아가 배곡례(拜哭禮) 6)를 행하였고, 왕실의 종친, 문무 백관 등은 집현문(集賢門)에서 배곡한 일이 있다. 1747(영조 23)년에는 문정문 밖에서 대왕대비전(숙종의 계비 인원왕후)에 존호(尊號) 책보(冊寶) 7)를 올렸다.
뜻풀이 : ‘문정(文政)’은 ‘문교(文敎)로써 정치를 편다’는 의미이다. 15-h-3 문정전 참조.
15-h-5 숭문당崇文堂
위치와 연혁 : 명정전 뒤쪽 빈양문으로 가는 복도각(複道閣) 남쪽에 있는 건물이다. 창경궁 건립 당시의 전각 이름들에서는 빠져 있어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다. 1633(인조 11)년의 『창경궁수리소의궤(昌慶宮修理所儀軌)』에 숭문당 12칸을 수리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광해군 때 창경궁을 중건하면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1830(순조 30)년의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그 해에 다시 중건했다.
영조가 이 곳에서 자주 경연을 열곤 했다.
뜻풀이 : ‘숭문(崇文)’은 ‘문치(文治)를 숭상한다’, 또는 ‘학문을 숭상한다’는 뜻이다. 영조는 특히 이를 ‘유학(儒學)을 숭상한다’는 뜻으로 풀이했다.<원전 2>
제작 정보 : 편액의 글씨는 영조가 쓴 것이다.
15-h-6 일감재자日監在玆
위치와 연혁 : 숭문당 안쪽에 걸려 있는 현판이다. 내부에 있어 밖에서는 볼 수 없다.
뜻풀이 : ‘일감재자(日監在玆)’는 ‘하늘이 날로 살펴보심이 여기에 계신다’는 뜻이다. 하늘이 항상 내려다보고 있으니 공경하는 마음을 잃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구절은 『시경』의 「주송(周頌)·경지(敬之)」편 8)에 나온다. 이 시에서 “공경할지어다, 공경할지어다. 천명이 밝은지라 명을 보전하기가 쉽지 아니하니, 높고 높아 저 위에 있다고 말하지 말지어다. 그 일에 오르내리어 날로 살펴보심이 여기에 계시니라.”라고 하였다.<원전 3>
15-h-7 광덕문光德門
위치와 연혁 : 홍화문의 북쪽 행각에 난 문이다.
뜻풀이 : ‘광덕(光德)’은 ‘덕을 빛낸다’는 의미이다.
제작 정보 : ‘德(덕)’자는 속자여서 ‘心(심)’ 위에 ‘一(일)’자가 생략되어 있다.
15-h-8 숭지문崇智門
위치와 연혁 : 홍화문 북쪽 행각에 난 문이다. 훈련도감에서 관장하였고 20명 내외의 숙직 군사를 두어 지켰다.
뜻풀이 : ‘숭지(崇智)’는 ‘지혜를 숭상한다’는 의미이다. 오행에서 ‘지(智)’는 북방에 해당하므로 북문의 이름에 쓰였다.
15-h-9 광정문光政門
위치와 연혁 : 명정전의 남쪽 회랑에 난 문이다. 1544(중종 39)년 9월 정시(庭試)에 광정문을 늦게 여는 바람에 5, 6천 명의 유생들이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앞을 다투다가 밟혀서 죽기도 하였다 한다. 1754(영조 30)년 3월 영조가 금위(禁衛) 9) 향군(鄕軍) 10)을 광정문 밖에서 소견한 일이 있다.
뜻풀이 : ‘광정(光政)’은 ‘정치를 빛낸다’는 의미이다.
15-h-10 영청문永淸門
위치와 연혁 : 명정전의 북쪽 행각에 난 문이다.
뜻풀이 : ‘영청(永淸)’은 ‘오래도록 맑다’는 뜻이다. 영원히 맑은 세상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15-h-11 빈양문賓陽門
위치와 연혁 : 명정전 뒤쪽의 회랑이 끝나는 부분에 있는 문이다. 외전 공간과 내전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에 있다. 1830(순조 30)년에 화재를 당했다가 1834년 복구하였고, 일제 시대에 철거되었다가 1986년에 복구하였다. 임금의 행차는 대부분 이 문을 거쳐 명정전으로 나갔다. 또 이 문으로 향축(香祝) 11)을 전하기도 하고, 문과 급제자들을 불러 만나기도 하였다.
뜻풀이 : ‘빈양(賓陽)’은 ‘밝음을 공경히 맞이한다’는 의미이다. ‘빈(賓)’은 ‘공경히 맞이한다’는 뜻이며, 빈양문이 동쪽에 걸려 있으므로 ‘양(陽)’자를 쓴 것이다. 명정전은 임금이 정무를 보는 곳이므로 ‘양’, 즉 태양은 임금을 상징하기도한다. 『서경』의 「요전(堯典)」에 “떠오르는 해를 공경히 맞이한다.[寅賓出日]”는 구절이 있는데, 송의 유학자 채침은 이 구절을 “인(寅)은 공경함이요, 빈(賓)은 빈객을 맞듯 예로 대접하는 의미이다.”<원전 4>라고 풀이하였다.
중국에도 빈양루(賓陽樓)라는 누각이 있는데 그 편액을 지은 취지를 요약하면,“주역에 해가 땅 위에 있는 괘가 ‘진(晉)’인데 군자가 이것을 보고 스스로 덕을 밝힌다.”<원전 5>고 되어 있다. ‘빈(賓)’을 ‘밝음을 향하여 나아가[進] 덕을 밝히라’는 의미로 풀이한 것이다.
──────────────────────────
1) 박석은 얇고 넓적한 돌이다.
2) 품계석은 정전의 앞마당에 벼슬의 높낮이 순서대로 관계(官階)의 품(品)을 새겨 세워둔 돌이다.
3) 왕세제는 왕의 아우로서 왕위를 이어받기로 결정된 사람을 칭한다.
4) 시강원은 세자시강원이라고도 하며 왕세자의 교육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5) 익위사는 세자익위사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 왕세자의 신변을 호위하던 기관이다.
6) 배곡례는 장례 때 절을 하고, 곡을 하며 죽음을 애통해 하는 예식 절차를 말한다.
7) 책보는 왕이나 왕비의 덕을 기리고자 존호를 올릴 때 함께 올리던 옥책(玉冊)과 금보(金寶). 옥책은
왕이나 비의 덕을 기리는 글을 새긴 옥 조각을 엮어 만든 책이고, 금보는 존호를 새긴 도장이다.
8) 시경의 주송편은 주나라의 덕을 칭송한 노래들을 모은 것이다. 송은 주로 제사에서 연주되었다. 경지는 성왕이 조상 앞에서 좋은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하며 신하들을 독려하는 내용이다.
9) 금위는 금군(禁軍)이라고도 하며, 궁 안에서 임금을 호위하던 친위병을 일컫는다.
10) 향군은 조선시대에 지방에서 뽑혀 서울로 올라온 군사를 일컫는다.
11) 향축은 제사에 쓰이던 향과 축문을 가리킨다.
<원전 1> 『후한서』 「장제기」, “明政無大小, 以得人爲本.”
<원전 2> 『영조실록』 18년 11월 13일(戊辰), “上召見太學齋任于崇文堂, 敎曰, 此堂卽先朝所建,而扁以崇文, 卽崇儒之意, 而召見爾等於此堂, 予意非偶也. 遂下御製文題曰寵榮賢關.”
<원전 3> 『시경』 「주송·경지」, “敬之敬之, 天維顯思, 命不易哉, 無曰高高在上, 陟降厥士, 日監在玆.”
<원전 4> 『서경』 「요전」, “分命羲仲, 宅?夷, 曰暘谷. 寅賓出日, 平秩東作, 日中, 星鳥. 以殷仲
春, 厥民析, 鳥獸?尾.”; 이 구절에 대한 채침의주, “寅敬也, 賓禮接之如賓客也.”
<원전 5> 「빈양루기」, “名本諸書, 而義則取諸易也. 易曰日出地上晉, 君子以自昭明德. 士之登斯樓者, 顧名思義, 將有所激而興者乎. 夫其有思也, 必有興也.”
──────────────────────────────────────────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
- 첨부파일
-
-
등록된 파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