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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궁궐의 현판과 주련-창덕궁_신선원전 권역]
등록일
2010-12-06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401





13. 신선원전新璿源殿 권역



 






13-h-1 선원전璿源殿

 

위치와 연혁 : 임금의 어진을 모시는 전각이다. 『한경지략』에 “선원전은 창덕궁안의 인정전 서쪽에 있다. 동쪽문을 만녕문이라 하는데 내각과 통한다. 숙종, 영조, 정조의 영정을 봉안하였고,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이 친히 분향전배(焚香展拜) 1)하고, 생신날에는 차를 올리는 다례(茶禮)를 행한다.”<원전 1>고 되어 있다.

현재 구선원전(보물 817호)과 신선원전으로 나눠 부른다. 구선원전은 인정전 서쪽에 있는데, 1656(효종 7)년 경덕궁(慶德宮: 지금의 경희궁) 경화당(景華堂)을 헐어다 지었다. 1900년에 고종이 경복궁과 창덕궁의 상징성을 살리고자 선원전 제 1실을 각각 증건하였다. 『동궐도』를 보면 건물 앞뒤로 네 개의 드므 2)를 놓아 신성함을 나타내었다.

신선원전은 창덕궁의 서북쪽 대보단터 앞에 있다. 총독부가 1921년 신축하여 구 선원전과 덕수궁 선원전에 있던 태조, 세조, 원종(元宗, 1580~1619년), 숙종, 영조, 정조, 순조, 문조(효명세자), 헌종, 철종(哲宗, 1831~1863년), 고종의 어진을 모두 이 곳에 옮겨 놓았다. 어진은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옮겼다가 모두 불타고말았다. 현재는 열한 분의 위패를 옮겨오고, 뜰에 순종 임금을 상징하는 신성한 소나무 열 두 그루를 심었다.



뜻풀이 :
‘선원(璿源)’은 ‘왕족의 유구한 계보’를 의미한다. ‘璿(선)’은 ‘璇(선)’과 같은 글자로 좋은 옥돌(美玉), 더 나아가 왕족을 의미하며, ‘源(원)’은 시조로부터 흘러내려온 유래를 뜻한다. 『구당서(舊唐書)』 「열전(列傳)·공의태자소(恭懿太子?)」 3)에, “선원(璿源)에서 경사가 길러져 나무처럼 그 꽃이 나누어졌네. 타고난 자질이 효성스러운데다, 하늘이 총명을 내려 주었네.”<원전 2>라고 하여 선원을 ‘왕실’이란 의미로 사용하였다. 조선에서는 이 말을 적극 차용하여 왕실을 선파(璿派), 왕실의 족보를 『선원보략(璿源譜略)』, 『선원록(璿源錄)』으로 부르는 등 널리 사용하였다.



제작 정보 : 구선원전에는 현판이 걸려 있지 않으므로, 이 현판은 신선원전에 걸린 것을 가리킨다.






13-h-2 숙경문肅敬門

 

위치와 연혁 : 신선원전의 남서쪽 문이다.

 

뜻풀이 : ‘숙경(肅敬)’은 ‘엄숙과 공경’이다. ‘肅(숙)’과 ‘敬(경)’은 같은 의미이다. 시경 「주송(周頌)·청묘(淸廟)」편에 “심원하도다 맑은 사당에, 제후들이 엄숙하고 공경하고 온화하고 밝게 돕도다.”<원전 3>라는 구절에서 주자는 ‘肅(숙)을 ‘敬(경)’으로 풀이하였다. 선원전의 공간에 맞는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말이다.






13-h-3 몽답정夢踏亭

 

위치와 연혁 : 선원전 서쪽 정자 옆의 바위에 새겨진 금석문이다. 몽답정은 훈국북영(訓局北營) 4)안에 있는데 주변의 바위와 냇물의 경치가 빼어난 곳이었다.

이 곳에는 활을 쏘는 사정(射亭)이 있어 괘궁정(掛弓亭)이라 하였으며, 연꽃 구경하는 정자를 군자정(君子亭)이라고 하였다.

 

뜻풀이 : ‘몽답(夢踏)’은 ‘꿈길을 밝고 간다’는 뜻이다. 『영조실록』에서는 영조가 말하기를, “훈장(訓將) 김성응(金聖應, 1699~1764년) 5)이 북영(北營)에 작은 정자를 한 채 지었는데 내가 대보단에서 바라보고 이름을 몽답정(夢踏亭)이라고 내려 주었으니 이를 걸게 하라.”라고 하여 이름을 영조가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원전 4> 그러나 『동국여지비고』에서는 숙종이 일찍이 꿈에 이 정자에 행차한 일이 있어 이 이름을 하사한 것이라고 전한다.<원전 5>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 6)의 『아정유고(雅亭遺稿)』에 몽답정에서 지은 시가 여러 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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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향전배는 궁궐, 종묘, 문묘, 능침 등에 향을 피우고 참배하는 것을 이른다.

2) 드므는 넓적하게 생긴 독을 일컫는 순우리말이다. 궁궐의 화재를 막기 위해 상징적으로 비치했는데,드므에 물을 담아놓으면 불의 귀신인 화마가 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에 놀라 도망칠 것이란 믿음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3) 공의태자는 당숙종의 열두 번째 아들로 이름은 소다.

4) 훈국북영은 창덕궁 북쪽에 있던 훈련도감의 분영.

5) 김성응은 조선후기의 무신이다. 자는 군서(君瑞)이고 어영대장과 병조판서를 지냈다.

6) 이덕무의 자는 무관(懋官), 호는 형암(炯庵)·아정(雅亭)·청장관(靑莊館)이다. 청(淸)나라의 학문을 깊이 수용하였고 정조의 총애를 받아 규장각 검서관을 지냈다. 문학에 뛰어나 조선 후기 4대가로 꼽힌다.


 

<원전 1> 『한경지략』, “璿源殿, 在昌德宮內仁政殿西, 而東門曰萬寧, 通于內閣, 奉安肅宗英宗正宗御容, 朔望上親行焚香展拜, 誕辰行茶禮, 如皇朝奉先殿之禮.”

<원전 2> 『구당서』, 「열전·공의태자소」 “毓慶璿源, 分華若木. 天資純孝, 神假聰明.”

<원전 3> 『시경』 「주송·청묘」, “於穆淸廟, 肅?顯相.”

<원전 4> 『영조실록』 35년 2월 3일(甲寅), “上御恭?閤, 召見藥院諸臣. 洪啓禧等請令尙方, 製進小毛衣, 上却之. 上曰, 再昨孝章廟歷臨時, 寢具不隨, 而只枕一木枕矣. 又曰, 訓將金聖應, 於北營作一小亭, 予於大報壇望見, 賜號夢踏亭, 以揭之矣.”

<원전 5> 『동국여지비고』 「한성부(漢城府)·누정(樓亭)」 ‘몽답정’, “肅宗嘗於夢中御此亭, 故賜今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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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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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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