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설명
- 제목
- [궁궐의 현판과 주련-창덕궁_관람정 권역]
- 등록일
- 2010-11-15
- 주관부서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3610
11. 관람정觀纜亭 권역
11-h-1 관람정觀纜亭
위치와 연혁 : 일명 반도지(半島池) 가에 놓인 부채꼴 모양의 정자이다. 『궁궐지』에는 선자정(扇子亭)이라고 나와 있다.
『동궐도』에는 관람정이 보이지 않고, 반도지 또한 두 개의 방형 연못과 한 개의 원형 연못으로 나뉘어 있다. 한편 순종 때 그려진 『동궐도형』에는 연못이 호리병 모양으로 합해져 있다. 아마 이때에도 배를 띄웠을 것으로 추정되며, 『동궐도형』이 그려진 이후, 즉 순종 때 일제 강점기에 반도 형태의 연못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뜻풀이 : ‘관람(觀纜)’은 ‘닻줄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뱃놀이를 구경하고자 하는 뜻을 가진다. 람(纜)은 닻줄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뱃놀이를 의미한다.
제작 정보 : 서체는 행서이다.
11-j-2 존덕정尊德亭의 주련
위치와 연혁 : 관람정이 있는 연못을 내려다 보는 언덕에 있으며 1644(인조 22)년에 세웠다. 『궁궐지』에 의하면 존덕정 옆에 반월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반월지가 지금의 반도지로 변형된 듯하다. 원래는 육면정으로 불렀으나 나중에 존덕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숙종이 존덕정과 관련한 친필 시 등을 여기에 걸기도 했으며, 선조와 인조의 어필도 이곳 존덕정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헌종 연간의 존덕정 현판은 헌종의 어필이었다고 하는데 현재 현판은 걸려 있지 않다. 존덕정의 내부는 매우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되어 있다. 육모정의 가운데는 여의주를 사이에 두고 황룡과 청룡이 희롱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이 정자의 격식이 상당히 높았음을 보여 준다.
존덕정 북쪽 창방에는 정조(1752~1800년)가 지은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가 나무판에 새겨져 있다. 1)
뜻풀이 :
(1) 盛世娛遊化日長(성세오유화일장)
태평성세에 즐겁게 놀며 덕화(德化)의 날은 기니,
(2) ?生咸若春風暢(군생함약춘풍창)
온갖 백성 교화되어 봄바람 화창하네.
임금의 교화가 잘 이루어진 세상에서 백성들이 태평한 삶을 누리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덕화는 옳지 못한 사람을 덕으로 감화시키는 것이고, 함약(咸若)은 제왕의 교화(敎化)를 칭송하는 말이다. 『서경』 「고요모(皐陶謨)」에서 “?, 咸若時, 惟帝其難之(아, 너의 말이 옳으나 다 이와 같이 함은 요 임금도 어렵게 여기셨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뜻풀이 :
(3) 庶俗一令趨壽域(서속일령추수역)
뭇 백성들 한결같이 태평성대로 나아가게 하고,
(4) 從官皆許宴蓬山(종관개허연봉산)
근신(近臣)들도 모두가 봉래산 잔치에 허락 받았네.
정치가 잘 이루어져 백성들이 편안하고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잘 어울리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수역(壽域)은 태평한 세상을 뜻한다.
뜻풀이 :
(5) 艶日綺羅香上苑(염일기라향상원)
고운 봄날 비단 치마는 상림원(上林苑)에 향그럽고,
(6) 沸天簫鼓動瑤臺(비천소고동요대)
하늘까지 치솟는 피리소리·북소리는 요대(瑤臺)를 뒤흔드네.
궁궐 후원에서 즐겁게 놀이하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상림원은 한나라 때 임금의 동산 이름으로, 일반적으로 궁궐의 후원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상림원은 원래 진(秦)나라 때도 있었으나 황폐해진 것을 한 무제(武帝)가 수복하여 확장시켰으므로 상림원은 주로 한나라 궁궐을 일컫는다. 요대는 전설 속의 신녀(神女)가 산다는 누대로 아름다운 누대를 뜻한다. 비단 치마는 궁녀들이 입고 있는 실제의 치마일 수도 있고, 후원에 난만하게 피어 있는 꽃잎을 비유한다고 볼 수도 있다. 송나라 왕조(王操)의 「낙양춘(洛陽春)」<원전 1> 중 경련(頸聯)에서 따 온 구절이다. 왕조는 송나라 때 강남의 문인으로 자는 정미(正美)이다.
11-h-3 승재정勝在亭
위치와 연혁 : 폄우사(?愚?) 남쪽의 가파른 언덕 위에서 관람정을 굽어보고 있는 정자이다. 연경당 뒤편에 있는 농수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1907년 8월에 순종이 즉위하고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하고, 그 해 10월부터 창덕궁 수리에 들어갔는데 이 때 관람정 등과 함께 지어진 것이다.
뜻풀이 : ‘승재(勝在)’는 ‘빼어난 경치가 있다’는 뜻이다. ‘승(勝)’은 ‘아름답고 빼어난 경치나 고적(古跡)’을 가리킨다.
11-j-3 승재정勝在亭의 주련
뜻풀이 :
(1) 龍蛇亂?千章木(용사난획천장목)
용과 뱀은 천 그루 거목(巨木)을 어지러이 휘감았고,
(2) 環?爭鳴百道泉(환패쟁명백도천)
패옥(?玉)들은 백 갈래 샘물을 울리는구나.
용과 뱀처럼 구불구불 감고 올라간 넝쿨이 수많은 거목들을 마구 휘감고, 여러줄기의 샘물이 옥으로 만든 보물들이 울리는 듯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정경을 묘사했다. ‘천장목(千章木)’은 ‘천 그루의 나무’, 즉 수많은 나무를 뜻한다.
장(章)은 큰 나무를 세는 단위이다. 임천(林泉)의 승경(勝景)을 묘사한 것이다.
(3) 披香殿上留朱輦(피향전상류주련)
피향전(披香殿) 위에서 임금 수레 머무니,
(4) 太液池邊送玉杯(태액지변송옥배)
태액지(太液池) 연못가에 옥 술잔을 보내오네.
연못가의 전각에 임금의 수레가 행차하여 주연(酒宴)을 베푸는 모습을 그렸다. 왕안석(王安石, 1021~1086년) 2)의 「화어제상화조어(和御製賞花釣魚: 임금이 지은 「상화조어」에 화답하다)」<원전 2> 중 함련(?聯)에서 따 왔다. ‘피향전’과 ‘태액지’는 원래 한나라의 궁전과 연못 이름인데, 후대에 관습적으로 궁궐안의 전각과 연못을 일컬을 때 두루 쓰였다. 3) ‘피향(披香)’은 향기가 무럭무럭 풍긴다는 뜻이다.
11-h-4 폄우사
위치와 연혁 : 존덕정의 서남쪽 산기슭 언덕에 있는 정자다. 효명세자가 들러서 독서하던 곳이다. 건립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궁궐지』에 정조가 지은 「폄우사사영(?愚?四詠)」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1800년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궐도」에는 폄우사 정면 1칸에 직각 방향으로 담장이 이어져 맞배지붕의 세 칸짜리 건물이 있다.
뜻풀이 : ‘폄우(?愚)’는 ‘어리석은 자에게 돌침을 놓아 깨우쳐 경계한다’는 뜻이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말로 쓰인다. ‘폄(?)’은 ‘돌침’인데, ‘돌침을 놓아병을 치료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북송의 성리학자인 장재(張載, 1020~1077년) 4)가 글을 가르치던 서원(書院)의 동쪽 창문에 「폄우(?愚)」라는 제목의 글을, 서쪽 창문에 「정완(訂頑)」5)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 붙여 경계의 지침으로 삼은 적이 있다. 그는 나중에 이를 「동명(東銘)」과 「서명(西銘)」으로 바꾸었다.
‘사(?)’자를 ‘활터에 세운 정자’로 풀이하고 폄우사를 사정(射亭), 즉 활터에 세운 정자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이 글자는 높은 터에 지은 목재 건물을 뜻한다. 『서경』에서부터 용례가 보이는데 『서경』의 주석에 의하 면 흙이 높은 곳을 ‘臺(대)’라고 하고 나무가 있는 곳을 ‘?(사)’라고 한다고 하였다.<원전 3> 그러나 후대에는 그런 구분 없이 일반적으로 누각이나 누대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이 글자에서 오른쪽 ‘射(사)’는 형성(形聲) 문자에서 단순히 음을 나타내는 부분이며 ‘활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11-j-4 폄우사의 주련
뜻풀이 :
(1) 南苑草芳眠錦雉(남원초방면금치)
남쪽 동산에 풀 고우니 아름다운 꿩이 졸고 있고,
(2) 夾城雲下霓?(협성운난하예모)
협성(夾城)에 구름 따뜻하니 무지개가 내려오네.
고운 풀밭 위에서 아름다운 꿩이 한가롭게 졸고 있는 풍경과 따뜻한 봄날 피어 오르는 구름을 배경으로 무지개가 걸린 성곽의 모습을 묘사했다. 협성은 양변을 높은 담장으로 쌓아 그 사이로 통행하게 만든 길, 또는 성곽의 바깥 둘레에 다시 쌓은 성벽을 말한다. ‘예모(霓?)’는 무지개라는 뜻이다. 당나라의 시인 두목 6)이 지은 「장안잡제장구(長安雜題長句)」 육수(六首) 중 제 3수<원전 4>의 함련(?聯)에서 따왔다.
(3) 絶壁過雲開錦繡(절벽과운개금수)
절벽에 구름이 지나가니 수 놓은 비단이 펼쳐지고,
(4) ?松隔水奏笙簧(소송격수주생황)
성긴 솔이 물 건너 편에서 생황을 연주하네.
자연이 만드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생황 소리처럼 들리는 운치 있는 솔바람 소리를 묘사하였다. 두보 7)의 시 「칠월일일제종명부수루(七月一日題終明府水樓)」<원전 5> 중 제 1수의 경련(頸聯)에서 따온 구절이다.
(5) 林下水聲喧笑語(임하수성훤소어)
숲 속 아래 물 소리는 웃음 소리인 양 떠들썩하고,
(6) 巖間樹色隱房?(암간수색은방롱)
바위 사이 나무 빛깔은 방 창살을 숨기고 있네.
물 소리가 웃음 소리처럼 즐겁게 들리고, 바위 사이에 자라난 나무들 속에 거처하는 집이 보일락말락 숨어 있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숲 속의 즐겁고도 그윽한 생활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시는 당나라 문인 왕유 8)의 작품으로, 「칙차기왕구성궁피서응교(?借岐王九成宮避暑應敎)」<원전 6> 중 경련에서 따온 구절이다.
앞 구절의 ‘笑語(소어)’가 ‘語笑(어소)’로, 뒤 구절의 ‘巖間(암간)’이 ‘巖前(암전)’으로 된 곳도 많다.
(7) ?閣條風初拂柳(화각조풍초불류)
아름다운 누각에 한 줄기 바람은 버들을 막 스치고,
(8) 銀塘曲水半含苔(은당곡수반함태)
은빛 연못 물굽이에는 이끼 반쯤 머금었네.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묘사한 시구이다. 화각(?閣)은 단청을 칠해 그림같이 아름다운 누각을 뜻한다. 이는 당나라 시인 무평일(武平一, ?~741년) 9)의 「봉화입춘내출채화수응제(奉和立春內出綵花樹應制)」<원전 7> 중 경련에서 따온 구절이다.
11-h-5 빙옥지氷玉池
위치와 연혁 : 1688(숙종 14)년에 천수정(淺愁亭)의 터에 청심정(淸心亭)을 짓고 그 앞의 바위를 파서 조그마한 돌 연못을 만들었다. 이것을 빙옥지라 한다. 현재 청심정의 현판은 걸려 있지 않다.
뜻풀이 : ‘빙옥(氷玉)’은 ‘얼음과 옥’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또 ‘빙옥’은 고상하고 정결한 인품을 비유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빙자옥질(氷姿玉質)’은 얼음이나 옥같이 맑고 깨끗한 자질, ‘빙기옥골(氷肌玉骨)’은 얼음같이 깨끗한 살결과 옥같은 뼈대라는 뜻으로 미인 또는 매화를 형용한다.
제작 정보 : 청심정 앞에는 돌 연못을 바라보는 거북의 조각상이 있는데, 그 거북의 등에 새겨진 금석문이다. 윗부분에 작은 글씨로 ‘御筆(어필)’이라고 되어있어 임금의 글씨임을 나타낸다.
11-j-6 청심정?心亭의 주련
위치와 연혁 : 존덕정 뒤쪽 산 중턱에 지은 네모난 정자이다. 1688(숙종 14)년에 천수정 터에 청심정을 짓고, 그 앞의 바위를 네모나게 파서 빙옥지를 만들어 두었다. 현재 청심정에는 현판은 걸려 있지 않고 네 기둥에 주련이 걸려 있다.
뜻풀이 :
(1) 松排山面千重翠(송배산면천중취)
산허리에 늘어선 솔은 천 겹으로 푸르고
(2) 月點波心一顆珠(월점파심일과주)
물 속에 비친 달은 한 덩이 구슬이로다.
청심정이 위치한 공간을 묘사하고 있다. 위 구절은 청심정이 있는 산중턱에 소나무가 무성함을 설명했고, 아래 구절은 정자 앞에 있는 네모난 돌 연못인 빙옥지에 달이 비치는 정경을 표현하였다.
이 구절은 본래 당나라 백거이 10)의 칠언 율시 「춘제호상(春題湖上)」<원전 8>의 함련 두 구절을 딴 것이다.
(3) 巖桂高凝仙掌露(암계고응선장로)
바위의 계수나무에는 높이 선장(仙掌)의 이슬이 맺히고
(4) ?蘭淸暎玉壺氷(원란청영옥호빙)
동산의 난초엔 맑게 옥병의 얼음이 비치네.
위 구절은 청심정 주위 바위에 자라는 계수나무에 신선의 이슬이 맺혀, 이 이슬을 먹으면 정자의 주인 또한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암시를 한 것이다. 선장은 신선의 손바닥을 뜻한다. 아래 구절은 정자 주인의 정신 세계가 높고 맑음을 ‘난(蘭)’과 ‘옥호빙(玉壺氷)’이란 시어를 빌려 표현한 것이다. 옥호빙이란 옥병 속의 얼음이란 뜻으로 정신 세계가 깨끗함을 상징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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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과 번역은 서향각의 편액 참조.
2) 왕안석은 북송의 정치가이자 문인으로 자는 개보(介甫),호는 반산(半山)이다. 부국강병을 위한 신법(新法)을 제정하여 실시하였고, 뛰어난 산문과 서정시를 남겨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3) 창덕궁에서는 애련지 연못 가에‘태액’이라는 전서가 있다. 태액의 자세한 풀이는 9-h-8 태액 참조.
4) 장재의 자는 자후(子厚), 호는 횡거(橫渠)이다.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을 조화시켜 우주에 대한 일원론적 시야를 설파하였다.
5) 정완은 어리석음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6) 두목에 대해서는 10-j-1 연경당의 주련 참조.
7) 두보에 대해서는 11-h-1 관람정 참조.
8) 왕유에 대해서는 7-j-10 한정당 기둥의 주련 참조.
9) 무평일은 당나라의 시인으로, 원래의 이름은 견(甄)인데 평일(平一)이라는 자로 더 유명하다.
10) 백거이에 대해서는 9-h-8 태액 참조.
<원전 1> 왕조, 「낙양춘」, “帝里山河景莫裁 就中春色似先來 暖融殘雪當時盡 花得東風一夜開?日綺羅香上苑 沸天簫?動瑤臺 芳心只恐煙花暮 閒立高樓望幾回”
<원전 2> 왕안석, 「화어제상화조어」, “ 幄晴雲拂曉開 傳呼仙仗九天來 披香殿上留朱輦 太液池邊送玉杯 宿蘂暖含風浩蕩 ?鱗淸映日徘徊宸章獨與春爭麗 恩許?歌豈易陪.”
<원전 3> 『서경』 「태서(泰誓) 상」, “惟宮室臺?陂池侈服, 以殘害于爾萬姓”; 이에 대한 채침의주(註), “土高曰臺, 有木曰?.”* 이덕수, 『新궁궐기행』(대원사, 2004), 345쪽.
<원전 4> 두목, 「장안잡제장구」(제 3수) “雨晴九陌鋪江練 嵐嫩千峰疊海濤 南苑草芳眠錦雉 夾城雲暖下霓? 少年羈絡靑紋玉 遊女花簪紫?桃江碧柳深人盡醉 一瓢顔巷日空高.”
<원전 5> 두보, 「칠월일일제종명부수루」(제 1수) “高棟曾軒已自?, 秋風此日灑衣裳. ?然欲下陰山雪, 不去非無漢署香. 絶壁過雲開錦繡,疏松夾水奏笙簧. 看君宜著王喬履, 眞賜還疑出尙方.”
<원전 6> 왕유, 「칙차기왕구성궁피서응교」 “帝子遠辭丹鳳闕 天書遙借翠微宮 隔窓雲霧生衣上卷?山泉入鏡中 林下水聲喧笑語 巖間樹色隱房? 仙家未必能勝此 何事吹笙向碧空.”
<원전 7> 무평일, 「봉화입춘내출채화수응제」,“?輅靑?下帝臺 東郊上苑望春來 黃鶯未解林間? 紅蘂先從殿裏開 ?閣條風初變柳 銀塘曲水半含苔 欣?睿藻光韶律 更促霞觴畏景催.”
<원전 8> 백거이, 「춘제호상」, “湖上春來似?圖, 亂峯圍繞水平鋪. 松排山面千重翠, 月點波心一顆珠. 碧?線頭抽早稻, ?羅裙帶展新蒲. 未能抛得杭州去, 一半勾留是此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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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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