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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32 ] 충남과 대전을 대표하는 상징적 건물
등록일
2008-11-17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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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 ◆ 충청남도청 ◆





1. 등록번호 : 제18호(2002년 5월 31일 등록)

2. 소유자 : 충청남도

3. 설계자 : 조선총독부 영선계

4. 시공자 : 스스키겐지로(須須木權次郞)

5. 건립연도 : 1932년

6. 면적 : 건축면적 2,376㎡, 연면적 4,798.53㎡ (3층 제외)

7. 위치 :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 287-2

8. 현 용도 : 업무시설

9. 구조 : 조적조



충남도청은 충남과 대전을 대표하는 상징적 건물이며, 오랫동안 대전의 중심으로서 기능 하였다. 충남도청은 대전역과 마주보는 형태로 세워져 두 건물을 잇는 거리가 대전의 중심축이기도 했다. 구 대전역은 철거되었으나, 충남도청 건물은 현재도 대전을 찾는 이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어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18호로 등록·관리하고 있다.



충남도청이 원래부터 현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공주에 있었으나 1931년 1월 13일 당시 사이토 마코토(齊藤實) 총독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을 발표하면서 대전 이전이 추진되었다. 당시 도청 소재지인 공주 주민들의 강한 저항과 반발이 있었지만, 1931년 4월 일본 귀족원에서 충남도청 대전 이전안이 통과되면서 확정되었다.

공주에 있던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옮기게 된 배경은 대전에는 토착세력이 별로 없어 일본인 세력이 확장하기 좋았고, 당시 철도부설과 함께 교통의 중심지로서 대전이 부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대전을 충남의 중심지로 활용하면 충남지역을 장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독부에서는 도청 이전에 따른 공주 지역민들의 저항을 무마시키기위해 공주의 숙원사업이었던 금강철교(등록문화재 제232호)를 부설해 주었다.

도청 건물은 1931년 6월 15일 기공식, 12월 12일에 상량식을 거행하고 1932년 8월 29일 준공되었다. 공사기간은 14개월로 매우 짧았으며, 공사비용은 당시 돈으로 35만 9천원이 소요되었다. 건립 당시 충남도청은‘ㄷ’자 형태의 평면에 지하1층, 지상2층 규모였다. 1층이 32실, 2층이 33실, 지하에 7실이 배치되었다. 벽돌조 건물이지만 외벽 마감은 건물 배면을 제외하고 스크래치 타일을 붙였다.



스크래치 타일(속칭 재봉선 타일)은 당시 유행하던 것으로 갈색의 표면에 거친 질감의 줄무늬로 독특한 입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 타일은 벽돌과 같은 크기이다. 배면은 적벽돌 쌓기로 이루어져있다. 창호 외부는 철재, 내부창과 출입구는 목재로 하였으며, 지붕은 철근콘크리트 내진 구조로 설계되었다.

건물내외부에는 장식적인 요소를 많이 배치하여 미적인 부분도 고려하였다. 아치형 현관의 벽면들을 요철모양으로 파내어 장식적 요소를 가미하였고, 건물의 하중을 받는기둥과 기단의 모서리는 곡선 처리하여 유연성을 살렸다. 내부에는 천장과 바닥에 6종의 장식과 모자이크가 12개소나 배치되어 있다.



1930년대 충남도청과 쌍둥이처럼 닮은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 평양에 건축된 평안남도 도청이 그것이다. 건물형태와 스크래치 타일을 사용한 외벽마감이 같았다. 이처럼 두 건물이 비슷한 원인은 두 건물 모두 같은 시공회사인 스스키사가 맡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충남도청이 당시 관공서의 전형적인 건물 형태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외벽에 부착된 53개의 장식타일은 단순한 외벽에 변화를 주고 있다. 1991년에 장식타일이 조선총독부의 휘장인 오동나무 꽃문양이라는 주장으로 철거론이 대두되기도 하였으나, 당시에 유행하던 단순한 장식으로 판명되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장식타일의 무늬는 정사각형을 엇 비켜서 8각형을 만들고 원과 2등변 세모꼴을 배열한 것이다.



1950년(당시 도지사 김영진) 6월 27일부터 이곳에 임시정부가 머물렀으며, 7월 1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떠난 후에도 16일까지 임시 중앙청으로 사용되었다. 1952년 잠시 충남도의회 청사로 사용된 이후 지금까지 충남도청으로 기능하고 있다. 충남도청은 사용인원이 증가하고 기능이 확대됨에 따라 1960년 기존 2층에서 3층으로 증축하였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쳐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대전·충남의 역사를 대변하던 충남도청 건물도 이제는 도청 이전이 확정된 현실에서 이후의 활용방안을 연구해야할 것이다. 충남도청은 대전역과 함께 오랫동안 이 도시의 축이었다. 그러한 방법으로 충남도청 건물을 도정박물관(道政博物館)으로 재사용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외국의 경우 기존 관청 건물은 대부분 박물관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역사성이 담긴 건축물이 배제된 도시에서 우리는 아무런 역사도 생각해 낼 수 없다. 과거가 살아숨쉬며, 오늘과 함께 할 때 도시는 풍요로워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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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디자인기획에서 발간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Vol.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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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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