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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 집옥재 권역]
등록일
2010-06-28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5187







14. 집옥재集玉齋 권역 







14-h-1 집옥재集玉齋

 

위치와 연혁 : 건청궁 서편에 있는 건물이다. 1881(고종 18)년에 창덕궁 함녕전(咸寧殿)의 북별당(北別堂)으로 지었으며,<원전 1> 1891(고종 28)년에 경복궁 보현당(普賢堂) 1) 뒤쪽으로 이건(移建)하였다.<원전 2> 2층 건물인 집옥재는 도서관으로 쓰였다. 집옥재의 장서 목록인 『집옥재서적목록(集玉齋書籍目錄)』(奎 11676)이 현재 규장각에 남아 있어, 집옥재에 소장되었던 도서의 종류와 분량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집옥재서적목록』은 1908(隆熙 2)년 규장각 분과규정(分課規程)이 제정됨에 따라 도서과(圖書課)에서 왕실의 여러 도서들을 모아 황실 도서관을 설립할 목적으로 집옥재의 장서를 규장각에서 인수할 때에 작성한 것이다.
 

뜻풀이 : ‘집옥(集玉)’은 ‘옥같이 귀한 보배를 모은다’는 뜻이다. 집옥재는 수많은 도서를 모아 놓은 서재의 기능을 하였으므로 ‘옥처럼 귀한 서책을 모아둔 집’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제작 정보 : 현판의 좌측에 서사자(書寫者)를 나타내는 ‘미원장(米元章)’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미원장은 북송의 서예가인 미불 3)을 일컫는다.






14-j-1 집옥재集玉齋의 주련

 

위치와 연혁 : 집옥재 정면의 여섯 기둥에 주련이 걸려 있다.

 

뜻풀이 : 

(1) 灑潤含膏 雲氣多壽 (쇄윤함고 운기다수)

촉촉이 젖어 기름지니 운기(雲氣)는 장수하게 해 주고,

(2) 稱物納照 鏡心彌光 (칭물납조 경심미광)

만나는 사물마다 비추어 주니 거울은 더욱 밝도다.

 

집옥재의 이름 중에서 ‘옥(玉)’의 ‘온윤(溫潤)’한 덕목을 설명한 것이다. 촉촉이 비를 내리는 구름처럼 임금께서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고, 사물을 비추는 거울처럼 임금 또한 사리를 밝게 판단하여 정치를 잘 하라는 염원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운기다수(雲氣多壽)’는 구름 기운에는 사람을 장수하게 하는 성질이 있다는 말로, 당나라 때 학자 단성식(段成式, 803?~863년) 4)의 『유양잡조(酉陽雜俎)』 「광지(廣知)」편에 나온다.<원전 3> ‘칭물납조(稱物納照)’는 모든 사물들이 고루 햇빛을 받는다는 의미로, 서진(西晋) 시대의 문인 육기(陸機, 260~303년) 5)의 「연연주오십수(演連珠五十首)」에 보인다.<원전 4>

 

제작 정보 : 왼쪽에 필사자인 ‘王杰(왕걸)’이라는 이름과 ‘王偉人印(왕위인인)’이란 사각의 음각 도장이 새겨져 있다. 왕걸(王杰, 1725~1805년) 6)은 청나라 때의 문인으로 조맹부의 서법에 능했다.


 



뜻풀이 : 

(3) 玉樹陵소 雲煙煥采 (옥수능소 운연환채)

아름다운 나무가 하늘에 솟으니 안개구름 찬란히 빛나고,

(4) 寶花留硏 筆墨生香 (보화류연 필묵생향)

귀한 꽃이 벼룻가에 머무니 필묵(筆墨)에 향기가 나도다!


집옥재 주위의 아름다운 풍광과 집옥재 안에 소장된 귀한 서화 작품과 문방구들을 표현한 구절이다.

앞 구절에서 ‘옥수(玉樹)’는 진귀한 보석으로 만든 나무, 또는 느티나무를 가리키며 뛰어난 인재를 비유하기도 한다. ‘능소(陵?)’는 하늘에까지 솟는 것을 의미하며 능소화를 가리키기도 한다. 뒤의 구절에서 ‘보화(寶華)’는 귀중한 꽃을 의미하며 혹 모란의 별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연(硏)’은 ‘연(硯)’과 통용되었으며, 꽃이 벼룻가에 머문다는 것은 벼루에 꽃이 새겨진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제작 정보 : 왼쪽에 ‘張國華(장국화)’라고 적혀 있고 아래에 사각의 도장이 찍혀있으나 정확한 판독이 어려워 누구인지는 미상이다.
 

뜻풀이 :

(5) 西山朝來 致有爽氣 (서산조래 치유상기)

서산에 아침이 되니 상쾌한 기운이 이르고,

(6) 太華夜碧 人聞淸鐘 (태화야벽 인문청종)

태화산(太華山)에 밤 깊으니 맑은 종소리를 듣도다!

 

집옥재의 맑고 깨끗한 분위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앞 구절은 진(晉)나라 왕휘지(王徽之, 338?~386?년) 7)가 자신의 근무 태만을 지적하는 상관 환충(桓?, 328~384년)에게 대답한 구절이다. 자신은 벼슬에 뜻이없고 속세를 훌쩍 초월하였음을 은유한 구절이다.<원전 5>

아래 구절은 당나라 때 시인인 사공도(司空圖, 837~908년) 8)의 시론서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에서 뽑은 것으로, ‘고고(高古)’라는 풍격을 설명한 내용이다.<원전 6> 태화산(太華山)은 중원의 오악(五岳) 중 서악으로 꼽히는 산이다. 섬서성(陝西省) 화음현(華陰縣)의 남쪽에 있으며 화산(華山)이라고도 부른다.



 

제작 정보 : 왼쪽에 필사자인 ‘옹방강’이라는 이름과 ‘담계’라는 사각 도장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색깔이 칠해져 있지 않아, 세심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청의 문인 옹방강은 김정희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문인들과 많은 교유를 하여 조선의 청조학 수용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4-h-2 협길당協吉堂

 

위치와 연혁 : 집옥재의 동쪽에 집옥재와 붙어 있다. 협길당이 지어진 연대는 명확하지 않다. 1881(고종 18)년에 함녕전의 별당으로 집옥재를 지을 때 같이 지었거나,<원전 7> 아니면 집옥재를 1891(고종 28)년에 보현당 뒤쪽으로 이건할 때 지었을 가능성이 높다.<원전 8>

경복궁에는 협길당이 두 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868(고종 5)년에 만경전(萬慶殿)의 북행각(北行閣)으로 만들어진 협길당이 그 하나이다.<원전 9> 만경전은 자경전 북쪽, 만화당(萬和堂)의 남쪽에 자리 잡은 건물이었다. 일제 때 나온『궁궐지』에도 이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원전 10> 그런데 『궁궐지』의 집옥재 항에서도 건물의 동쪽에 협길당이 있다고 기록<원전 11>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경복궁에는 협길당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두 채가 되는 것이다. 다만, 『북궐도형』에는 집옥재 동쪽의 협길당만 기재되어 있고 만화당에는 협길당이 없어,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다.

뜻풀이 :
‘협길(協吉)’은 ‘함께 복을 누린다’는 뜻이다. ‘협(協)’은 ‘함께’, ‘길(吉)’은 ‘복’을 의미한다.



 

제작 정보 : 현판은 명나라 말기의 서예가 동기창(董其昌, 1555~1636년) 8)의 글씨이다. ‘吉(길)’자의 윗 부분이 표준 서체는 ‘士(사)’이지만 여기서는 ‘土(토)’의 형태를 취했는데, 서법에서 흔히 나타나는 속체이다. ‘堂(당)’에서 ‘土(토)’ 위에 점을 더한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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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현당은 건청궁 서쪽에 있었던 전각이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현판만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미불에 대해서는 곤녕합의 주련 참조.

3) 단성식은 벼슬에있는 동안 왕실 비각(秘閣)의 책을 모두 읽어, 박학(博學)이라고 불렸다.『유양잡조』는 당시

괴이한 사건, 언어,풍속 등을 기술한 책이다.

4) 육기는 오나라 명문가 출신이나 오나라가 망한 후 학문에 전념했다. 팔왕(八王)의 난에 휘말려 죽음을 당했다. 수사와 기교가 뛰어난 시로 육조 시대 화려한 시풍을 이끌었다.

5) 왕걸은 섬서(陝西) 한성(韓城)출신으로 자는 위인(偉人), 호는 성원(惺園)·보순(?淳)·외당(畏堂). 1761(건륭26)년 진사에 급제해 벼슬이 동각태학사(東閣太學士)에 이르렀다.

6) 왕휘지는 동진때 사람으로 자는 자유(子猷).서예가 왕희지(王羲之, 307~365년)의 다섯번째 아들이다. 아버지와 함께 고고하고 얽매임없는 성품으로 일화를 많이 남겼다.

7) 사공도는 산서성(山西省) 하중우향(河中虞鄕) 출신. 869년 진사(進士)에 급제, 벼슬이 지제고(知制誥)에 이르렀다. 그의 시는 기품이 있어 만당의 으뜸으로 꼽혔다.

8) 동기창은 명나라 말기의 문인, 화가 겸 서예가. 자 현재(玄宰), 호 사백(思白)·향광(香光)·사옹(思翁),시호는 문민(文敏). 높은 관직에 올랐으나 정쟁을 피해 사임하고 문인 서화가로 더욱 이름을 날렸다.

 

<원전 1> 『일성록』 고종 18년 9월 24일(癸丑),“營建所, 以咸寧殿北別堂堂號, 及集玉齋上樑文製述官·書寫官·懸板書寫官差出, 啓. 咸寧殿北別堂堂號集玉齋, 集玉齋上樑文製述官上護軍金炳始, 書寫官大護軍金元植, 懸板書寫官直提學金永壽.”

<원전 2> 『고종실록』 권28, 고종 28년 7월 13일(乙亥), “命寶賢堂改建, 集玉齊移建, 令重建所擧行.”

<원전 3> 단성식, 『유양잡조』, 「광지」 편, “山氣多男, 澤氣多女, 水氣多?, 風氣多聾, 木氣多?,石氣多力, 阻險氣多?, 暑氣多殘, 雲氣多壽, 谷氣多痺, 丘氣多狂, 衍氣多仁, 陵氣多貪.”

<원전 4> 육기, 『문선』, 「연연주오십수」, “靈輝朝?, 稱物納照.”

<원전 5> 『진서(晉書)』 「열전」, 권50, “?嘗謂徽之曰 卿在府日久, 比當相料理. 徽之初不酬答,直高視, 以手版?頰云, 西山朝來, 致有爽氣耳.”

<원전 6> 사공도, 「이십사시품」\ 「고고」, “畸人乘眞, 手把芙蓉, 汎彼浩劫, ?然空縱, 月出東斗,好風相從, 太華夜碧, 人聞淸鐘, 虛佇神素, 脫然畦封, 黃唐在獨, 落落玄宗.”

<원전 7> 『일성록』 고종 18년 9월 24일(癸丑), “營建所, 以咸寧殿北別堂堂號, 及集玉齋上樑文製述官^書寫官^懸板書寫官差出, 啓. 咸寧殿北別堂堂號集玉齋, 集玉齋上樑文製述官上護軍金炳始, 書寫官大護軍金元植, 懸板書寫官直提學金永壽.”

<원전 8> 『고종실록』 권28, 고종 28년 7월 13일(乙亥), “命寶賢堂改建, 集玉齊移建, 令重建所擧行.”

<원전 9> 『일성록』 고종 5년 6월 10일, “營建都監以新建各殿堂號及門名別單啓. 別單.…(중략)…萬慶殿, 西行閣建和堂, 北行閣協吉堂·?熙堂.”

<원전 10> 『궁궐지』, 「경복궁」, “萬慶殿…(중략)…北行閣十八間, 以東有協吉堂, 以西有福熙堂, 及平在門.”

<원전 11> 『궁궐지』, 「경복궁」, “集玉齋…(중략)…以東有協吉堂十九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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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1]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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