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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조선왕릉의 비밀 ⑫ - 광릉]
등록일
2009-09-14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888



                사적 제 197 호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산 99-2 
            
광릉 가는길:
서울(미아리)→의정부→축석고개→광릉수목원→광릉(33㎞)




                                            
< 광릉 | 光陵 >


  
<세조는 봉분 주위에 둘렀던 병풍석을 없애고 난간석만 두르는 등 능제를 간소화하였다>

조선 7대 세조(世祖, 1417~68)와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83) 윤씨의 능이다. 광릉은 조선조 내내 풀 한 포기의 채취도 금할 정도로 잘 보호되어 동식물의 낙원이자 천연의 자연 박물관이다. 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1445년 수양대군으로 책봉되었다. 권력에 대한 야심이 컸던 세조는 1452년 단종 즉위 후 다음해 1453년 10월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키고 권력을 장악하였으며, 1455년 단종에게서 왕위를 건네받았다.


<광릉의 숲은 세조의 유언대로 조선왕조 내내 풀 한 포기도 뽑지 못하게 할 정도 잘 보호되어 오늘날에는 천연 그대로 살아 있는 자연 박물관이 되고 있다>

밖으로는 국력을 크게 강화해 두 차례나 북방의 여진족을 정벌하거나 회유하였고, 안으로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찬술(纂述)하고 편찬(編纂)을 시작하는 등 국가의 모든 제도를 정비하는 많은 치적을 쌓았다.


       <정희왕후 능역에서 바라본 정자각. 광릉은 참도가 없는 유일한 조선왕릉이다>


               <광릉은 조선 왕릉 가운데 동원이강릉으로 조영된 첫 왕릉이다>

정희왕후는 판중추부사 윤번(尹?)의 딸로 11세 때 가례를 올려 슬하에 의경세자(추존되어 덕종), 예종(睿宗), 의숙공주를 두었다. 의경세자가 20세에 요절하고, 예종이 19세로 즉위하여 1년 2개월 만인 20세에 승하하자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13세의 자산군(者山君, 成宗)을 왕위계승권자로 지명하여 당일로 즉위시키고 7년간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했다. 계유정난 때 세조를 독려했던 일화나 조선시대 최초의 수렴청정 등 정희왕후는 강인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1483년 춘추 66세로 온양행궁에서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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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문화에서 발간한 [조선 왕릉 답사 수첩]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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