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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사정전, 사정문, 사현문]
등록일
2010-03-02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2540






4. 사정전 권역
 
 







4-h-1 사정전思政殿


위치와 연혁 : 사정전은 왕이 평상시 거처하며 정사(政事)를 보살피던 곳이다. 근정전 뒤 사정문 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에 만춘전, 서쪽에 천추전이 있다. 경복궁 창건 당시인 1395(태조 4)년에 지었으며,<원전 1> 1553(명종 8)년에 불탄 뒤 재건했다.<원전 2> 임진왜란 때 불탔으며, 1867(고종 4)년에 중건하였다.

뜻풀이 :
‘사정(思政)’은 ‘선정(善政)을 생각하다’라는 뜻이며, 정도전이 작명하였다.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이를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를 잃게되는 것이므로 왕으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여 정치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정도전이 임금에게 올린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어버리는 법입니다.  대개 임금은 한 몸으로써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지만, 수많은 백성들은 슬기롭고 어리석고 현명하고 불초(不肖)한 자들이 섞여 있고, 번거로운 수많은 일들은 옳고 그르고 이롭고 해로운 것들이 섞여 있어서, 임금이 된 이가 만일에 깊이 생각하고 세밀하게 살피지 않으면, 어찌 일의 마땅함과 부당함을 구별하여 처리하겠으며, 사람의 착하고 착하지 못함을 알아서 등용하거나 퇴출할 수 있겠습니까? 예로부터 임금이 된 이라면 누가 높고 영광되고자 하고 위태로움을 싫어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옳지 못한 사람을 가까이 해서 계책이 옳지 못하였기 때문에 화를 당하고 패망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니, 곧 진실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옵니다. 『시경』에 말하기를, ‘어찌 너를 생각지 않으랴마는 집이 멀 뿐이로다.’ 하였는데, 공자(孔子)는 ‘생각함이 없는 것이다. 왜 멀겠는가?’ 하였고, 『서경』에 말하기를, ‘생각하면 슬기롭고 슬기로우면 성인이 된다.’ 했으니, 생각이란 것은 사람에게 그 쓰임이 지극한 것입니다. 이 전(殿)에서 매일 아침 정사를 보시고 온갖 기틀을 거듭 모아서 전하께 모두 품달하면, 조칙(詔勅)을 내려 지휘하시는 데 더욱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신은 사정전(思政殿)이라 이름 짓기를 청합니다.” <원전 3>


 

제작 정보 : 현판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이조판서로 있던 조석우(曺錫雨, 1810~?년)가 썼다. <원전 4> 글씨에 뛰어나 일가를 이루었다고 전한다.




4-h-2 사정문思政門



위치와 연혁 :
사정전의 남쪽 문이다. 1867(고종 4)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에 만들었다.<원전 5> 사정문은 3칸으로 되어 있다. 문의 가운데 칸은 왕이 드나들 때 사용하였으며, 신하들은 좌우의 문을 이용하였다.
 


 

뜻풀이 : ‘사정(思政)’은 ‘선정(善政)을 생각함’을 의미하며, 정도전이 작명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사정전을 참조.
 

 
4-h-3 사현문思賢門

위치와 연혁 :
사정전의 동쪽 문이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지 않다. 1867(고종 4)년 중건 때, 사정전의 동쪽 행랑의 전각문을 득영문(得英門), 서쪽 행랑의 전각문을 숭현문(崇賢門)으로 한다고 하였는데, 현재의 사현문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북궐도형(北闕圖形)』 1)에 사현문은 나타나지 않으며,『궁궐지』에는 기록되어 있다.


 

뜻풀이 : ‘사현(思賢)’은 ‘군주가 어진이[賢者] 얻기를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이 표현은 군주의 정치란 독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자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져야 한다는 유교의 일반적 사고를 잘 드러낸다. 군주가 어진이 얻기를 생각하는 일에 관해서, 『서경』 「열명(說命)」 편 2)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왕(王)이 글을 지어 이르기를, ‘(하늘이) 나로써 사방을 바로잡게 하시기에 나는 덕(德)이 선왕들과 같지 못할까 두려워 이 때문에 말하지 않고 공손히 침묵하며 도(道)를 생각하였다. 그런데 꿈에 하느님[上帝]께서 나에게 어진 보필을 내려 주셨으니, 그가 나의 말을 대신할 것이다.’”<원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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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궐도형』은 북궐, 곧 경복궁의 평면 배치도다. 19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남문인 광화문으로부터 북문인 신무문까지의 건물 배치를 그렸다.

2) 『서경』의 「열명」편은 중국 은나라 20대 왕인 고종(高宗)이 재상인 부열(傅說)에게 명한 말을 기록한 것이다. 인용에서 왕, 즉 ‘나’로 나오는 이가 고종이다.

<원전 1> 『태조실록』 권8, 태조 4년 10월 7일(丁酉). 이 책 55쪽 근정전 원전 1 참조.

<원전 2> 『명종실록(明宗實錄)』 권15, 명종 8년9월 14일(丁巳), “景福宮 大內火. 太祖卽位三年所創, 康寧^思政二殿及欽敬閣, 皆燒盡”. ; 『명종실록』 권15, 명종 8년 9월 17일(庚申), “答曰,思彼慘災, 豈能安心? 然不至此生病, 特以觸冒時候, 痛頭氣倦, 故使之?候也. 正闕不可久墟,營?之時, 思政^康寧 二殿, 所當首役.”

<원전 3> 『태조실록』 권8, 태조 4년 10월 7일(丁酉), “天下之理, 思則得之, 不思則失之. 蓋人君以一身, 據崇高之位, 萬人之衆, 有智愚賢不肖之混. 萬事之繁, 有是非利害之雜. 爲人君者, 苟不深思而細察之, 則何以別事之當否而區處之, 人之賢否而進退之? 自古人君, 孰不欲尊榮而惡危殆哉? 親近匪人, 爲謀不臧, 以至禍敗者, 良由不思耳. 『詩』曰, 豈不爾思! 室是遠而, 孔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 『書』曰, 思曰睿, 睿作聖.思之於人, 其用至矣, 而是殿也, 每朝視事於此,萬機?臻, 皆?殿下, 降?指揮, 尤不可不之思也. 臣請名之曰, 思政殿.”

<원전 4> 『고종실록』 권3, 고종 3년 12월 9일(甲午). 이 책 57쪽 근정전 원전 3 참조.

<원전 5> 『고종실록』 권4, 고종 4년 11월 8일(丁巳), “營建都監, 以追後營建堂號門名別單啓.…(중략)…思政殿南行閣門思政門, 東行閣門得英門, 西行閣門崇賢門.”

<원전 6> 『서경』 「열명」, “王庸作書以誥曰, 以台, 正于四方, 台恐德弗類, 玆故弗言, 恭?思道.夢, 帝賚予良弼, 其代予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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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1]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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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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