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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궁궐의 현판과 주련-창덕궁_낙선재 권역 2]
등록일
2010-09-20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795

 







7-h-6 보소당寶蘇堂


위치와 연혁 :
낙선재의 동쪽에 걸린 현판이다. 낙선재를 건립한 헌종의 당호(堂號) 1)이기도 하다.


 

뜻풀이 : ‘보소(寶蘇)’는 ‘소식(蘇軾)을 보배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본래 담계 옹방강 2)이 소식을 사모하여 보소재(寶蘇齋)라는 호를 사용하였고, 추사 김정희 또한 같은 당호를 썼으므로 보소당 또한 이들 주변 인물의 당호가 아닌가 추측되어 왔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해 헌종의 당호로 확정되었다.

『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이 전하는데, 보소당에 수장된 인장을 신위(申緯,1769~1847년) 3)와 조두순(趙斗淳,1796~1870년) 4)이 편집한 인보(印譜)이다. 3권으로 되어 있다.






7-h-7 석복헌錫福軒
 


 

위치와 연혁 : 낙선재 동쪽에 자리잡아 안 사랑채의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1848(헌종 14)년 후궁인 순화궁(順和宮) 경빈 김씨의 처소로 건립하였다.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졌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한 뒤, 순정효황후 윤비(尹妃,1894~1966년)가 이 곳에서 은거하다 별세하였다.



 

뜻풀이 : ‘석복(錫福)’은 ‘복을 내려 준다’는 의미이다. 『시경』, 「주송(周頌)·열문(烈文)」에, “빛나고 문채 있는 제후들이, 이런 복을 내려 주도다[錫?祉福].

나에게 무궁하게 내려 주어, 자손들이 보존케 하도다.”<원전 1>라는 구절이 있다. 자손 대대로 복을 누리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7-h-8 수강재壽康齋

 

위치와 연혁 : 석복헌 동쪽에 있는 건물이다. 본래 세자궁이었으나 낙선재를 지을 때 개조하여 대왕대비인 순원왕후(순조비)의 처소로 활용하였다. 원래 조선 태종이 세종에게 보위를 물려 준 다음 거처하던 수강궁 자리인데, 단종이 이 곳에 물러났다가 영월로 떠났고, 세조가 이 곳에서 승하하였다. 그 후 궁이 없어졌다가 정조가 1785년 문효세자(文孝世子, 1782~1786년)의 글 읽는 장소로 삼고자 다시 지었다. 효명세자가 1827(순조 27)년 대리청정(代理聽政)하면서 이 곳을 별당으로 삼은 일이 있다.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동쪽 문을 중춘문(重春門), 서쪽 문을 수강문(壽康門)이라 했다. 『동궐도』에는 두 개의 현판이 있는데 동쪽이 수강재, 서쪽이 경녕루(慶寧樓)라 되어 있다. 뒤편에는 취운정(翠雲亭)이 있다.




 
 

뜻풀이 : ‘수강(壽康)’은 ‘오래 살고 건강하다’는 의미이다. 『서경』 「홍범(洪範)」에서 말한 오복(五福)인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5)에서 따온 말로, 장수와 강녕을 기원한 말이다.






7-h-9 상량정上凉亭



 

위치와 연혁 : 한정당 서쪽 돌기둥에 올라 앉은 육각 정자이다. 『궁궐지』와 『동궐도형』에 “육모 정자로 평원루이다.[六隅亭 平遠樓]”라고 되어 있으므로 본래 이름이 평원루였음을 알 수 있다. 순종 이후에 이름을 바꾼 듯하다. 서쪽 담장에는 원형의 만월문(滿月門)이 있다.

 

뜻풀이 : ‘상량(上凉)’이란 ‘시원한 곳에 오른다’는 뜻이다. 이 정자의 위치가 높은 지대에 시원스럽게 앉아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제작 정보 : 본래 옹방강 6)의 아들 옹수곤(翁樹崑, 1786~1815년)이 쓴 ‘평원루(平遠樓)’ 현판이 문화재관리국에 소장되어 있다. 유물번호 467. 옹수곤은 추사 김정희와 가깝게 교유하였으나 요절했다.






7-h-10 한정당閒靜堂
 
 

위치와 연혁 : 취운정 서쪽 담장의 일각문 밖에 있는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홑처마 7) 팔작지붕으로 동쪽 1칸만 누마루 8)로 구성하였다. 『동궐도형』에는 빈터로 되어 있으므로 1917년 이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뜻풀이 : ‘한정(閒靜)’은 ‘한가하고 조용하다’는 의미이다. 『회남자』 「본경훈(本經訓)」에 “진실되며 소박하고, 고요하며[閑靜] 조급하지 않다.”<원전 2>라는 용례가 보인다.






7-j-10 한정당閒靜堂 기둥의 주련

 

위치와 연혁 : 한정당은 창덕궁에서 연경당, 낙선재 다음으로 주련의 수량이 많아 주련 연구에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뜻풀이 :

(1) 平安竹每日報信(평안죽매일보신)

평안한 대나무는 매일 좋은 소식을 알려오고

(2) 無恙花四時賞春(무양화사시상춘)

탈 없는 꽃은 사시에 봄을 감상케 하네.

 

대나무와 꽃을 사랑하며 사는 아취(雅趣)를 표현했다. 대나무가 잘 자라는 것을 매일 확인할 수 있으며 꽃들도 늘 정원 가득피어 사계절 내내 봄같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평안죽은 당나라 단성식(段成式, 803?~863년) 9)의 『유양잡조(酉陽雜俎) 속집(續集)』에서 유래했다. 이위공(李衛公, 571~649년) 10)이 북도(北都)의 수령으로 발령받았을 때 그 지방 동자사(童子寺)에 대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길이가 수 척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이위공은 유독 이 대나무가 사랑스러워서 그 절의 승려에게 매일 대나무가 평안한지 물었다.<원전 3> 여기서 유래하여 대나무는 평안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무양화는 평안죽과 대구를 맞추고자 만든 말로 후대 시인들의 시에 자주 등장한다. 원나라 때 학자이자 시인인 사응방(謝應芳, 1295~1392년)의 칠언고시「기요주파양현당생(寄饒州?陽縣唐生)」 중에 “매화는 탈이 없고 대나무는 평안하니, 한 해 저물도록 근심 없어 깊은 골짜기를 생각하네.”<원전 4>라는 표현이 보인다.


 

뜻풀이 :

(3) 萬年枝上花千朶(만년지상화천타)

만년 묵은 가지 위에 꽃 천 송이 피었고

(4) 四海雲中月一鑑(사해운중월일감)

사해의 구름 속에 달이 하나 비치네.

 

나라가 영원토록 융성하고 임금이 인정을 베풀어 주기를 기원한 시이다.


 

 

뜻풀이 :

(5) 春留桃實三千歲(춘류도실삼천세)

봄은 삼천 년의 복숭아를 남기고

(6) 秋見靈花八百年(추견영화팔백년)

가을에는 팔백 년의 신령한 꽃을 보네.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는 시이다. 위 구절은 삼천 년 만에 익는다는 서왕모(西王母) 11)의 반도(蟠桃)를 가리키는데, 이 복숭아를 먹으면 장수한다고 하여 축수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아래 구절의 신령한 꽃은 불로초라고도 불리는 영지(靈芝)를 가리킨다. ‘지초가 영화(靈華)가 된다.’<원전 5>는 말이 있고, 사람이 먹으면 팔백 년 동안 장수하는 종류가 있다고 한다.<원전 6>

 

뜻풀이 :

(7) 瓦當文延年益壽(와당문연년익수)

와당에는 연년익수(延年益壽)라고 씌어 있고

(8) 銅盤銘富貴吉祥(동반명부귀길상)

동반에는 부귀길상(富貴吉祥)이라고 새겼다.

 

기와에는 장수하라는 뜻의 글을 써 놓았고 구리 쟁반에는 부귀와 복을 누리라

는 글을 새겨 놓았다는 뜻이다. 12)

 

제작 정보 : 낙선재와 경복궁 함화당에도 같은 글귀가 걸려 있다.

 

 

(9) 未央樹色春中見(미앙수색춘중견)

미앙궁(未央宮)의 나무 빛깔을 봄 햇살 속에 보고

(10) 長樂鍾聲月下聞(장락종성월하문)

장락궁(長樂宮)의 종소리를 달 아래 듣는다.

 

미앙궁(未央宮)과 장락궁(長樂宮)은 중국 한나라 때 고조(高祖, 기원전 247?~기원전 195년)가 장안에 지었다는 궁궐 이름이다. 이를 빌려옴으로써 창덕궁이 매우 훌륭한 궁궐이며, 한정당이 특히 고즈넉한 운치가 있음을 은유하였다.

이 구절은 당나라 시인인 이빈(李頻, (?~876년)의 칠언율시 「낙유원춘망(樂遊原春望)」<원전 7> 중에서 경련의 두 구절을 따온 것이다.
 


 

 

뜻풀이 :

(11) 雲裏帝城雙鳳闕(운리제성쌍봉궐)

름 속 도성에는 한 쌍의 봉궐(鳳闕) 13)이요,

(12) 雨中春樹萬人家(우중춘수만인가)

빗속의 봄 숲에는 수많은 인가로다.

 

구름 속에 우뚝 솟은 궁궐의 모습과 봄비 내리는 중에 숲 속에 싸여 있는 평화로운 민가의 모습을 묘사했다. 한나라 때 궁궐은 높이가 20장(丈)이나 되었고 꼭대기에 구리로 만든 봉황을 설치했다고 한다.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701~761 또는 699~759년) 14)의 「봉화성제 종봉래향흥경각도중 유춘우중 춘망지작 응제(奉和聖製 從蓬萊向興慶閣道中 留春雨中 春望之作 應制; 임금께서 지으신 「봉래궁에서 흥경궁을 가는 행각에서 봄비 속에 머물면서 봄날 경치를 바라보며」라는 작품에 화답하여 짓다)」<원전 8>에서 따온 구절이다.

 

제작 정보 : 경복궁의 함화당에는 위 구절만이 걸려 있고, 창덕궁 연경당(演慶堂)에는 두 구절이 다 걸려 있다. 왕유의 같은 시 중에서 함련(?輿逈出千門柳,閣道廻看上苑花)은 취한정(翠寒亭)의 주련으로 걸려 있다.


 

뜻풀이 :

(13) 長樂鍾聲花外盡(장락종성화외진)

장락궁(長樂宮)의 종소리는 꽃 너머로 사라지고

(14) 龍池柳色雨中深(용지유색우중심)

용지(龍池) 15)의 버들 빛은 빗속에 더욱 짙다.

 

장락궁에 꽃이 만발하고 용지에 버들이 비에 젖어 더욱 푸르름을 묘사하여 궁중의 시절이 태평 무사함을 표현하였다.

이 시는 당나라 중기의 시인 전기(錢起, 722~780년) 16)의 칠언율시 「증궐하배사인(贈闕下裴舍人)<원전 9> 중에서 함련의 두 구절이다. 전기의 원래 시는, 궁중의 시절이 이토록 좋으나 자신은 십 년 동안이나 부(賦)를 지어 바치고도 임금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여 울적하게 지낸다는 내용이다. 속뜻은 벼슬에 대한 청탁을 내포하고 있다.


 

뜻풀이 :

(15) 一庭花影三更月(일정화영삼경월)

온 정원 꽃 그림자에 삼경의 달이 뜨고

(16) 千里松陰百道泉(천리송음백도천)

천리의 소나무 그늘에 백 갈래 샘물이 흐르네.

 

삼경의 달이 온 정원의 꽃을 비추고, 하나의 샘물이 백 갈래로 퍼져 만물을 적셔 주듯 임금의 은택이 널리 퍼짐을 은유한 시이다.

 

 

뜻풀이 :

(17) 不知鳳沼霖初霽(부지봉소림초제)

봉소(鳳沼)에 장마가 막 개인 줄은 모르고

(18) 但覺堯天日轉明(단각요천일전명)

요천(堯天)에 해가 차츰 밝은 줄만 아네.

 

태평 시절을 맞아 모든 관료들의 문운(文運)이 융성해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요천은 요(堯) 임금이 하늘[天]의 명에 따라 훌륭한 정치를 폈다는 뜻에서 제왕의 성덕이나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용어로 굳었다. 즉 당대가 태평성대임을 의미한다. 봉소는 글자 그대로는 봉황 연못이지만 당나라 때는 황제의 명령을 하달하는 행정의 중추 기관인 중서성을 봉황지, 봉소라고 부르기도 했다. 곧 관료가 목표로 삼는 요직을 은유한 것이다.

당나라 전기의 칠언 율시 「낙유원청망상중서이시랑(樂遊原晴望上中書李侍郞)」<원전 10> 중에서 함련의 두 구절을 따 온 것이다. 원래의 시는 전기가 중서성의 관원으로 있는 이 시랑(侍郞)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것인데, 작자는 ‘이 시랑이 자신에게도 장마(고난)가 끝나고 밝은 세상이 펼쳐진 줄 모르고 다만 천하가 태평한 줄만 안다’고 하여 상대방이 개인의 영달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국가의 안위에만 마음 씀을 칭찬하였다.







7-j-11 한정당閒靜堂 장지문의 주련




뜻풀이 :

(1) 春回禹甸山河外(춘회우전산하외)

봄은 우 임금의 천하 밖까지 돌아오고

(2) 人在堯天雨露中(인재요천우로중)

사람은 요 임금 시대의 우로(雨露) 가운데에 있네.

 

천하가 태평함을 중국 고대 우 임금·요 임금의 시대 17)에 빗대어 표현한 구절이다. 우로(雨露)는 임금의 은택을 뜻한다.



 

(3) 凌雲樹有千尋勢(능운수유천심세)

구름까지 솟은 나무는 천 길의 형세가 있고

(4) 映日花開百和香(영일화개백화향)

해를 받아 꽃이 피니 온갖 향기 풍기도다.

 

하늘에 닿도록 천 길 높이의 나무가 솟아 있고, 햇살 아래 고운 꽃이 향기롭게 피어 있는 한적한 풍경을 표현하였다.


 

 

(5) 彩毫閒試金壺墨(채호한시금호묵)

채색 붓으로 한가로이 금병 속의 먹을 시험하고

(6) 靑案時看玉字書(청안시간옥자서)

청옥(靑玉) 책상에서 때때로 주옥같은 글을 읽네.

 

좋은 붓에 귀한 먹을 묻혀 글씨를 쓰고, 청옥으로 만든 귀한 책상에서 훌륭한 글을 읽는 한가로운 운치를 표현했다. 금호(金壺)는 선인(仙人)이 주나라 영왕(靈王)에게 주었다는 먹통이다.


 

(7) 百尺樓臺瞻紫氣(백척누대첨자기)

백 척 누대는 자색의 기운 우러르고

(8) 三春花鳥醉東風(삼춘화조취동풍)

삼춘 18)의 꽃과 새는 동풍에 취하도다.

 

지상의 높은 누대, 즉 누각은 천상의 하늘을 바라보고, 봄 내내 꽃과 새가 어울린 나른한 봄날의 풍광을 표현한 구절이다.

 

(9) 奇石盡含千古秀(기석진함천고수)

기괴한 돌은 온통 천고의 빼어남을 머금었고

(10) 異花長占四時春(이화장점사시춘)

기이한 꽃은 길이 사계절의 봄을 차지하네.

 

수천 년 묵은 기괴한 모습의 수석과 기이한 꽃이 사시장철 번갈아 피어나는 풍경을 표현했다.






7-h-12 승화루承華樓


 

위치와 연혁 : 낙선재의 서북쪽; 상량정의 서쪽에 있는 2층 건물이다. 삼삼와(三三窩) 19)와 행각(行閣)으로 연결되어 있다. 『동궐도』과 『궁궐지』에서는 소주합루(小宙合樓)라고 표기하고, 아래 층을 의신각(儀宸閣)이라 했다. 이 곳은 동궁과 이어진 세자의 독서와 휴식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헌종 때 이를 승화루로 고쳐 서재로 사용하였다. 헌종은 이 곳의 장서를 목록 별로 정리하여 『승화루서목(承華樓書目)』이라 했는데, 이 목록을 보면 소장한 서적과 서화의 내용이나 수준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의신각 부분은 완전히 개방하였지만 본래는 사분합문(四分閤門) 20)이 있었다.



 

뜻풀이 : ‘승화(承華)’는 ‘정화(精華)를 잇는다’는 의미이다. 고금의 서적과 서화를 널리 수집하여 그 빼어난 정화를 이어받아 받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문화 군주로 이름이 높은 헌종의 서재로 어울린다.






7-h-13 향천연지香泉硏池

 


위치와 연혁 :
승화루 곁에 있는 장방형의 조그마한 돌 연못이다.

 

뜻풀이 : ‘향천연지(香泉硏池)’는 ‘향그런 샘물과 같은 벼루 모양의 연못’이라는 뜻이다. ‘硏(연)’은 ‘硯(연)’과 통용자이다.

 

제작 정보 : 글씨는 예서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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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호는 집의 이름, 혹은 집의 이름에서 따온 그 주인의 호이다.

2) 소식, 옹방강에 대해서는 7-j-1 낙선재 주련을 참조.

3) 신위는 시·서·화의 삼절(三絶)이라 불린 조선후기의 뛰어난 문인.

4) 조두순은 조선후기의 문신. 본관 양주(楊州), 자원칠(元七), 호심암(心庵), 시호 문헌(文獻)이다.『헌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고 조선 후기의 외교 문서를 모은 『동문휘고』를 엮었다.

5) 강녕은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 유호덕은 성품이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것, 고종명은 명대로 장수하고 편안히 죽는 것을 이른다.

6) 옹방강에 대해서는 7-j-1 낙선재 주련을 참조.

7) 홑처마는 서까래가 한 단으로 된 처마를 말한다.

8) 누마루는 다락마루라고도 하는데,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이다.

9) 단성식은 당나라말의 문인. 자는 가고(柯古). 궁중 비각(秘閣)의 책을 모두 읽어, 박학(博學)이라고 불렸다.『유양잡조』는 당시 괴이한 사건, 언어, 풍속 등을 기술한 책이다.

10) 이위공의 이름은 이정(李靖). 자는 약사(藥師). 당나라 개국공신으로 역사와 병법에 통달했다. 위국공(衛國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세에 이위공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1) 서왕모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여신(女神)인데, 불사의 약을 가진 선녀로 전해진다.

12) 이 주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7-j-1 낙선재의 주련 참조.

13) 봉궐은 궁궐의 문 또는 궁궐을 이르는 말. 중국 한나라 때에 궁궐의 문 위에 구리로 만든 봉황을 장식한데서 유래한다.

14) 왕유의 자는 마힐(摩詰). 당 격변기에 관직을 맡았다가 말년에 불교에 심취하고 자연에 은거해 많은 시와 그림을 남겼는데, 그림은 현전하지 않는다. 후대에 동기창에 의해 남종 문인화의 창시자로 추앙받았다. 시집 『왕우승집(王右丞集)』이 있다.

15) 용지는 용의연못으로, 당나라 현종(玄宗, 685~762년)이 흥경궁(興慶宮)에 만든 연못 이름이다. 봉지(鳳池, 봉황 연못)와 같은 의미로 쓰여 중서성(中書省)을 가리키기도 한다.

16) 전기의 자는 중문(仲文)이며 절강성 출생. 자연을 제재로 삼은 온화한 시를 많이 썼으며 특히 오언율시에 뛰어났다.

17) 우 임금·요 임금은 중국 고대의 전설상의 임금들이다. 요·순의 시대는 가장 이상적인 태평성대로 미화되어 왔다.

18) 삼춘은 봄의 석달을 뜻하며 맹춘(孟春), 중춘(仲春),계춘(季春)으로 나뉜다.

19) 삼삼와는 여섯모 움집이라는 뜻이며 귀한서적을 보관했을것으로 추측한다.

20) 사분합문은 문짝이 넷으로되어 좌우와 위아래로 여닫는문을 말한다.

 

 

<원전 1> 『시경』, 「주송\열문」 , “烈文?公, 錫?祉福, 惠我無疆, 子孫保之.”

<원전 2> 『회남자』 「본경훈」, “質眞而素樸, 閑靜而不躁.”

<원전 3> 단성식, 『유양잡조 속집』권10, “童子寺竹: (李)衛公言北都唯童子寺有竹一?, ?長數尺, 相傳其寺綱維, 每日報竹平安.”

<원전 4> 사응방, 『귀소고(龜巢稿)』 권17, 「기요주파양현당생」, “千七百里?陽縣 外孫書來如見面 九十三歲龜巢翁 中宵夢得重縫線 詩瓢山人來上游吾將結社招馴鷗 延陵昔日繼三讓 野水何處無孤舟 貧家幸爾年穀熟 買書敎兒耕且讀梅花無恙竹平安 世晩無勞念窮谷.”

<원전 5> 『전한서(前漢書)』 22권, 「예악지(禮樂志)」, “芝房歌云 齋房産草, 九莖連葉, 宮童效異,披圖按諜, 玄氣之精, 回復此都, 蔓蔓日茂, 芝成靈華.”

<원전 6> 『태평어람(太平御覽)』 986권,「약부(藥部)\지(芝)」, “虎芝生於名山之陰, 狀如虎, 食之身輕, 延壽八百年餘.”

<원전 7> 이빈,「낙유원춘망」, “五陵佳氣晩??, ?業雄圖勢自分. 秦地山河連楚塞, 漢家宮殿入靑雲. 未央樹色春中見, 長樂鐘聲月下聞. 無那楊花起愁思, 滿天飄落雪紛紛華.”

<원전 8> 왕유, 「봉화성제 종봉래향흥경각도중유춘우중 춘망지작 응제」, “渭水自?秦塞曲, ?山舊繞漢宮斜. ?輿逈出千門柳, 閣道廻看上苑花. 雲裏帝城雙?闕, 雨中春樹萬人家. 爲乘陽氣行時令, 不是宸遊玩物華.”

<원전 9> 전기, 「증궐하배사인」, “二月黃鶯飛上林, 春城紫禁曉陰陰. 長樂鍾聲花外盡, 龍池柳色雨中深. 陽和不散窮途恨, ?漢常懸捧日心.獻賦十年猶未遇, 羞將白髮對華簪.”

<원전 10> 전기, 「낙유원청망상중서이시랑」, “爽氣朝來萬里淸, 憑高一望九愁輕. 不知?沼霖初霽, 但覺堯天日轉明. 四野山河通?色, 千家砧杵共秋聲. 遙想?雲丞相府, 何時開閤引書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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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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