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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월성해자(月城垓子), 천년신라의 궁성을 감싸다
등록일
2008-12-30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4532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4호 해자 정비 -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2008년 12월 30일 11:00 경주시와 함께 천년신라의 궁성으로 알려진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북편에서 2006년 발굴조사 된 통일신라시대의 해자(垓子) 1기에 대한 정비를 마무리 하고 그 모습을 현장에서 공개한다. 해자(垓子)란 옛 시기 토성(土城)이나 석성(石城)의 외부 둘레를 판 후 그 안에 물을 가두어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기본적인 방어시설이다. 신라의 궁성인 월성의 북편지역에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습지가 형성되어 있어 자연 해자의 기능을 하여 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이곳의 습지 등을 재정비하여 10여개의 석축해자를 축조한 흔적이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에서 확인되기도 하였다. 이번에 정비가 이루어진 월성 4호 해자는 동서의 길이가 약 80m이고 남북의 너비는 약 40m에 달하는 장타원형 모양의 큰 규모로 해자 전체의 3/4정도가 남아 있으나 많은 석축이 무너지고 유실된 상태였다. 따라서 발굴된 유구의 상태와 조사 자료를 근거로 최대한 당시 해자의 원형에 가깝도록 정비하기 위하여 수차례 관계전문가의 자문과 검토를 거쳐 2년간의 보수작업 끝에 정비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자의 유실된 북서편 일부 구간은 현재 확인된 자료만으로 추정하는데 한계가 있어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부분까지만 정비하였다. 또한 내부에 있었을 물도 이번에는 채우지 않은 상태로 정비하였다. 향후 다른 해자가 조사되어 전체적인 양상이 확인되고 난 후 물을 채우는 등 종합적인 정비가 진행될 예정이다. 월성 4호 해자는 모두 3차례에 걸쳐 개축된 흔적이 확인된다. 7세기 후반 무렵 사람 머리 크기의 큰 강돌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쌓은 1차 해자와 8세기 전반경 잘 다듬은 장방형의 돌을 이용하여 쌓은 2차 해자, 그리고 강돌과 다듬은 돌을 혼용하여 축조한 마지막 3차 해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자의 축조 방법과 기능이 점차 변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특히 해자의 동쪽 석축에서는 물을 담기 위한 입수구(入水溝)가, 그리고 서쪽 석축에서는 물을 빼는 출수구(出水溝)가 마련되어 있다. 이는 전체 해자가 위치한 지형 자체가 동편에서 서편으로 가면서 지형이 낮아지고 있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즉 동쪽 해자의 물이 서쪽 해자로 흘러들어가고 다시 이 물이 그와 연접한 서쪽 해자로 계속 흐르게 하는 자연스런 치수를 고려한 것이다. 특히 구조나 기능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후기로 가면서 해자는 본래의 방어적인 기능보다는 조경용의 기능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정비가 마무리된 월성 4호 해자는 1980년대 복원된 동문지 북편의 해자와 함께 안압지(월지), 석빙고, 첨성대 등과 연계하여 경주의 문화유적을 찾는 국민들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게 되었으며, 천년 궁성인 신라 월성의 분위기를 한층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담당자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주헌, 지성진 전화번화 : 054-777-8805
발굴조사 당시 전경
<발굴조사 당시 전경>


경주 월성 4호 해자의 정비 후 모습
<경주 월성 4호 해자의 정비 후 모습>


경주 월성 4호 해자의 정비 후 모습1
<경주 월성 4호 해자의 정비 후 모습1>


2차 석축 모습
<2차 석축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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