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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지정예고

제목
"초조본 성지세다라니경" 등 31건
담당자
박수희
담당부서
동산문화재과
연락처
042-481-4915
토론기간
2008-10-28 ~ 2008-11-26
등록일
2008-10-31
조회수
3927

□ 초조본 성지세다라니경(初雕本聖持世陀羅尼經)

ㅇ 수량 : 1권 1축

ㅇ 규격 : 29.5×548.5㎝

ㅇ 시대 : 고려시대(11세기)

이 불경은 10세기 말에 인도 출신의 학승 시호(施護)가 번역한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다. ‘성지세다라니(聖持世陀羅尼)’라는 이름은 ‘덕망이 높은 지세보살(持世菩薩)의 주문’이라는 뜻이며, 수지(受持) 독송(讀誦)하면 무거운 죄도 소멸시킬 수 있으며,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설하고 있다. 각자(刻字)가 정교하고, 글자의 먹색 및 지질 등으로 보아 11세기 인출의 정각본으로서 초조판(初雕板)의 원형을 살필 수 있어 역사적 의미가 깊다. 권말에는 신역(新譯)할 때의 증의자(證義者), 철문(綴文), 필수(筆授), 증범문(證梵文), 증범의(證梵義), 윤문(潤文)자의 기록이 있어 그 당시 불경을 한역하는 방법 및 역경(譯經) 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서울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서울守國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ㅇ 수량 : 불상 1점, 복장유물 36종 84점

ㅇ 규격 : 불상 높이 104㎝

ㅇ 시대

- 불상: 고려시대

- 복장유물: 고려~조선

수국사는 세조대왕의 큰 아들인 의경세자(懿敬世子)가 20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덕종으로 추존하고 넋을 위로하고자 1459년(세조 5)에 그의 능 근처에 정인사(正因寺)를 창건하였다. 이후 사찰을 현재의 장소로 옮겨 짓고 수국사(守國寺)로 개명하여 왕실을 안녕과 수복을 축원하는 원찰(願刹)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제작연대가 적힌 발원문이 없어 정확한 조성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중후한 얼굴과 건장한 형태미 그리고 이중으로 입은 착의법과 자연스러우면서 특징 있는 옷 주름 등에서 13세기에서 14세기 전반기에 조성된 불상들과 양식적 특징이 유사하다. 즉, 힘과 중후함이 느껴지는 얼굴과 신체는 물론 왼쪽 어깨에서 짧고 촘촘하게 흘러내린 주림이 좁은 겹 오메가(Ω)형의 주름을 형성하고 있는 점과 금구 장식 없이 간결하게 처리된 승각기의 표현 등은 서산 개심사 아미타여래좌상(1280년 중수), 서울 개운사 아미타여래좌상(1274년경), 나주 심향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1544호) 등 13세기 중·후반 경의 불상들과 비교된다. 특히 이 불상에서 느껴지는 중량감 넘치는 건장한 남성적인 형태미는 고려후기 귀족풍의 단정하고 아담한 형태미를 추구했던 하나의 조류와는 또 다른 불교조각의 흐름과 미의식을 알려 주고 있어 그 의미가 크다.

불상 내에서는 조성당시의 발원문은 아니지만, 1389년(고려 공양왕 원년)과 1562년(명종 17)의 중수발원문이 발견되었고, 이외 고려 시중 최종준(崔宗俊, ?~1249)이 기해(1239)년에 인출하여 시납한 “일체여래전신사리보협진언” 등과 전적류, 다라니류, 오보병, 직물 등 많은 복장유물들이 발견되었다. 복장유물을 통해 이 불상이 원래 철원 보개산 심원사(현재 폐사됨)에 봉안되어 있었다는 사실과 순차적인 중수 연대와 발원자 등을 알 수 있어 불교조각사는 물론 불교전적, 직물사 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다.



□ 대동여지도 목판(大東輿地圖木板)

ㅇ 수량 : 11장(22면)

ㅇ 규격 : 32.0×43.0㎝

ㅇ 시대 : 19세기

조선시대 최대, 최고의 과학적 지도로 평가되는 <대동여지도>를 찍은 목판이며, 현전하는 것으로 알려진 12장의 목판 중 11장이다. 재질은 수령 100년 정도의 피나무이다. 목판에는 남북으로 120리, 동서로는 160리 정도 되는 공간의 지리정보가 조각되어 있다. 아울러 목판의 앞뒤 양면에 모두 조각이 되어 있다. 일부 해안·도서지역을 판각할 경우 전체 목판면의 일부만을 활용하게 되는데, 이 때 여백으로 남는 공간에는 다른 지역의 지도를 판각함으로써 목판의 활용도를 높인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 1804?~1866?)가 조선의 지도학을 집대성한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적 지도를 찍어내기 위해 만든 목판으로, 한국 과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 청구관해방총도(靑丘關海方摠圖)

ㅇ 수량 : 1축

ㅇ 규격 : 89×370㎝

ㅇ 시대 : 18세기

청구(靑丘)는 조선의 이칭 중의 하나로서 조선의 관방과 해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린 대형 지도다. 관방은 주로 청나라, 해방은 주로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조선뿐만 아니라 만주와 일본을 포괄하여 그린 지도다. 지도의 제작 연대는 1776년에 개명되는 평안도의 초산과 충청도의 니산이 표시되어 있어 그 이후로 추정된다.

조선 부분은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을 바탕으로 그렸다. 그러나 《동국지도》 그대로는 아니며, 동서가 아니라 남북을 좌우로 향해 그렸다. 또한 동서보다는 남북을 실제보다 훨씬 길게 그렸으며, 京都 등 중요 지점은 축척을 달리하여 크게 그렸다. 이런 형식의 지도는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보다는 관방과 해방을 한눈에 잘 볼 수 있도록 그렸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지도의 제작 수준이 높고 보관 상태도 양호하며 동일 계통의 지도 중 가장 우수한 편에 속한다.



□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ㅇ 수량 : 22첩

ㅇ 규격 : 30×20㎝

ㅇ 시대 : 1864년

대동여지도는 고산자 김정호(1804?~1866?)가 조선 철종 12년에 제작한 우리나라 전통 지도 중 가장 우수한 지도이다. 우리나라 전체를 남북 120리 간격으로 22층으로 나누고, 각 층에 해당하는 지역의 지도를 각각 1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각 권의 책은 동서 80리를 기준으로 펴고 접을 수 있도록 제작하여 사람들이 휴대하면서 편리하게 볼 수 있게 하였다. 곧 우리나라 전체를 모두 22첩에 나누어 수록하고(분첩식), 각 권의 책은 병풍처럼 펴고 접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절첩식). 이렇게 제작된 22첩을 모두 펼쳐 연결하면 세로 약 6.7m, 가로 약 3.8m 크기의 대형 우리나라 지도가 만들어진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의 이 대동여지도는 기지정된 대동여지도(보물 제850호,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신유본과 함께 갑자본으로는 가장 상태가 좋으며 완질로 갖추어진 것으로 그 가치가 높다.



□ 동여도(東輿圖)

ㅇ 수량 : 23첩

ㅇ 규격 : 30.5×20㎝

ㅇ 시대 : 19세기

김정호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23첩의 필사본 지도이다. 책별로 도로를 표시한 적색 실선의 두께가 다르며, 도로를 표시한 적색과 산줄기를 표시한 녹색의 색감들이 책별로 달라 동여도의 필사과정에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산계를 그린 회화적 솜씨나 글씨의 수준으로 보면 관에서 편찬을 주관한 지도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본이 대동여지도의 바탕도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관찬지도임에 분명한 필치와 색감을 가진 지도이며, 전체적으로 보면 대동여지도보다 더 많은 지명을 포함하고 있어서 자료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는 지도이다.



□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之圖)

ㅇ 수량 : 1축

ㅇ 규격 : 91.5×130㎝

ㅇ 시대 : 18세기

우리나라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관방지도이다. 압록강, 두만강 일대의 세밀한 교통망과 군사요지를 표시하였고, 여백에 만주지방의 연혁과 우리 민족의 옛터임을 밝히고, 청나라에 들어 심양, 요양, 건주를 각각 성경, 동경, 흥경으로 개명했음을 밝히고 있다. 의주에서 산해관까지의 자세한 길과 조선 북부지방의 지형과 하계, 국경지대의 길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북부지방의 하계망과 산맥 및 주요 산, 군현, 도로망과 주요지점을 자세하게 표시하고, 특히,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지대의 세밀한 교통망과 군사요지가 표시되어 있다. 만주 지방은 우리 나라의 북부지방과 같이 자세하지는 못하나 목책장성(木柵長城)과 만리장성의 일부가 표시되어 있다. 의주, 봉황성, 성경을 거쳐 산해관에 이르는 자세한 경로와 관(關), 참(站), 보(堡) 등의 요지를 자세히 표시하고 우리 나라의 회령, 경원에서 영고탑, 개원을 거쳐 성경에 이르는 경로도 비교적 자세히 표시하고 있다. 이 지도는 회화적인 가치 및 역사지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강역 연구에 있어서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 함경도전도(咸鏡道全圖)

ㅇ 수량 : 5책 26장

ㅇ 규격 : 38×22.6㎝

ㅇ 시대 : 18세기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5책의 함경도 군현지도첩이다. 도별도 3매와 군현지도 18매가 수록되었는데, 갑산·단천·북청·삼수·이성의 지도가 누락되었다. ‘비변사(備邊司)’라는 도장이 5책의 뒷부분에 있어, 비변사에서 소장하여 사용하던 지도였음을 알 수 있다.

함경도전도는 비변사 도장이 찍혀 있는 규장각 소장 다른 도의 군현지도첩과 비교할 때 몇 가지 차이가 있다. 다른 방안지도들이 도로를 직선으로 표시한데 반하여 함경도전도는 도로가 곡선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다른 도의 지도와 종이의 질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비변사에서 행정·군사적 목적으로 제작하여 사용한 관찬지도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지도이다.



□ 해서지도(海西地圖)

ㅇ 수량 : 3책 24장

ㅇ 규격 : 35×22.4㎝

ㅇ 시대 : 18세기

3책으로 구성된 황해도 군현 지도첩이다. 채색 필사본이다. 황해도에는 지도가 만들어질 당시에 23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문화·신천·안악이 누락되어 있다. ‘비변사(備邊司)’라는 도장이 3책의 배천 지도 뒷부분에 있어, 비변사에서 소장하여 사용하던 지도였음을 알 수 있다. 지도의 표기 방법은 도로를 적색, 청색, 황색으로 구분하여 대로, 중로, 소로를 나타내었으며, 봉수로는 가는 적선(赤線)으로 표시하였다. 지도 안에 산천, 면명, 다리, 서원, 창고, 사찰 등을 그려 넣었고, 지도 위 여백의 주기(註記)에는 민호(民戶)·전결(田結)·세곡(稅穀)·면리(面里) 등의 기초 정보가 표시되어 있다. 해서지도의 제작 시기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숙종 45년(1719)에 수군절도사령(水軍節度使營)으로 승격된 소강진(所江鎭)이 행령(行營)으로 표시되어 있어, 그 이후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변사에서 행정·군사적 목적으로 제작하여 사용한 관찬지도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지도이다.



□ 영남지도(嶺南地圖)

ㅇ 수량 : 6책 77장

ㅇ 규격 : 36.3×22㎝

ㅇ 시대 : 18세기

경상도 71개 고을을 그린 채색 필사본 지도로 총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2책의 경주와 4책의 남해·개령·의령·안음, 6책의 하양 지도 뒷면에 ‘비변사(備邊司)’라는 도장이 찍혀 있어, 비변사에서 보관하고 있던 지도였음을 알 수 있다. 지도의 제작 시기는 4책에 수록된 안음(安陰)과 산음(山陰)은 1767년에 안의(安義)와 산청(山淸)으로 개칭되는데, 이를 통해 볼 때 이 지도책은 176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5책의 하동 지도에 표시된 읍치가 영조 21년(1745)에 옮겨진 곳으로 표시되어 있어, 이 지도책이 1745년 이후의 상황을 근거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내용으로 볼 때 이 지도의 제작 시기는 1745년에서 1760년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 중앙 정부에서 지방파악을 위해 일괄적으로 제작된 비변사 지도로서의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 전주지도(全州地圖)

ㅇ 수량 : 1축

ㅇ 규격 : 149.9×89.8㎝

ㅇ 시대 : 18세기

이 지도는 산수화의 요소가 적극적으로 사용된 회화식 지도이다. 전주 성시 전체를 부감법으로 묘사하여 화면의 중앙에 배치하고 그 주변에 連峰이 이어지는 산수를 둘러 그렸다. 성내부의 경우 격자식의 도로를 경계로 가옥들이 밀집되어 있고 사이사이로 희고 붉은 도화꽃이 만개하여 전체적으로 밝고 화사는 느낌을 준다. 태조 어진이 모셔진 경기전의 경우 아직 조경묘가 세워지지 않았으며 그 자리에 나무가 우거지고 백로 떼가 앉아 있어 상서로움을 강조했다. 가옥과 건물의 경우 다소 옅은 먹선을 사용하여 정교하게 묘사했다.

산수의 경우 전체적으로 정선(鄭敾)의 필치가 뚜렷하게 엿보인다. 그러나 건물 묘사 및 인물 군상의 표현에서는 18세기 후반 이후의 화풍이 드러나고 있다. 이 시기 진찬도, 의궤 등과 비교하면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양식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정선의 영향을 유지하면서 제작된 18세기 후반 경의 우수한 회화식 지도로 추정된다. 세련된 구성과 필력을 구사하였고, 화격이 높고 묘사력도 뛰어나서 중앙화단에서 정통적인 회화훈련을 받은 화가가 그린 작품이라고 판단되며, 회화식 지도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이다.



□ 조선지도(朝鮮地圖)

ㅇ 수량 : 7책 164장

ㅇ 규격 : 49.8×38.5㎝

ㅇ 시대 : 18세기

7책으로 구성되어 있는 20리 방안 군현지도집이다. 1군현 1도엽으로 되어 있으며, 모든 지도가 동일한 경위선 조직위에서 그려져 있으나, 경위선 수치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일부 도엽에 비변사 도장이 찍혀 있다. 팔도구관당상제의 본격적인 시행과 함께 비변사는 일찍이 1리 방안 대축척지도를 만들어 지방 통치에 활용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1리 방안의 크기가 통일되어 있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이에 비변사는 일정한 크기의 20리 방안 위에 동일한 기호를 사용해서 군현지도를 그림으로써 앞 시기 지도집의 문제점을 해결했다. 우리나라 지도 발달사를 뚜렷이 보여주는 관찬 지도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다.



□ 호남지도(湖南地圖)

ㅇ 수량 : 7책 63장

ㅇ 규격 : 37.3×23.2㎝

ㅇ 시대 : 18세기

전라도의 군현을 그린 채색 필사본 지도로 총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책부터 6책까지는 제주·대정·정의 3개를 제외한 53개의 고을이, 7책에는 전라도전도와 전라좌도지도·전라우도지도 등 3개가 수록되어 있다. ‘비변사(備邊司)’라는 도장이 1책의 나주·3책의 무주부·6책의 광주·7책의 전라도전도인 호남지도 뒷부분에 찍혀 있어, 비변사에서 보관하며 사용되던 지도였음을 알 수 있다. 지도의 제작 시기는 남원(南原)의 명칭 대신에 일신(一新)이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추정이 가능하다. 즉 일신이란 명칭은 영조 15년(1739)으로부터 영조 26년(1750)까지 남원의 읍호가 강등되면서 잠시 사용되던 명칭이므로, 지도 제작도 1739년부터 1750년 사이로 추정이 가능하다. 경상도의 71개 고을의 지도가 모두 수록된 군현지도집으로, 현전하는 다른 도의 군현 지도집과 비교할 때 보존 상태나 지질, 정돈 등이 양호한 편이다. 중앙 정부에서 지방파악을 위해 일괄적으로 제작된 비변사 지도로서의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 호서지도(湖西地圖)

ㅇ 수량 : 6책 76장

ㅇ 규격 : 37×22.7㎝

ㅇ 시대 : 18세기

18세기 전반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청도 군현지도첩이다. 채색 필사본이다. 충청도 전체 지도 2장과 67장의 고을별 지도를 수록하고 있으며 모두 6책이다. 채색 필사본이며, 3책의 충청도 도지도(都地圖)와 5책의 문의(文義) 지도 뒷면에 ‘비변사(備邊司)’라는 도장이 찍혀 있어, 비변에서 보관하며 사용하던 지도임을 알 수 있다. 군현 지도는 1리 방안의, 도별 지도는 10리 방안의 눈금 위에 그렸다. 그러나 제4책의 12장과 제6책의 16장은 방안 지도가 아니며, 전통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편 지도 면에 적힌 주기(註記)에는 민호(民戶)와 남녀 인구수, 전답(田畓)의 면적, 환자 등 세곡(稅穀)의 양, 군정(軍丁), 경도(京都)로부터의 거리, 창고, 역참(驛站), 진도(津渡)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중앙 정부에서 지방파악을 위해 일괄적으로 제작된 비변사 지도로서의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 화동고지도(華東古地圖)

ㅇ 수량 : 1축

ㅇ 규격 : 187×198㎝

ㅇ 시대 : 16세기

이 지도는 “역대제왕혼일강리도” 계통의 세계지도인데 “역대제왕혼일강리도”의 아라비아 부분이 생략되고 중국 중심으로 그렸고 우리나라 지도를 합쳐 만들었는데 일본 지도는 생략되고 위치만 표시하였다.
이 지도는 조선과 중국을 중심으로 그려졌는데, 이는 16세기에 등장하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다는 파도 무늬이며 지도의 윤곽은 1402년의 “역대제왕혼일강리도”와 유사하지만 조선부분은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표시하였다. 다만 함경도 지역이 박락이 심하여 군현명을 알아보거나 백두산 지역을 잘 살펴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조선팔도와 중국 각성은 군현명의 바탕색을 달리하였다. 산동반도 남쪽의 황해에는 변동이 많았던 황하(黃河)의 유로 변천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된 지도로서 현전하는 지도가 매우 적으므로, 이 지도는 조선 전기 지도의 모습을 보여 주고, 16세기의 세계관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 해동지도(海東地圖)

ㅇ 수량 : 6책 128장, 2축 2장

ㅇ 규격 : 47×30.5㎝(책) / 178.7×232㎝(축)

ㅇ 시대 : 18세기

이 지도집에는 조선전도, 도별도, 군현지도 뿐만 아니라 세계지도(<천하도>), 외국지도(<중국도>, <황성도>, <북경궁궐도>, <왜국지도>, <유구지도>), 관방지도( <요계관방도>) 등이 망라되어 있다. 민간에서 제작된 지도집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데 활용된 관찬 군현지도집이다. 제8책의 팔도총도와 제4책의 서북피아양계전도는 회화식 대형 전도이며, 나머지 대부분의 지도들은 도지도, 도별 군현지도, 도내 군사적 요충지의 지도 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해동지도는 당시까지 제작된 모든 회화식 지도를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군현지도집 중 대표적이고, 국가차원에서 제작된 방대한 분량의 채색 필사본 회화식 지도로서 조선전도를 비롯하여 도별도, 군현지도 및 세계지도 등이 망라되어 있으며 지도에 지리지를 결합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 여지도(輿地圖)

ㅇ 수량 : 3책 33장

ㅇ 규격 : 31.5×21.6㎝, 경기: 74.6×59.9㎝

ㅇ 시대 : 18세기

천하도지도, 조선전도, 도성도 및 조선 군현지도를 망라한 채색 필사본 지도이다. 제1책에는 도성도, 사행로를 그린 지도, 중국지도, 조선전도 등이 그려져 있으며, 제2책은 조선의 도별도, 제3책은 중국의 성별 지도를 그렸다.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지도의 표현과 기법이 매우 뛰어난 지도이다. 여지도류 중 제작 시기가 비교적 빠른 편이며, 역사적·학술적 측면에서 가치가 높다.



□ 해동여지도(海東輿地圖)

ㅇ 수량 : 3책 244장

ㅇ 규격 : 34.1×22.2㎝

ㅇ 시대 : 18세기

이 지도책은 1-2책은 지도, 3책은 주기로 엮여 있는 지도책이다. 본 지도책은 군현이 작을 경우 20리 방안 간격을 크게, 군현이 큰 경우 20리 방안을 작게 그려 지도책의 크기에 맞추었다. 안동과 충주 부근 등 여러 고을을 하나로 합해 그린 경우도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도책의 제작 연대는 1776년에서 1787년 사이로 추정된다. 이 지도책은 모든 군현에 동일한 축척을 적용한 20리 방안의 지도책을 실제 사용하기 쉽도록 재편집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또한 이 지도책은 20리 방안의 군현지도가 김정호의 ꡔ청구도ꡕ등 대축척 조선지도로 이어지는 중간 단계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할 만 하다. 또한 동일 형식의 지도책이 아직까지 발견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크다.



□ 청구도(靑邱圖)

ㅇ 수량 : 2책 197장

ㅇ 규격 : 30.6×20.4㎝

ㅇ 시대 : 19세기

청구도는 김정호가 처음 제작한 전국지도로 완성 시기는 1834년이다. 김정호는 18세기 말부터 진행되어 왔던 기존 지도의 문제점 극복을 위한 노력에 공감하고,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 나름의 독창적인 생각을 반영하여 청구도를 제작하였다. 김정호는 종래 지리지에만 수록되던 정보를 지도에 수록하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청구도의 활용가치를 높이고자 했는데, 즉 모든 고을마다 호구 수, 토지 면적, 군사의 총수,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곡식의 총량, 한성까지의 거리 등을 기록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곳에는 그 내용을 기록하는 등 역사지리 정보를 첨기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청구도는 기존 전국지도 위에 중요 역사지리 정보를 비교적 상세하게 수록한 독특한 구성의 지도가 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이 청구도는 영남대학교 도서관 소장 <청구도>와 함께 보관 상태가 좋고 구성이 뛰어난 채색필사본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 청구도(靑邱圖)

ㅇ 수량 : 2책 197장

ㅇ 규격 : 30.7×20.5㎝

ㅇ 시대 : 19세기

청구도는 김정호가 처음 제작한 전국지도로 완성 시기는 1834년이다. 김정호는 18세기 말부터 진행되어 왔던 기존 지도의 문제점 극복을 위한 노력에 공감하고,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 나름의 독창적인 생각을 반영하여 청구도를 제작하였다. 김정호는 종래 지리지에만 수록되던 정보를 지도에 수록하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청구도의 활용가치를 높이고자 했는데, 즉 모든 고을마다 호구 수, 토지 면적, 군사의 총수,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곡식의 총량, 한성까지의 거리 등을 기록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곳에는 그 내용을 기록하는 등 역사지리 정보를 첨기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청구도는 기존 전국지도 위에 중요 역사지리 정보를 비교적 상세하게 수록한 독특한 구성의 지도가 되었다. 국내에 전하는 여러 본의 <청구도> 중 고려대학교 소장의 이 지도는 보존 상태가 뛰어나고 지도 발달사에서 의미가 크다.



□ 청구도(靑邱圖)

ㅇ 수량 : 2책 182장

ㅇ 규격 : 33.1×22.3㎝

ㅇ 시대 : 19세기

청구도는 김정호가 처음 제작한 전국지도로 완성 시기는 1834년이다. 김정호는 18세기 말부터 진행되어 왔던 기존 지도의 문제점 극복을 위한 노력에 공감하고,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 나름의 독창적인 생각을 반영하여 청구도를 제작하였다. 김정호는 종래 지리지에만 수록되던 정보를 지도에 수록하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청구도의 활용가치를 높이고자 했는데, 즉 모든 고을마다 호구 수, 토지 면적, 군사의 총수,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곡식의 총량, 한성까지의 거리 등을 기록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곳에는 그 내용을 기록하는 등 역사지리 정보를 첨기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청구도는 기존 전국지도 위에 중요 역사지리 정보를 비교적 상세하게 수록한 독특한 구성의 지도가 되었다. 영남대학교 소장의 이 ꡔ청구도ꡕ는 표제가 ꡔ여지도(輿地圖)ꡕ로 되어 있으나, 구성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ꡔ청구도ꡕ와 똑같다. 보관 상태가 좋고 구성이 뛰어난 채색필사본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 목장지도(牧場地圖)

ㅇ 수량 : 1책 24장

ㅇ 규격 : 44.8×60.3(30.2)㎝, 목장지도: 31×51.9㎝, 기타: 31×23.9㎝

ㅇ 시대 : 1678년

1678년에 완성된 필사본 채색지도첩이다. 1권 42면으로 구성된 이 지도첩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었다. 첫 장에는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 두 번째 장에는 도군별 목장상황을 담은 회화식 지도, 세 번째 장에는 이 지도첩의 제작동기와 시기를 알려주는 허목(許穆)의 기문(記文)이 실려 있다. 허목은 당시 사복시의 제조였는데, 그 이전에 작성되었던 목장지도를 수정편찬하여 목장지도를 제작하게 하였다. 회화식 지도부분에는 전국의 목장 소재지를 지도에 그려넣고 소와 말, 목자(牧子)의 통계와 목장의 면적, 폐장된 목장의 상황 등을 기재하였다. 효종이 북벌계획(北伐計畵)을 추진함에 따라 군마(軍馬) 양육지로 전국의 초원지대와 도서 ·황무지 등에 목장을 확충하였는데, 이 지도첩은 그 위치와 크기, 상황을 시각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각 폭(幅), 각 면(面)마다 군명(郡名)과 이정표(里程表)를 기입한 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이 지도첩은 당시의 마정(馬政)과 목장에 관한 시책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목장지도(牧場地圖)

ㅇ 수량 : 1책 20장

ㅇ 규격 : 39.5×16.5㎝

ㅇ 시대 : 1678년

조선시대 목장지도는 조선전기에 제1차로 편찬하였고 1635(인조13)년에 장유가 제2차로 편찬하였으며, 1658(효종9)년에 제3차로 편찬하였다. 이러한 목장지도는 병풍으로 제작하였는데 현존하지 않는다. 제4차로는 1678(숙종4)에 허목 등이 편찬하여 국왕에게 바치고 그 부본을 만들어 그 한 본은 사복시에 소장하고 또 하나는 춘추관에 보관하였다. 보관의 필요성 때문에 3본이 동시에 만들어졌고 그 한 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또 한 본이 부산대 도서관 소장본인 것으로 보인다. 목장지도는 표지 1면과 본문 36면, 후서 6면 등 모두 43면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부산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은 약간의 결장이 있다. 목장지도는 사복시가 국가의 중대한 마정(馬政)의 정책 수립에 활용하기 위하여 전국의 감목관에게 명하여 목장의 실태를 그림과 지리적 지식을 보고하게 하여 이를 토대로 정리 편찬한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회화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 동여비고(東輿備攷)

ㅇ 수량 : 1책 57장

ㅇ 규격 : 47.5×34.5㎝

ㅇ 시대 : 17세기

32여종의 지도를 60면으로 나누어 한 책에 수록한 지도책이다. 이 지도책의 앞부분은 역사지도이고 그 뒤에 도성도 등의 특수 지역도가 있고 그리고 대부분은 도별도와 군현도로 되어 있다. 도별총도 다음에 각 군현별 지도가 남부, 중부, 북부 등으로 나누어 각 군현별 중요한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동여비고”라는 제목은 “동국여지승람”을 이해하는 데 참고하는 지도라는 뜻으로 추측되며, 편찬 시기는 지명으로 미루어보아 17세기 후반으로 보인다. 이 지도는 조선 초기에 제작된 동람도보다는 훨씬 자세하지만 조선후기에 제작되는 도별도나 군현도와는 다르게 도별도와 군현도를 복합하여 제작한 복합군현도(複合郡縣圖)이다. 17세기에 제작된 자세한 지도책으로, 현전하는 예가 드물고 보관 상태가 좋으며, 제작 기술 또한 뛰어나다.



□ 아국여지도(俄國輿地圖)

ㅇ 수량 : 1첩

ㅇ 규격 : 36×27.2㎝

ㅇ 시대 : 19세기

이 지도는 20면이 절첩으로, 전체를 펼치면 3m 가량 한 폭의 대형지도가 되는 형식이다. 맨 앞장에는 지도의 목록이, 지도에는 지역별, 가구수, 인구, 물산, 군사관계, 거리등이, 그리고 맨 뒤에는 김광훈(金光薰)과 신선욱(申先郁)이 쓴 「청아여지형정석의서(淸俄輿地形情釋義序)」가 딸려 있다. 고급펄프지인 洋紙에 수묵과 채색으로 그린 회화식지도로, 전통적인 關防圖형식을 따른 함경도와 러시아 동부지역 지도이다. 김광훈, 신광욱이 두만강 어귀의 연해주 일대에 대한 정형을 16년간 정탐하여 제작하였으며, 제작 연도는 불분명하지만 1885~1905년으로 추정된다. 조선과 제정 러시아 및 청나라의 국경 분쟁 연구뿐만 아니라, 지도사·회화사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 함경도·경기도·강원도 지도(咸鏡道·京畿道·江原道地圖)

ㅇ 수량 : 3장

ㅇ 규격

- 강원도: 164.3×152.9㎝

- 함경도: 152×120㎝

- 경기도: 82.5×101.5㎝

ㅇ 시대 : 18세기

이 지도의 내용과 시기적 지명 변화는 1770년에 신경준이 주도가 되어 만든 20리 방안의 군현지도와 거의 동일하며, 색감이 아주 화려하다. 영조의 명을 받은 신경준은 1770년에 列邑圖(군현도)·八道圖(도별도)·전도를 모두 만들었다는 기록을 남겼는데, 열읍도 계통은 많이 발견되었지만 팔도도와 전도는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 소장의 본 지도는 내용적 측면에서 볼 대 1770년에 신경준이 주도가 되어 만든 팔도도 계통의 원본이거나 최소한 원본에 아주 가깝게 필사한 지도라고 판단된다. 1770년에 신경준이 주도가 되어 제작한 지도는 정확성 위주의 조선지도 변천사를 이해하는데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데, 정상기로부터 촉발된 정확한 지도 제작의 흐름이 정철조로 이어지고, 이들 지도를 바탕으로 삼아 제작된 것이 신경준의 지도다. 하지만 신경준의 지도는 앞의 2개 지도 계통보다 훨씬 큰 초대형의 지도이며, 김정호의 ꡔ청구도ꡕ가 나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러한 지도학적 의의와 화려하고 선명한 색상, 양호한 보관 상태, 현재까지 동일 계통의 지도가 발견되지 않고 있는 희소성 등을 고려할 때 매우 가치가 높은 지도이다.



□ 경상도 지도(慶尙道地圖)

ㅇ 수량 : 1첩

ㅇ 규격 : 147×111.8㎝

ㅇ 시대 : 18세기

내용 구성으로 보아 20리 방안군현지도에 바탕을 두고 있어 신경준이 제작하였다는 도별도와 유사하다. 제작시기는 18세기 후반으로 보이며, 지도의 좌측 상단에 경상총여도로 표제가 되어 있으나 이는 후대에 가필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의 우측하단에 대마도가 그려져 있다. 산지는 녹색으로 강조되어 연맥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바다는 연한 청색으로 그려져 있다. 각 고을의 읍치에는 아사와 객사가 그려져 있다. 진보는 적색 원으로 표시되어 있다. 하천은 매우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 소장의 지도와 같은 계통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지도 발달사에 큰 의미가 있는 지도이다.



□ 진주성도(晉州城圖)

ㅇ 수량 : 1점(10폭 병풍)

ㅇ 규격 : 1,112×340㎝

ㅇ 시대 : 19세기

진주성의 전경을 회화적으로 기록한 10폭 병풍이다. 재질은 지본담채이며, 전체적으로 가필된 부분이 거의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대규모의 화면 위에 진주내성과 외성, 해자 등 진주성의 중요한 장면들을 부감법을 이용하여 부각시켰고, 이외 진주성 바깥에는 주요한 관아, 향교, 전답경치 등을 기록하였다. 중요한 건물에는 전각 마다 정성스런 해서체로 명칭을 일일이 기록하여 제작 당시 진주의 상황을 세밀하게 전달한다. 역사성과 기록성, 회화성을 종합적으로 강조한 회화식 지도로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여러 가지 정황을 감안할 때 19세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판단되며, 진주성을 기록한 작품 중에서도 기록성과 회화성을 겸비한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 여지도서(輿地圖書)

ㅇ 수량 : 55책 3,652장

ㅇ 규격 : 31.8×20.3㎝

ㅇ 시대 : 18세기

1757년(영조 33)~1765년(영조 41)에 전국 각 군현에서 편찬한 읍지(邑誌)를 모아 책으로 묶은 지리지이다. ꡔ여지도서ꡕ에 수록된 읍지는 295개의 군현 읍지, 17개의 영지(營誌)(감영지(監營誌), 병영지(兵營誌), 수영지(水營誌), 통영지(統營誌) 등), 1개의 진지(鎭誌)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의 행정구역과 비교하여 보면, 334개 군현 중 39개 군현의 읍지, 6개의 영지, 경기도와 전라도 도지도(道地圖)가 누락되어 있다. 16세기 ꡔ신증동국여지승람ꡕ 편찬 이후 처음으로 18세기에 국가에서 집성한 종합 읍지인 이 지리지는 2세기에 걸쳐 편찬되었던 읍지 성과의 집대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 또한 모든 군현읍지 및 진영지에 각 지역의 상세한 읍지도를 첨부해 지도와 지지의 결합을 보여주는 공시적 자료라는 점에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 조선본 천하여지도(朝鮮本天下輿地圖)

ㅇ 수량 : 1축

ㅇ 규격 : 228.3×198.4㎝

ㅇ 시대 : 17세기

이 지도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혼일강리도>의 왕반지 여지도모회증보본과 같은 원도를 사용했거나 같은 계열의 지도인 것으로 판단된다. 지도의 내용은 17세기 초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 시점에 조선에서 그려진 동아시아 지도 가운데 홋카이도의 존재를 분명히 한 지도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홋카이도의 존재와 그 위치는 조선에서 오랫동안 분명치 않아서 여러 가지 혼선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국내에 전하는 조선 시대 제작의 세계지도가 드물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료적 가치도 매우 높다.



□ 조선팔도고금총람도(朝鮮八道古今總攬圖)

ㅇ 수량 : 1축

ㅇ 규격 : 141.1×107.0㎝

ㅇ 시대 : 1673년

이 지도는 목판본 조선전도로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각 지역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을 수록하여 고금(古今)을 함께 볼 수 있도록 한 지도이다. 지도의 제작자인 김수홍(金壽弘, 1602-1681)은 병자호란 때 강화성에서 순절한 김상용의 손자이며 호조참판을 지냈고, 현종 7년(1666)에는 「천하고금대총편람도」를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지도 좌측에 쓰여 있는 발문의 말미에 ‘계축맹하(癸丑孟夏)’라는 기록으로 보아 제작연대는 1673년(현종 14)임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모습은 조선전기의 전형적인 구도를 취하고 있으며, 압록강과 두만강이 동시 일직선상에 있고 평안도와 함경도가 남북으로 심하게 압축된 모양을 하고 있다. 서울의 도성이 축척과 관계없이 크게 그려져 있고, 경복궁이 표시되어 있으며 광화문 앞에는 의정부와 육조가 표시되어 있고 현재 조선호텔 자리에 있던 南別宮 등도 기재되어 있다. 이 지도는 조선 전도에 역사적인 기록을 첨가함으로써 간본으로 제작된 것이다. 지도 발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데 의미가 있으며 고지도 중 드물게 제작연대와 제작자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어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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