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근대교육의 요람이 된 최고(最古)의 향교 강릉향교
작성일
2023-03-30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513

근대교육의 요람이 된 최고(最古)의 향교 강릉향교 강릉향교는 나주향교, 장수향교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향교 중 하나로 꼽힌다. 고려 충선왕 5년(1313)에 강릉존무사 김승인이 화부산 자락에 처음 세웠다. 그 뒤로 조선 태종 11년(1411)에 화재로 소실됐다가 2년 뒤인 1413년에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6.25전쟁 때에도 불타거나 훼손되지 않은 덕택에 오늘날까지도 옛 규모와 모습이 잘 간직되어 있다. 01.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를 보여주는 강릉향교 전경

문헌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

강릉향교로 가는 길은 학교 가는 길이다. 강릉 명륜고등학교 안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의 남자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 선수의 모교로도 유명하다. 때마침 춘기 석전대제를 하루 앞둔 날이라 학교 운동장의 한쪽에는 승용차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이었던 향교는 성현의 제사와 지역 인재의 교육을 담당했다. 강릉향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향교는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 뒤쪽에 제향 공간인 대성전이 배치되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갖췄다. 그러나 고종 31년(1894)에 단행된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폐지되고 학제가 개편됨에 따라 향교의 교육 기능은 상실되었고 이제는 제사 기능만 수행한다.


강릉향교에서 만난 권우태 전교에게 “강릉향교가 우리나라의 다른 향교와 비교했을 때 특별한 점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문헌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이고, 조선시대 향교에서 모셨던 성현과 선현들의 위패를 지금까지 다 모시는 유일한 향교”라고 대답했다.


02.우리나라 향교의 명륜당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강릉향교의 명륜당 03.강릉향교 명륜당 내부에 걸려 있는 이름표. 석전대제에서 각자의 역할을 적었다.

실제로 강릉향교는 규모와 역사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향교로 평가된다. 주요 건물 중에서 국가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된 것만 해도 ‘강릉향교 대성전’, ‘강릉향교 명륜당’, ‘강릉향교 동무·서무·전랑’ 등 다수를 헤아린다. 그중 맨 앞쪽에 자리한 명륜당은 1413년 ‘남루(南樓)’라는 누각으로 처음 세워져 중수를 거듭했다. 이 누각이 교육 공간인 명륜당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대대적인 중수를 마친 1644년 이후부터였다. 현재는 전면 11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서 우리나라 향교의 명륜당 가운데 가장 크다. 웅장하고 질서정연한 외형만으로도 보는 사람들에게 위엄을 안겨준다.


강릉향교는 강릉 지역 근대교육의 요람이다. 1909년에 근대식 학교인 화산학교를 명륜당에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강릉향교에서 많은 학교를 세웠다. 1928년 강릉공립농업학교(강릉중앙고), 1938년 강릉공립상업학교(강릉제일고), 1940년 강릉공립고등여학교(강릉여고), 1943년 옥천국민학교(옥천초등학교), 1949년 명륜중학교, 1963년 명륜고등학교 등이 모두 강릉향교에 의해 문을 열게 된 학교들이다.


04.북을 두드리며 석전대제의 시작을 알리는 집사 05.석전대제에 참여한 인사들이 대성전 앞에서 4배를 올리는 모습

136위의 위패를 모시는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강릉향교의 독특한 건물 중 하나는 내삼문(內三門)인 전랑(前廊)이다. 대성전과 명륜당 사이에 가로로 길게 세워진 건물이다. 제향 공간인 대성전 영역과 교육 공간인 명륜당 영역을 나누는 경계선이자 동무와 서무를 연결하는 통로 구실을 한다. 이처럼 향교에 회랑의 일종인 전랑이 있는 곳은 강릉향교뿐이다. 전면9칸, 측면 1칸 규모인 전랑의 가운데에는 신문(神門), 좌우 양쪽에는 인문(人門)이 설치돼 있다. 신문에는 위엄과 위계를 강조하기 위해 솟을지붕이 올려졌다. 전랑과 명륜당 사이의 동서 양쪽에는 교육생들의 숙소인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고 있다. 동재는 양반, 서재는 평민의 자제들이 기숙하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강릉향교 제향 공간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은 고려 말기인 1313년에 처음 건립됐다. 조선 태종 11년(1411)에 불타버렸다가 2년 후인 1413년에 강릉도호부 판관 이맹상의 건의로 다시 세워진 뒤로 몇 차례 중수됐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이며,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 올려졌다.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건물답게 간결하고도 엄숙해 보이는 외형을 갖췄다. 건물 안쪽의 바닥에는 판석을 깔았고, 천장은 뼈대가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대성전에는 중국 성현들의 위패 21위가 봉안돼 있다.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 공자를 중심으로 안자·증자·자사·맹자의 4성, 안연·자공을 포함해 공자의 뛰어난 문하생 10명인 공문십철, 주희·주돈이를 비롯한 송나라 유학자 6인을 지칭하는 송조육현이 모셔져 있다. 대성전 앞의 동서 양쪽에는 우리나라와 중국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동무와 서무가 있다. 두 건물의 규모는 전면 5칸, 측면 1칸으로 같지만, 실제로는 서무가 조금 더 크다. 가는 살을 세워서 댄 사롱창, 바닥에 깔린 전돌 등이 우리나라의 옛 건축기법을 엿보게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학자들을 가리키는 동방18현의 위패는 동무와 서무에 9위씩 봉안돼 있다. 동무에는 설총·안향·이이·이황 등을 비롯한 58위, 서무에는 최치원·이언적·조헌·송시열 등 57위가 봉안됐다. 동·서무에 봉안된 115위와 대성전의 21위를 합하면 무려 136위나 된다. 강릉향교 건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오는 전통이라고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대부분의 향교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5성과 공문십철, 송조6현과 동방18현 등 39위, 또는 5성과 송조4현, 동방18현 등의 27위만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강릉향교의 춘기석전은 격조 있고 엄숙하게 봉행됐다.


06.석전대제 때에 동재와 서재 사이의 마당에서 펼쳐지는 문묘제례일무 07.최치원, 송시열 등을 포함해 57위의 위패를 모신 서무

강릉향교의 격식 있고 엄숙한 석전

서울 성균관 대성전과 강릉향교를 포함한 전국 234개 향교에서는 봄·가을에 한 번씩 석전(釋奠)을 봉행한다. 석전은 ‘석채전폐(釋菜奠幣)’의 줄임말이다. 나물 종류만 차려 올리는 ‘석채’뿐만 아니라 제물, 폐백, 음악, 헌작이 곁들여지는 ‘전폐’까지 포함된 제례의식이다. 춘기 석전은 음력 2월 상정일(上丁日, 매달 첫째 드는 정의 날), 추기 석전은 8월 상정일에 봉행되는데, 올해의 춘기 석전일은 2월 28일이었다.


강릉향교의 춘기 석전은 격조 있고 엄숙하게 봉행됐다. 전날 준비된 제수를 차려놓는 진설례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위패를 모신 성현들이 많은 만큼 제사에 소요되는 그릇과 제수의 양도 무수히 많다. 의관을 정제한 수십 명의 집사들은 소임을 진지하고 묵묵하게 수행했다. 제수 음식 가운데 나물 종류는 미나리, 부추, 무, 도라지가 놓이고, 곡식은 쌀, 찹쌀, 기장, 수수가 놓였다. 육류로는 소고기, 소고기 육포, 명태, 대구포가 차려졌고, 과실류는 잣, 밤, 호두, 은행, 대추가 올려졌다. 또는 소금과 돼지머리, 소머리가 다 놓여 이채로워 보였다.


한 집사가 동재 문틀에 매달아 놓은 북을 두드리며 “모이시오, 모이시오, 모두 모이시오” 라고 외치는 것을 신호로 본격적인 의례가 시작됐다. 문묘제례악이 울리고 문묘제례일무가 공연되는 가운데 전폐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분헌례, 음복례, 망료례 순으로 석전이 진행됐다. 문외한의 눈에는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의식이 긴 시간 여러 차례 되풀이되었다. 오래도록 가까이 접해 보지 못한 의례였지만, 낯설거나 지루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슴 떨리는 감동과 전율이 이따금 느껴졌다. 역시 우리의 전통문화는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하나 보다.


가볼 만한 곳 1.강릉 임영관 삼문(국보) 강릉대도호부 객사인 임영관의 정문으로 고려 말에 지어졌다. 현존하는 문 가운데 가장 오래됐으며, 강원도의 건축물 중에서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됐다. 비례가 아름답고 구조가 정교해서 고려시대 주심포 건축의 정수로 꼽힌다.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 형태의 기둥이 세워져 있어 시각적인 안정감도 느껴진다. -강릉 임영관 삼문 2.강릉 선교장 (국가민속문화재) 조선시대 사대부의 대표적인 살림집 중 하나이다. 전주 사람인 이내번이 강릉으로 이주하면서 지었다고 한다. 줄행랑과 담에 둘러싸인 안쪽에는 안채, 사랑채(열화당), 동별당, 서별당, 외별당, 사당 등이 가지런히 들어서 있다. 바깥쪽에는 연못과 정자(활래정)까지 완벽하게 갖췄다. 한옥스테이 숙박 체험도 가능하다. -강릉 선교장 3.강릉 오죽헌 율곡매(천연기념물) 조선 세종 22년(1440)에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이 오죽헌을 건립한 뒤 별당 후원에 심었다는 홍매화 고목이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도 이 나무를 직접 가꾸었다고 한다. 한때 90% 이상 고사된 것으로 판정돼 천연기념물 해제가 예고되기도 했지만, 근래에 일부 가지가 되살아나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강릉 오죽헌 율곡매의 2010년도 모습 국가유산 방문하고, 선물 받으세요! 가장 한국다움이 넘치는, 신비로운 우리 국가유산을 함께 만드는 길에 동참하세요. <문화재사랑> 4월호 ‘둘러보기’ 코너에 소개된 강릉향교에 방문해 4월 15일까지 인증 사진을 보내주세요. 두 분을 선정해 선물을 드립니다. QR코드를 찍으면 이벤트 참여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인증사진을 첨부해 보내주세요. ※ 국가유산에 따라 출입이 제한된 곳도 있습니다. 소중한 문화유산의 보호를 위해 출입이 제한된 곳은 절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글, 사진. 양영훈(여행작가, 여행사진가)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