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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 왕실의 유희를 담은 우아한 걸작 보스턴미술관의 자랑, 두성령 이암의 〈가응도〉
작성일
2022-07-28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820

조선 왕실의 유희를 담은 우아한 걸작 보스턴미술관의 자랑, 두성령 이암의 〈가응도〉1876년 설립된 보스턴미술관은 높은 수준의 동양미술품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당대 수요가 치솟았던 고려청자와 불화뿐 아니라 수준 높은 조선 회화작품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이는 유행을 좇는 투기성 수집이 아니라 미술사적 지식과 촘촘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소장품을 모았다는 의미라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미술사를 폭넓게 아우르는 ‘보스턴미술관 한국관’의 힘은 컬렉션의 다양성(diversity)에 근거하고 있다. 01.윌리엄 비글로(William Sturgis Bigelow, 1850~1926) ©보스턴미술관 02.가응도(架鷹圖), 이암(李巖), 보스턴미술관 소장, 16세기 중반, 98.1×54.2cm

보스턴미술관의 한국 미술 컬렉션과 〈가응도〉

어니스트 페놀로사(Ernest Francisco Fenollosa, 1853-1908), 오카 쿠라 텐신(岡倉 天心, 1863-1913) 등 내로라 하는 일본 미술사의 권위자들이 보스턴미술관의 고문 및 학예사를 역임했는데, 이들과 친분을 쌓은 ‘보스턴 브라민 (상류층)’은 상당한 수준의 개인 동양미술 컬렉션을 자랑했다. 에드워드 모스(Edward Morse), 찰스 호이트(Charles B.Hoyt) 등은 19세기 말에서 1950년대까지 걸쳐 집중적으로 다량의 한국미술품을 보스턴미술관에 기증했다. 현재 한국컬렉션 약 1,000점은 그 당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특별전에만 내놓는 귀한 작품이 있으니, 바로두성령(杜城令) 이암(李巖)의 〈가응도〉1)이다. ‘보스턴 브라 민’ 윌리엄 비글로(William Sturgis Bigelow)가 1911년에 기증한 이 작품은 16세기 중반에 제작되었으며, 홰2) 위에 앉은 매를 크게 공필3)로 그리고 배경을 생략했다. 고개를 힘껏 치켜든 매의 강렬한 눈빛과 공필이 주는 섬세함 덕에 실물로 대하면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종실화가의 삶

이암은 세종의 넷째아들 임영대군의 종손으로 그 덕에 내밀한 왕실 위락터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다. 그는 화조영모화(花鳥翎毛畵)에 능해 왕의 강아지, 고양이, 매 등을 많이 그렸는데 이런 영모화가 일본으로 전해져 일본미술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중 매사냥은 『조선왕조실록』에 약 160차례 등장할 만큼 왕실의 유구한 위락행위였다. 응방(鷹坊)은 매 사육을 담당하는 일종의 사냥센터였는데, 원나라의 영향으로 조선 중기까지도 운영됐다. 매 허가증인 응패(鷹牌)는 오직 종친, 부마, 왕자, 공신, 무관대신 등으로 제한되었을 만큼 응방에 출입할 수 있는 인원 또한 엄격히 관리되었다. 이는 매사냥이 왕실, 고위관료, 종친들이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수많은 인력과 물자를 동원해야하는 최고급 스포츠였기 때문이다.


중종의 이복형 연산군은 치세(治世) 기간 내내 사냥에 몰두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에 따라 응방 또한 비대해졌고 중종반정 이후에도 존속했다. 왕위에 오른 중종에게 연산군의 행동을 추종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종은 사냥을 멀리하지 않았고 연산군이 도화서에 앵무새 같은 진귀한 새를 그리도록 명했던 것처럼 본인 또한 서화가를 주위에 두며 그림 감상을 즐겼다. 그런 취미가 폭군의 특징으로 간주되지는 않았다는 뜻이며, 진귀한 동식물을 주변에 두고 사냥이나 완상을 통해 유희를 즐기며 이를 그림으로 남기는 문화가 조선 왕실의 전통이 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어렸을 때부터 수준 높은 그림과 화제(畵題)를 접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기를 수 있었던 종친들은 정치로 입신 양명하기 어려울 경우 화가로 명성을 떨친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지닌 화가로서 또 다른 특징은 강력한 후원자인 왕과의 친분이다. 핏줄 덕분에 후원자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왕에게 무한한 충성을 증명해야 하는 위치였다. 이런 맥락에서 두성령 이암의 〈가응도〉는 왕실의 애장품을 그린 일종의 유희이자 왕을 향한 충성심의 증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보스턴으로 날아간 ‘홰 위의 매’

제시(題詩)4)를 통해 추적하자면, 이암의 〈가응도〉는 박영, 신광한, 이황, 김언거, 성세창, 윤인경 등 사림파를 중심으로 전해 내려왔다. 그러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전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암의 자가 정중(靜仲)이었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화승(畵僧) 간잔 세이추(完山靜仲)의 작품으로 오인받으며 애호되었다.


일본에 전해진 〈가응도〉는 19세기 말에 보스턴미술관으로 건너가게 된다. 하버드대 출신의 의사로 페놀로사, 모스 등과 친분을 쌓으며 동양미술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비글로는 이들의 조언에 따라 일본 등 동양미술품 수집에 열을 기울였다. 비글로가 〈가응도〉를 소장하게 된 구체적인 경위는 알려진 바 없으나, 일본에 체류하던 1882년에서 1889년 사이 이 그림을 구입 했고 1890년 대량의 다른 동양미술품과 함께 보스턴미술 관에 위탁한 뒤 1911년에 기증으로 전환했다고 기록돼 있다. 1997년까지만 해도 원나라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이암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듯 이암의 〈가응도〉는 한국회화사의 한 분기점이 되는 중요한 작품이자 조선 왕실문화의 기품을 보여주는 동시에 수집사 또한 사연이 짙다.


1) 이암의 가응도: 해청도의 전통과 새로운 상징, 미술사와 시각문화 학회, 「미술사와 시각문화」 11호(2012), pp. 136-169에서 참고
2) 홰: 새장이나 닭장 속에 새나 닭이 올라앉게 가로질러 놓은 나무 막대
3) 공필(工筆): 대상물의 외형 묘사에 치중하여 꼼꼼하고 정밀하게 그리는 기법
4) 제시(題詩): 그림이나 표구의 대지(臺紙) 위에 적어놓은 시문




글, 사진. 장해림(보스턴미술관 한국국제교류재단 글로벌챌린저 박물관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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