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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한제국 국새, 한국과 미국의 문화교류 상징이 되다
작성일
2021-07-29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980

대한제국 국새, 한국과 미국의 문화교류 상징이 되다 국새는 광복 후 첫 번째 환수 문화재이자, 한·미 문화교류의 상징이다. 지난 70년간 한·미 국새 환수협력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다양한 요인이 있다. 「1943년 연방도품법」(NSPA) 등 미국의 제도적 기반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가장 우선적인 것은 미국 정부기관과 수사관계자가 한국의 국새와 어보가 갖는 역사적 상징성과사적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특성을 정확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바로 상대 국가 문화와 역사의 존중이다. 01.국새 칙명지보 02.2014년 (한미 수사공조 대한제국 국새 등 인장 9점 전체)

광복 1주년, 한·미 문화교류의 상징

우리나라의 국가 상징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재가 있다. 바로 국새이다. 국새1)는 외교 문서나 행정 문서에 직접 사용한 인장이다.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총 37점이 제작되었다. 특히 고종은 1897년에 대한제국을 수립하면서 새로운 국새, 9과를 제작해 자주독립국의 위상을 드러냈다. [대한국새], [황제지새], [황제지보(3과)], [칙명지보(2과)], [제고지보], [시명지보] 등이다.


손잡이는 거북에서 용으로 바뀌었고 보문은 ‘인’(印)에서 ‘새’(璽)와 ‘보’(寶)로 변경되었다. 서체도 복잡한 첩전(疊篆) 보다는 간명한 소전(小篆)을 택했다.2) 그 동안 국새는 명이나 청이 제작해 조선 국왕을 승인하는 징표로 제공한 것이었으나 조선 스스로 이 관례를 깼다. 동아시아 정치문법을 새롭게 바꾼 것이다. 조선은 그야말로 「만국공법」 체계의 독립적인 주체였던 것이다.


일제(日帝)는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면서 이와 같은 대한제국의 국가적 상징성을 지우고자 했다. 『순종실록』을 보면 ‘1911년 이왕직 차관(次官) 고미야 사보마쓰(小宮三保松)가 옛 국새(國璽)와 보새(寶璽)를 총독부에 인계했다’는 기록이 있다. [대한국새], [황제지보], [대원수보], [제고지보], [칙명지보], [칙령지보] 등 국새 6과와 관인 2과(내각총리대신장, 내각지인) 등 모두 8과를 약탈한 것이다.


역사의 흐름 속에 우리는 광복을 맞이했고, 미군은 1946년 한국의 광복 1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에 특별한 선물을 전달했다. 맥아더의 후원을 받아 1910년 강제병합 조약문과 1911년 약탈 국새를 가져온 것이다.3) 이후 한·미 관계는 군사적·정치적인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세심한 관찰자라면 양국 교류의 역사, 그 한가운데에 국새가 계속해서 자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 국새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어보이다. 어보는 국왕과 왕비의 인장인데, 훗날 그 자리에 오르는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인장도 포함했다. 어보는 책봉례 같은 왕실 의례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되었으며, 국가 사당인 종묘에 봉안되어 엄격하게 관리되었다.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제작된 어보는 모두 376점이다.
2) 성인근, 『국새와 어보 왕권과 왕실의 상징』(현암사), 99쪽
3) 중앙신문, 1946년 8월 16일 기사

03.2017년 문정왕후어보 현종어보 반환식

대한제국 국새 등 9점 인장의 환수

2013년 9월 23일 필자는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직원으로부터 ‘7개 인장(7 chops)’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열어보니 ‘혹시 이 인장이 한국의 것이냐?’라는 내용과 함께 스틸 사진 7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1897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수립하면서 자주국가의 의지를 상징하기 위해 제작한 국새 <황제지보>임을 확인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박지영 학예사(그 당시 문화재청 소속)와 성인근 경기대 교수의 역할이 컸다. HSI 직원에게 답장했다. ‘당신이 보낸 것은 우리의 역사다.’


정밀 분석 결과, 사진 속 인장은 국새 3점을 포함해 총 9점이었다. 문화재청은 2013년 10월 21일 미국 HSI에 정식 수사를 요청했다. 불과 28일밖에 지나지 않은 11월 18일 HSI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6·25전쟁 참전자 유족에게서 9점 모두를 압수했다. 통상적으로 ‘압수’는 수사 요청 후 1년 이상 걸리는 데 비해 실로 놀라운 속도였다. 그리고 2014년 4월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9점의 인장이 반환되었다. 국새 반환이 계기가 되어 2014년 7월 한국 문화재청과 미국 이민관세청(ICE)은 「한미 문화재 환수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미 관계가 제도적 성장을 한 것이다.


한·미 새 정부의 우호·협력 상징이 되다

2017년 5월 한국과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섰고 첫 번째 정상회담이 그해 6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예정되었다.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 당시 문화재청과 HSI는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 몰수에 분주했다. 이들 어보는 2013년 문화재청의 수사 요청으로 압수되었으나 2016년을 지나서도 몰수되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 검찰은 몰수 없이 한국 반환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으나, HSI 본부 소속 변호사들은 몰수를 통한 한국 반환을 주장했다.


미국 검찰과 수사당국(HSI)은 결과(한국 반환)에서 같았으나, 과정(몰수 절차 이행 여부)에서 달랐고 ‘긴 갈등’으로 이어졌다. 이때 HSI 서울지부가 활약했다. HSI 서울지부는 13개 아시아 지부를 대표하며 서울지부장이 도쿄지부장을 겸임한다. 문화재청과 HSI 서울지부는 긴밀했고, 결국 미국 법무부(DOJ)가 나서면서 사법 몰수로 정리되었다. 결국 2016년 9월부터 몰수 절차가 개시되었고, 그해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부법원의 궐석재판을 거쳐 2017년 5월 몰수가 선고되었다. 그리고 6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으로 반환되어 새 정부 간 우호의 상징이 되었다.


한·미 문화교류 협력의 성공 요인과 향후 과제

문화재 약탈은 고대부터 이어진 것이나 문화재 반환은「1970년 유네스코협약」(발효 1972년 4월)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문화재 환수는 ‘현대인이 근대적 정신으로 전근대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법과 제도의 한계가 명확했고 약탈국이 자신의 선의를 가장하는 외교적 제스처일 때 그나마 작은 성공을 기원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한국과 미국이 국새 환수를 두고 지난 70년간 함께했던 것은 특별하다.


바로 상대 국가 문화와 역사의 존중과 이해가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교육과 홍보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문화재청은 2020년부터 미래를 위한 ‘새로운 교량’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국새의 불법 거래를 용인하는 것은 한·미 양국의 문화 교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양국 국민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경각심 제고 캠페인’이다. 포스터와 홍보 영상을 제작하였고 단계적으로 배포할 예정이다.



글. 김병연(국제협력과 사무관)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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