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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문화재의 뒤안길(79)-고려시대 중국도자기(서울경제, '21. 2. 22.)
작성자
이명옥
게재일
2021-02-22
주관부서
대변인실
조회수
146

문화재의 뒤안길(79) (서울경제, '21. 2. 22.)


고려시대 중국도자기


글/ 이명옥(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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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 문공유(1088-1159) 무덤 출토 고려청자와 중국 백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최근, 새롭게 개관한 국립박물관의 세계도자실 전시가 화제이다.

그 중에서도 독일 17세기 궁전에서 방 안 전체가 중국 청화백자로 장식된 모습을 재현한 공간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당시 유럽에서 중국산 청화백자가 얼마나 인기가 높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중국도자기의 열풍은 사실 그 이전부터 시작된다. 당나라 때 만들어진 중국 도자기는 고려를 비롯하여 일본, 동남아시아, 인도, 이란, 이라크, 이집트 등 세계 각지로 수출되었다.


고려시대 때, 중국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들은 무역을 통해 수입되거나 사신들의 왕래를 통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고려에 들어왔다.

실제로 궁궐, 관청, 사찰, 무덤 등 전국 각지에서는 청자, 백자, 흑유자(검은 빛을 띠는 자기) 등 오대부터 송․원대까지의 다양한 중국 도자기가 발견되고, 그 양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바다 건너편 제주도의 여러 곳에서도 발견될 만큼 고려사회에서 인기가 높았다는 얘기다.

이러한 중국도자기는 왕실, 귀족, 승려 등 일종의 특권층에서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는 목적도 있지만, 재력이나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으로서도 이용되었다.


* 문공유(文公裕, 1088-1159) : 고려시대 인물로 송나라와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적이 있으며, 종일품(從一品)의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지낸 고위 관료


특히 중국 징더전((景德鎭) 가마에서 만들어진 푸른빛을 띠는 순백의 청백자((靑白瓷)는 송나라 황실, 귀족 계층에서 쓰일 만큼 명품 중에 명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도자기의 본고장 중국에서도 ‘천하제일 고려비색’ 이라 불릴 만큼 수준 높은 청자를 제작한 고려인들이었다.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이미 명품으로 인식된 ‘중국도자기’를 갖고자 하는 열망은 지금과 비교해 보아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당시 송․원대 중국도자기가 고려청자의 제작에 있어 도자기의 형태, 문양, 기법 등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17세기 유럽에서는 갖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중국도자기를 모방하여 도기를 만들고, 18세기 독일에서는 유럽 최초로 자기 제작에 성공했으며, 지금도 유럽 도자기는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고려 역시 파도를 타고 밀려오는 중국 도자기, 중국문화의 열풍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를 바탕으로 단지 모방이 아닌, 고려만의 취향, 미감, 사상을 예부터 토기나 도기를 만들던 전통과 도자기 제작의 신기술을 접목시켜 뛰어난 고려청자를 만들었다.

갖고자 하는 열망은 모방으로 이어지고, 모방은 새로운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흔히 ‘모방은 창조의 아버지’ 라는 말을 이럴 때를 두고 쓰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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