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통영 한산도 망산 별망봉수대, 그 숨겨진 역사를 밝히다
작성일
2018-04-30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292

통영 한산도 망산 별망봉수대, 그 숨겨진 역사를 밝히다 한산도는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이 최초로 자리 잡은 곳이며, 앞바다 한산해역은 한산대첩을 이룬 역사의 현장이다. 한산도에는 임진왜란과 관련된 많은 유적이 분포하고 있으며, 그중 한 곳이 바로 망산 별망봉수대이다. 그동안 망산 별망봉수대는 주민의 전언 등을 통해 한산도 옛 진영인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된 시기에 운영되었던 봉수대로만 알려져 있을 뿐,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발굴조사 결과, 별망봉수대의 구조적 특징과 출토 유물을 근거로 임진왜란 당시 실전에 사용되었던 봉수대임을 확인하였다. 망산 별망봉수대에 대한 문화재 조사는 2007년 경남대학교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한 것 외에 더 이상의 조사가 진행되지 못하였다. 이에 경상문화재연구원은 2017년 ‘비지정 매장문화재 학술발굴조사’에 별망봉수대를 신청하게 되었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학술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01. 망산 별망봉수대 전경. 그동안 망산 별망봉수대는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된 시기에 운영되었던 봉수대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번 발굴조사 결과, 별망봉수대의 구조적 특징과 출토유물을 근거로 임진왜란 당시 실전에 사용되었던 봉수대임을 확인하였다. 02. 조선시대 봉수대 관련 건물지 모습 03. 청동기시대 간돌검 출토세부. 간돌검은 4개체로 쪼개진 상태로 출토되었으며, 신부 중앙을 양면에서 갈아 중앙에 길게 구멍을 뚫은 특이한 형태이다.


선사시대 해안제사유적 발견

당초 예상과 달리 조선시대 봉수대 외에 망산 정상부(해발 293.5m)에서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되었고 완형 의 간돌검 1점과 간돌도끼 1점이 출토되었다. 간돌검은 4개체로 쪼개진 상태로 출토되었으며, 신부 중앙을 양면에서 갈아 중앙에 길게 구멍을 뚫은 특이한 형태이다. 날의 가운데가 약간 돌출된 형태이고 전체적으로 아주 잘 다듬어져 있다.

망산에서 출토된 간돌검, 간돌도끼, 굴지구(掘地具 : 땅을 파는 석기)는 그 출토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그런데 한산도 섬이라는 자연조건, 해상을 바라보고 있는 해발 293.5m의 산 정상, 선사시대 유적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토기편 등의 공반유물이 없는 점, 석관묘와 같은 시신을 묻는 매장유구(埋葬遺構)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들로 미루어 볼 때, 이곳에서 풍어와 해상의 안전을 비는 의식이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망산유적은 선사시대 일반적인 유적과 다른 해안제사유적으로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축조된 망산 별망봉수대

망산 별망봉수대는 주민의 전언 등을 통해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된 시기에 운영되었던 봉 수대로만 알려져 있을 뿐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성격이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경상문화재연구원은 봉수대의 중심지역인 연조구역(신호를 전달하는 구역)과 건물구역(봉수군의 생활이 이루어진 구역)을 발굴조사하였다. 연조구역에서는 연조(불이나 연기를 피워 신호를 보내는 시설) 2기와 수혈(竪穴: 구덩이) 2기가 확인되었고 건물구역에서는 기반암을 일부 굴착하여 凹자형의 건물 대지를 만들었고 대지 외곽으로 두른 방호벽이 확인되었다. 연조의 평면형태는 원형이고, 연조의 구조는 불을 피우는 연소실, 재료를 넣고 빼는 화구부, 재를 폐기하는 회구부로 구분되었다. 회구부 내에서 많은 재층이 퇴적되어 있어 활발한 신호체계가 이루어졌음도 알 수 있었다. 방호벽 내에 봉수군의 생활시설인 건물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후대에 신호소 등 다른 용도로 재사용되면서 파괴되어 그 흔적은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봉수대를 축조하였을 당시의 현상은 파악할 수 있었다. 건물구역 내에서 방호벽 외에 봉수군의 생활과 관련된 부속시설, 출입시설, 배수로, 수혈 등의 유구와 재층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당시 봉수군의 생활품인 자기편과 옹기편도 출토되었다.

봉수대의 생활시설과 연조의 구조는 조선시대 전기에 축조한 봉수대와도 다르고, 조선시대 후기에 축조한 봉 수대와도 다른 임진왜란 시기의 과도기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 출토유물 또한 임진왜란부터 그 이후 시기에 사용된 유물만 출토되어 이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 전시상황에서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러일전쟁기, 일본군이 별망봉수대를 신호소로 재사용

한편, 봉수대 내에서는 러일전쟁과 관련된 신호소도 확인되었다. ‘신호소’란 해상감시, 선박과 교신, 기상관측, 인접 신호소·통신소와 연락을 하는 곳이다. 신호소 내부에서 일본 규격의 붉은 벽돌로 만든 신호소 관련 유구와 근대유물(시멘트, 일본자기 완 등)이 다수 출토되었고 특히 근대유물 중 19세기말 일본에서 생산 되었던 시세이도사의 크림치약 용기파편이 수습되었다. 이 제품은 1888년에서 1911년까지 생산되었던 것으로 이와 관련된 문헌조사(『極秘明治三十七八年海戰史』, 1909년)에 의하면 일본군이 러일전쟁의 해상감시를 목적으로 한산도 망산 정상부에 신호소를 설치하였을 때 주둔했던 병사들이 사용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한산도 망산 별망봉수대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한 장소를 선사시대 해안제사유적, 조선시대 봉수대, 러일전쟁 시 일본 군부가 사용한 신호소 등 서로 다른 시기의 3개소 유적이 확인되었다. 한산도 주요 군사시설의 상징적인 장소로서 역사적·지리적·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평가되고 있다.

향후 망산 별망봉수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역사적 고증을 거쳐 보수정비가 이루어진다면 더욱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사진. 홍성우(경상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부장)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