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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학생들의 전유물, 교복의 역사를 말하다
작성일
2014-03-1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2882

학생들의 전유물, 교복의 역사를 말하다
교복 착용을 살짝 비껴간 세대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교복은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다. 누군가에는 억압으로, 누군가에는 추억으로 기억되는 교복은 시대에 따라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왔다.

 

‘한복’에서 ‘양복’으로

교복은 학생의 신분을 드러내 학교에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심어주고,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주려는 취지에서 제정한 제복으로, 학생들이 학교생활과 통학 시 착용하는 공식적인 의복을 말한다.

한국에서 교복 착용이 시작된 것은 개화기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학당(學堂)에서부터지만, 조선시대 유생(儒生)들의 복식도 큰 범주에서는 교복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교복의 역사는 대략 1800년대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에서 최초로 교복이 착용됨으로써 시작하였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에 서양식 학교가 처음 설립된 시기와 맞물리는데 이 때 최초로 채택된 교복은 ‘한복’이다. 교복에는 속곳과 고쟁이, 버선까지도 포함되었고 겉옷은 러시아산 무명으로 만든 다홍색 치마저고리였다. 다홍색을 택한 이유는 당시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에 익숙하지 않던 여학생들이 밤이면 몰래 기숙사를 빠져나가는 경우도 있었으므로 눈에 쉽게 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1907년에는 최초로 양장 교복이 등장하였는데, 숙명여학교에서 자주색 서지(serge) 원피스에 분홍색 안을 댄 보닛(bonnet) 모자를 쓰고 구두를 신은 유럽식 스타일의 서양식 교복을 처음으로 입었다. 이는 당시 개량된 한복 스타일 교복보다 더 참신하였으나, 너무 혁신적인 변화라서 사회에서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자 결국 3년 뒤 다시 자주색 치마저고리의 한복 교복으로 교체되었다.

남학생 교복은 1910년대 서구 산업화 과정에 등장한 노동자들이 착용하던 작업복과 비슷한 형태로 변화하였다. 이는 1910년대 유럽 예술가들이 즐겨 착용하던 프록코트(frock coat) 스타일인데, 일본은 이 스타일을 기본으로 하여 딱딱한 스탠드칼라와 무채색을 사용하여 군국주의의 엄격한 규율과 질서 및 국가관 등을 상징하는 교복을 만들어냈다. 이 스타일은 한국에서 1980년대 교복 자율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한국 남학생 교복으로 정착하여 청소년 의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비록 통치마로 대체되긴 하였으나 1920년대까지 교복은 한복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들어 여학생들의 교복에 다시 양장이 등장하여 블라우스, 스웨터, 주름치마, 세일러복, 타이, 모자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가운데 세일러복(sailor suit)을 가장 많이 착용하였다.

01. <단원 풍속도첩> 중 조선시대 유생의 모습으로 도포와 유건을 착용하고 있다. 도포는 선비들이 평상시 입던 겉옷으로, 그 용도는 사대부의 연고복이나 유생의 제복 등으로 사용되었다. 유건(儒巾)은 유생이 쓰던 실내용 두건의 하나다. ⓒ국립중앙박물관
02. 우리나라 최초의 양장 교복을 입은 숙명여학교 학생들(1907). 자주색 원피스에 분홍색으로 안을 댄 보닛을 착용하였다. ⓒ김환표 『교복의 역사 : ‘통제·획일화’ 와 구별짓기의 두 얼굴·1』 
03. 제12회 과학전람회 시상식에 참석한 교복 차림의 여학생들(1966) ⓒ국가기록원

 

‘획일화’에서 ‘개성’을 지나

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교복이 착용되었는데 숙명여자대학교의 전신인 숙명여자전문학교 교복은 흰 블라우스에 감색 세미 타이트스커트를 입고 양끝에 뾰족하고 넓게 되어 있는 감색 실크 넥타이를 네 겹으로 맨 모습이었으며, 겨울에는 상하 감색 투피스에 흰 블라우스를 속에 입고 넥타이를 맨 모습으로 당시 여자전문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품위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시체제가 강화되면서 교복도 모두 전쟁 수행의 노력 동원에 적합한 형태로 바뀌었다. 당시 정부는 일본여성들의 노동복인 ‘몸빼’라는 바지를 여학생 교복으로 채택하였고, 남학생은 국방색의 국민복을 착용하도록 하였다. 이어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 대중매체 발달로 인한 서구유행의 유입으로 패션계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으며, 여학생 교복도 학교자율에 의해 교복형태가 제정되었다.

학생들의 기대와 어른들의 걱정을 한 몸에 안은 채 1983년 교복 자율화가 시행되었다. 자유복 착용은 민주시민 자질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가계부담 증가와 학생들 간 소비의식 경쟁 등의 부작용도 가져오게 되었다. 이에 1985년 10월 교복 자율화 보완조치가 발표되었다.

현재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복을 착용하고 있지만, 교복의 브랜드화로 인해 30~40만 원을 호가하는 교복은 새로운 가계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 한 케이블 프로그램에서는 ‘한국교복 탑 10’을 선정하였다. 2000년대 들어 시작된 교복업체의 다양한 디자인 경쟁은 사복으로 입어도 충분할 만큼 맵시 있는 교복을 낳았다. 1800년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 교복 역사의 눈부신 발전이라 말하는 이도 있지만, 교복이 가진 정체성이 퇴색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패션은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를 대변하는 총체적 산물이다. 교복 역시 그 변천사 속에는 의복의 역사는 물론 대한민국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우리의 교복이 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글 채금석(숙명여자대학교 의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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