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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라간의 비밀, 조선시대 남자 요리사들
작성일
2013-03-14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9781



‘주방의 성인’이라 일컬었던 왕의 요리사

왕의 요리사가 남성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식을 깨는 감이 없잖아 있다. 요리는 여성이라는 도식에 드라마 ‘대장금’의 수라간 풍경에서 얻은 인상들이 겹쳐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은 역사에 회자되는 전설적인 요리사 이윤伊尹과 역아易牙도 남자이다. 이윤은 요리사로 출발하여 상商나라 탕 임금의 재상이 되었던 사람이다. 공자가 대현大賢이라 평가한 그는 ‘솥을 지고 칼을 차고負鼎佩刀’ 탕임금을 보필했다고 한다. 『여씨춘추』에 의하면 이윤은 요리에 대한 이론에 능통했을 뿐 아니라 요리의 기술을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에 접목시킨 사람이기도 하다. 예컨대, 음식의 맛은 감甘·신酸·고苦·랄辣·함咸의 오미五味를 적절하게 사용해야 하지만 어떤 것을 먼저 사용하고 어떤 것을 나중에 사용하는가에 따라 음식의 맛이 달라진다고 하였다. 유명한 요리 ‘이윤전오伊尹煎熬’나 ‘이공조화伊公調和’는 기원전 1500년대 이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또 한 사람 역아는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桓公(BC 716~643)의 전속 요리사였다. 그는 신의 미각을 가져 치수淄水와 민수 水의 물맛을 가려냈다고 한다. 그런 역아를 위해 제환공 역시 특별한 대우를 하였는데, 한 때는 그의 지위가 신하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봉에 이르렀다. 이윤과 역아는 ‘주방의 성인廚聖’이자 ‘요리의 성인烹調之聖’으로 불리었다.

명예, 권위와는 거리가 먼 직업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에서 왕의 요리사로 그 이름이 드러난 사람은 누구일까?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숙수나 반감이라는 직책으로 드러날 뿐 그들의 신상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알다시피 조선에서는 잡직에 분류된 기술직을 천대하는 분위기였다. ‘주성廚聖’의 경지에 오른 자가 있다 해도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분위기이다. 주방장에 해당하는 숙수나 반감의 이름은 행사 보고서류의 문헌에서나 간혹 얻어 볼 수 있다. 고종 39년1901 진연의궤進宴儀軌에 기록된 요리사들로 반감 지성규와 최학명, 숙수 김흥택, 배윤성 등이 나온다. 이 의궤는 고종의 오순五旬을 기념하는 연회에서 수고한 자들에 대한 시상내역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조선이 망하자 궁중에서 나와 명월관, 태화관, 식도원을 차례로 설립하며 궁중요리를 상업화한 고종의 전속 요리사 안순환 정도가 알려져 있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됐던 수라간

궁중의 요리사는 잡직이지만 전문직이었고, 이들을 관리 감독하는 사람들은 행정관원들이었다. 사옹원 소속의 실무직 행정 관원들로는 정 3품의 정正에서, 첨정僉正, 판관判官, 주부主簿, 직장直長, 참봉 등의 직책이 있는데, 요리 기술과는 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음식에 관한 지식이나 관심을 가진 관원들이 우선적으로 배치되었을 수는 있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경주의 교동법주는 경주 최부자집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가양주였다. 그것은 최씨집안의 선조인 숙종 때 사옹원 참봉을 지낸 최국선이 낙향하여 빚기 시작한 술인데, 사옹원 근무 시절 술 담당 요리사 ‘주색酒色’으로부터 전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궁중 요리사 및 궁중 수라간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사람은 몇이나 되며, 궁중 주방의 경영은 어떤 방식으로 행해졌을까. 세종 5년1423에는 대궐 안에서 신분증을 차고 다닐 사람의 수를 정하였다. 그 대상자는 대전大殿의 3백 88인 중에 남자가 3백 76명이고 여자가 12명인데, 그 중에 사옹원 소속 노비는 120명 정도 되었다. 왕비전의 1백 19명 중에 남자가 1백 4명이고, 여자가 15명인데, 사옹원 소속의 노비는 80명 정도였다. 또 태종의 후궁인 권씨가 거처하는 의빈전의 83명의 노비 중에 남자가 74명이고, 여자가 9명인데, 사옹원 소속의 노비는 55명 정도였다. 이로써 사옹원에 소속된 사람의 실제 숫자는 250명이 넘고 대부분은 남자였다. 경국대전에 규정된 바, 사옹원에서 요리 관련 일을 하는 노비의 숫자는 400여 인이었지만, 연회나 잔치가 있게 되면 그 수는 더 늘어났다. 오늘날 주방장에 해당하는 숙수나 반감 아래에는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배치되었는데, 이들을 각색장各色掌이라 하였다. 대전과 왕비전, 세자궁 등 각 궁궐마다 배속된 수라간이 있었다. 먼저 대전大殿의 수라간에서 일하는 각색장의 수와 담당 일을 살펴보자. 고기 요리를 담당한 별사옹別司饔이 14명이었다. 물 긷는 수공水工이 6명이고 물 끓이는 탕수탁반湯水托飯은 4명이다. 10명이 배치된 탕수증색湯水蒸色은 찜 요리 전문가, 6명이 배치된 채증색菜蒸色은 채소요리 전문가이다. 또 굽는 요리 전문가 적색炙色이 6명, 밥 짓는 반공飯工이 10명, 술을 담그는 주색酒色 6명, 쌀을 고르는 미모米母가 6명 배치되었다. 떡 전문가 병공餠工이 2명, 두부 전문가 포장泡匠이 4명 배치되었다. 8명이 배치된 상배색床排色은 상차림 전문가이고 6명이 배치된 장자색藏子色은 음식을 보관하는 일을 맡았다. 그 외에 성상城上이라는 은그릇 등 각 곳간의 주방 기구를 관리하고 보관하는 사람 등이 십 수인 배치되었다.

여기서 제례나 연회에서 상에 음식을 높이 괴는 전문가가 있었는데, 앙련仰聯이라 하여 한 행사에 20여 명이 필요했다. 이로써 수라간에서의 노동이 얼마나 분업화되고 전문화되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각 수라간에 배치된 미모米母와 병모餠母를 제외하면 수라간 전문가 절대 다수는 남성이었음을 다시 확인 할 수 있다.

이들은 하루에 2교대로 음식을 준비했는데, 대령숙수待令熟手가 되면 당장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늘 고단했던 것 같다. 그들은 왕과 왕비 등의 하루 다섯 끼의 식사 외에 궁중에서 소비되는 모든 음식을 관장하여 늘 잔치하고 행사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진연·진찬·회작이나 제사·고사, 그리고 왕자녀의 백일·돌·생일, 거기에 궁중을 드나드는 손님 접대 등. 중종 7년1512에는 사옹원 각색장 말손末孫이 다섯 달을 출근하지 않아 제조가 정속定屬(중죄인 집안의 사람들을 종으로 삼음)을 요청하였는데, 이에 말손의 아내가 법에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그 아내가 법의 힘을 빌릴 정도로 억울한 사연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사옹원의 각색장은 일이 힘들어 모두가 기피하는 직업이었다. 궁중 요리사 숙수가 권력가 집에서 과자와 음식 만드는 일로 불려 다니기도 했다.

식의食醫로서의 궁중 음식

우리 주변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각종 미디어에서, 어디를 가나 늘 몸에 좋은 음식 이야기로 넘쳐난다. 한국을 방문한 한 독일인 교수는 한국 식탁에 앉으면 마치 자신이 환자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장에 좋고 저것은 위에 좋고 또 이것은 눈에 좋고 하는 식이니 음식을 건강과 결부시켜 이해한 전통은 오랜 역사를 갖는데, 특히 조선시대 궁중 음식은 건강과 치료의 개념이 강했던 것 같다. 세조 9년1463에 국왕은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에 8등급이 있다고 하며, 음식을 통해 몸을 관리하고 병을 치료하는 식의食醫를 두 번째로 꼽았다. 식의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병을 고치는 최상의 의사 심의心醫 다음이고, 약으로 치료하는 약의藥醫보다 차원이 높은 의사인 셈이다. 식의는 음식의 달고 쓴 맛, 차고 더운 것을 잘 활용하여 처방 치료하는 의사라고 한다. 정9품의 관직이었던 식의는 영양학과 의학을 결합한 우리 전통의 음식사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글·사진.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사진. 문화재청, 홍익대학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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