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궁궐의 장고(醬庫)
작성일
2023-09-26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14

궁궐의 장고(醬庫) 장고(醬庫)는 궁궐 내에 사용하는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장(醬)을 항아리(장독)에 담아 보관하던 장소이다. 장고를 관리하는 상궁을 ‘장꼬마마’라고 불렀다. 장꼬마마는 매일 아침 장고의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 장독 뚜껑을 열어주고, 저녁에는 뚜껑을 닫아 궁궐의 장을 관리했다고 한다. 00.경복궁 장고 ©서헌강

수라상에도 오른 장

가을은 붉은 단풍과 같이 빨갛게 익은 햇고추로 고추장을 담그는 계절이다. 우리 민족이 장을 먹었던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장은 우리 식문화에 빠질 수 없는 주재료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백성을 구제할 때 소금과 장을 내려주었다는 기록을 수차례 찾아볼 수 있다. 장은 수라상에도 오른다. 74세의 영조는 내의원에게 “송이버섯, 날전복, 꿩고기, 고추장, 이 네 가지만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이를 보면 입맛이 영 늙은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영조도 고추장을 무척 좋아했나 보다. 궁에는 왕족뿐 아니라 이들을 보필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으며 이들도 장을 먹었을 것이다. 선조 38년(1605) 4월 22일 옹진현령 홍연기는 콩을 제때 바치지 않아 궐내 각처에서 쓰는 말장(末醬, 메주) 만들 시기를 놓쳤다며 파직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궁궐 안에 장은 어디에 보관하고 있었을까.


경복궁의 장고

19세기 고종대의 경복궁 모습을 그린 <북궐도형>에는 경복궁 내 장고가 함화당과 집경당의 동쪽과 서쪽, 두 곳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5년 문화재청은 서쪽 장고만 복원하였다. 복원된 장고는 외곽에 담장을 둘렀고, 내부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이 중 가운데 구역 동쪽에 난 예성문으로 장고를 출입할 수 있다. 세 구역은 담장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담장에 작은 협문이 1개씩 있어 내부에서 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 바닥에는 검정색 전벽돌이 깔려있다. 서쪽 장고 남쪽과 경회루 북쪽 사이에는 궁중 잔치 등 큰 행사가 열릴 때 필요한 음식을 조리하고 식자재를 보관하던 숙설소(熟設所)가 있었다. 때문에 서쪽 장고는 궁중 행사에 쓰는 장을 보관하던 곳으로 추정한다. 장고 주변에는 나무가 별로 없는데 이는 볕이 잘 들게 하여 장이 잘 익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현재 경복궁 장고 내부에는 우리나라 북부, 중부, 남부지방의 옹기와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은 장독 외에 젓갈과 소금, 잡곡 등을 담았던 다양한 항아리 2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2011년부터 일정기간 관람객에게 내부를 개방하고 봄에는 된장, 가을에는 고추장을 활용한 음식 만들기 체험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01.경복궁의 장고 전경 ©서헌강 02.경복궁 장고의 장독 ©강정인

동궐의 장고

창덕궁과 창경궁은 현재 장고가 남아있지 않지만, 순조 26년(1826)~순조 30년(1830)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동궐도》를 보면 네 곳에 장고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창덕궁 인정전의 동북쪽에 한 곳, 지금의 창경궁 통명전의 서쪽이자 지금의 낙선재 북쪽 후원 부근에 두 곳, 창경궁 자경전 동쪽에 한 곳이다. 각각의 위치를 보면 인정전 동북쪽을 제외하고는 모두 침전 부근에 위치한다. 외곽에 담장을 두른 장고 안에는 크기가 비슷한 장독 수십 개가 뚜껑이 덮인 채로 넉넉한 간격을 두고 줄지어 놓여 있다. 동궐도에는 장독이 많아야 한 곳에 70여 개가 그려져 있는데 『정조실록』 정조 2년(1778) 2월 22일 어고(御庫)에 항아리가 112개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 장고의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순조 8년(1808)에 편찬된 『만기요람』에는 왕이 머무는 대전, 왕비가 머무는 중궁전, 왕대비가 머무는 왕대비전,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머무는 혜경궁, 순조의 어머니 유빈 박씨가 머무는 가순궁에 간장을 담글 메주를 매년 각 20섬씩 바친다는 기록이 있다. 혜경궁 홍씨가 세자빈이던 시절의 일상을 기록한 『혜빈궁일기』에는 영조 40년(1764)과 영조 41년(1765) 2월 10일 혜빈궁에 메주가 들어온 기록이 있다. 당시 정조의 누이동생인 청연군주와 청선군주의 집에 메주를 나누어 준 기록이 있는데, 혜빈궁에서 대표로 메주를 받아 그녀가 관리할 식솔들의 살림을 챙겨준 것이다. 동궐도에 상세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왕실의 처소별로 장을 직접 담그고 관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궁궐 곳곳에도 봄이 한창일 때 된장 익는 냄새가, 가을이 깊어질 때 고추장 익는 냄새가 풍겼을 것이다. 여느 여염집과 다를 것 없는 풍경, 궁궐 또한 사람이 살던 곳이었다.




글. 강정인(궁능유적본부 궁능서비스기획과 전시큐레이터)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