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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태곳적부터 이어온 시간을 따라 걷다
작성일
2022-08-30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98

태곳적부터 이어온 시간을 따라 걷다 선사 지질의 길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은 정직하다. 강이 태고의 시간부터 역사의 시간까지 모두 품을 수 있는 이유도 그에 있다. 강물이 역행하지 않듯 인류 역사도 강물처럼 순행해 왔다. 한탄강과 임진강을 따라 형성된 수려한 풍경에는 태고의 흔적부터 피비린내 나는 쟁탈의 역사까지 켜켜이 쌓여 있다. 00.모래톱과 기암으로 이루어진 고석정 일원

자연이 빚은 걸작, 한탄강

강원도 철원을 가로지르는 한탄강은 화강암과 현무암 그리고 주상절리가 빚어낸 걸작이다. 한탄강은 절벽과 협곡이 발달해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린다. 여름에는 급류를 타며 즐기는 래프팅 명소로, 겨울에는 얼음트레킹 성지로 알려져 있다. 북녘땅 강원도 평강군에서 발원한 한탄강의 총길이는 136km. 철원과 포천을 지나 연천에서 임진강과 만나 한강으로 흘러든 뒤 서해에서 강의 생명을 마감한다.


한탄강 일대는 2015년 12월에는 국가지질공원으로, 202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질공원이란 지질과 경관(지형)을 보존하고자 만든 제도이지만, 지질 뿐만 아니라 그곳에 살아가는 동식물과 인간이 영위한 역사와 문화까지 포함한다. 한탄강이 지질과 경관이 빼어난 이유는 태곳적에 활발한 화산 활동으로 현무암 절벽과 주상절리, 폭포 등이 발달해서이다.


철원을 관통하는 한탄강 유역 가운데 순담계곡에서 드르니마을까지 약 3.6km 구간을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이하 주상절리길)이라 부르는데, 이 수직 절벽 구간에 길이 놓였다. 절벽에 매달린 길을 따라 기막힌 경치를 보며 걷는 이 벼랑길을 중국인들은 잔도(棧道)라 부른다. 험준한 절벽에 선반을 매달아 놓은 것과 흡사하다. 우리나라에도 몇몇 잔도가 있지만 그중 으뜸은 주상절리길을 따라 걷는 잔도일 것이다.


01.한탄강 기암절벽을 따라 난 잔도,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 02.출렁다리처럼 출렁 이는 화강암교

한탄강 따라 3.6km, 순담계곡에서 드르니마을까지

주상절리길의 시작은 순담이나 드르니 매표소, 둘 중에서 선택하면 된다. 순담 매표소에는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고 우측통행 시 풍경을 조망하기 좋지만, 후반부에 가서 1,300여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에 비해 드리니 매표소에서 출발하면 초반에 계단을 내려가다가 이후부터는 평지를 걷기 때문에 체력이 약한 탐방객에게 유리하다. 주말에만 양쪽 매표소를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평일에는 걸어서 되돌아오거나 택시를 이용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잔도답게 주상절리길에는 교량 13곳, 전망대 3곳, 전망쉼터 10곳이 있다. 각각의 구간마다 지질과 한탄강에 얽힌 이야기가 있어 해설을 듣고 걷기에 나선다면 더 알찬 여행이 될 것이다.


해설사는 순담계곡 쉼터와 드르니 쉼터에 상주한다. 먼저 찾은 곳은 순담계곡 쉼터이다. 각양각색의 화강암 바위와 모래톱으로 이루어진 순담계곡은 조선 영조(재위 1724~1776) 때 영의정을 지낸 유척기(1691~1767)가 요양하던 곳이다. 순담이라는 이름은 그 이후 순조(재위 1800~1834) 때 우의정을 지낸 김관주(1743~1806)가 20평 정도의 연못을 파고 순채를 옮겨다가 심고서 ‘순담’이라 부른 것에서 유래한다. 쉼터를 지나면 본격적인 주상절리길에 진입한다. 첫 번째 마주한 반원 모양의 스카이전망대. 절벽에 와이어를 고정해 강을 향해 돌출된 이 전망대는 발을 들이자마자 눈앞이 아찔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바닥 아래로 최근 집중호우로 불어난 강물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휘몰아친다. 이러한 스카이전망대는 중간 지점과 드르니 매표소 인근에 각각 한 곳씩 더 있다.


교량 13곳에는 다양한 지질 이야기가 곁들여 있다. 첫 번째 다리는 단층교이다. 단층이란 단단한 암석이나 지층이 갑자기 충격을 받으면 틈이 갈라지는데 이에 따라 암석이나 지층이 이동하거나 미끄러져 어긋나는 것을 말한다. 단층교에서는 화강암 절벽의 다양한 단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어 선돌교에서는 화강암 바위가 깎여 나간 모습을, 돌개구멍교에서는 암반 바닥에 생긴 원통 모양의 깊은 구멍을 볼 수 있다.


이어 마그마가 서서히 식어서 생긴 화강암을 볼 수 있는 화강암교를 지난다. 주상절리길에는 지질과 연관된 교량 이외에 ‘2번 홀교’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다리가 있는데 인근 골프장의 2번 홀에서 골프공이 날아오는 곳이어서 그리 부른다. 하지만 보호망으로 다리를 에워싸서 골프공에 맞을 염려는 없다.


이후부터 한탄강의 기반암인 화강암 지대가 현무암 지대로 바뀐다. 현무암은 화강암과 달리 지표로 흘러나온 용암이 빨리 식어 굳은 암석이다.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암석은 검은색과 회색이 많다. 특히 한탄강 유역에는 화강암과 현무암이 뒤섞인 곳이 많다. 이런 길은 현화교 주변에서 볼 수 있다. 돌단풍교에 이르면 주상절리 틈에서 자란 돌단풍을 마주한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돌단풍이 곧 다가올 가을을 기다리는 듯하다.


다리에서 한탄강의 지질을 관찰했다면 여러 쉼터에서는 그보다 감성적으로 주상절리길을 마주한다. 한탄강 여울물 소리가 가마솥에서 물이 끓는 소리처럼 들리는 구리소 쉼터, 쪽빛 윤슬이 반짝이는 쪽빛 쉼터, 형형색색의 돌단풍을 보며 시름을 잊는 돌단풍 쉼터,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왕건에게 쫓길 당시 잠시 들렀다는 드르니 쉼터 등이 그렇다.


03.주상절리를 배경으로 쏟아지는 재인폭포 04.남한에서 보기 드문 고구려의 성, 사적 연천 호로고루

철원 한탄강의 다른 비경을 찾아

한탄강의 절경은 주상절리길이 전부가 아니다. 철원 9경에 이름을 올린 고석정과 송대소, 직탕폭포 등이 더 있다. 먼저 순담계곡과 가까운 고석정으로 향한다. 흔히 고석정이라 하면 신라시대 때 지은 정자를 일컫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 대신 고석바위가 내려다보이는 고석루가 원래 고석정이 있던 자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설’에 불과하다. 또 임꺽정의 은거지였다는 설도 있다. 임꺽정의 원래 이름은 임거정으로 『조선왕조실록』에 임거질정으로 기록된 실존 인물이다.


그는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부자들의 재산과 부패한 관리들의 재산을 빼앗아 굶주린 백성에게 나눠줌으로써 의적이라 불렸다. 고석정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과 고려 충숙왕(재위 1294~1339)이 고석정에 머물렀다는 것만 전한다. 현재 고석바위 앞에 있는 2층 정자는 1971년에 콘크리트로 지은 것이다. 태곳적 신비가 응축된 고석바위와 현대 건축물이 어우러져 만든 풍경 사이로 유람선이 부유한다. 한없는 여유에 마음마저 평화롭다.


고석정에서 한탄강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한탄강 은하수교와 송대소에 닿는다. 한탄강 은하수교는 한탄강 유역의 현무암 주상절리 협곡을 관찰할 수 있도록 길이 180m, 폭 3m로 제작된 현수교이다. 특히 다리 바닥을 특수 강화유리로 제작해 콸콸 쏟아지듯 흐르는 한탄강을 하늘에서 보는 듯하다. 다리에서 보는 풍경 가운데 철원 9경 중 하나인 송대소가 있다. 높이가 30~40m에 이르는 수직 절벽인 송대소는 주상절리 특유의 수직 기둥과 옆으로 기울어진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도 함께 볼 수 있어 매우 독특하다.


한탄강 상류로 더 오르면 강 전체 폭이 폭포로 이루어진 직탕폭포에 이른다. 폭포의 높이는 약 3m에 불과하지만, 폭은 약 80m에 이르러 우리나라에서 폭이 가장 넓은 폭포이다. 우렁찬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물줄기가 검은 현무암에 부딪혀 하얀 물거품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직탕폭포 주변에서는 다각형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05.용암이 분출해 생성된 아우라지 베개용암

선사와 역사시대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연천

한탄강이 철원을 지나 경기도 연천에 이르면 아찔한 높이의 수직 폭포를 선보인다. 높이 18m에서 폭포수를 쏟아내는 재인폭포이다.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에서 물기둥처럼 곧 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폭포 아래를 침수시켜 수심 5m에 달하는 포트 홀(Pot hole)을 만든다. 지형을 바꿔버린 물의 힘이 놀랍다. 신록이 아직 푸른 9월이라 에메랄드빛 폭포수가 청량감을 더한다. 가을이 깊어지면 형형색색의 단풍과 어우러진 폭포가 선경에 버금간다고 한다. 재인폭포에는 이름과 연관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어느 옛날 줄타기 명수인 재인에게 고을 수령이 폭포에서 줄을 탈 것을 명했다.


그런데 이것은 재인의 아름다운 아내를 차지하기 위한 수령의 계략이었다. 재인이 영문도 모른 채 줄에서 떨어져 죽자 수령은 본색을 드러냈고, 재인의 아내는 위기의 순간에 수령의 코를 물고 폭포로 뛰어들어 자결했다.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 담긴 전설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탄강이 임진강과 만나는 지점에 사적 연천 호로고루가 있다. 낯선 이름, 호로고루의 ‘호로’는 임진강의 옛 이름이고 ‘고루’는 성을 일컫는다. 남한에서 보기 드문 고구려 유적이다. 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면 선선한 강바람이 온몸을 휘감고 탁 트인 전망이 가슴을 뻥 뚫어 놓는다. 성 주변에 해바라기 꽃밭을 조성해 연천을 대표하는 출사지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해바라기는 추석 이후부터 9월 20일까지가 절정이다.


사적 연천 전곡리 유적은 한반도에 살았던 선사인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역사 유적이다. 한탄강과 임진강이 흐르는 연천에는 구석기 유적이 특히 많은데 그중 이곳은 규모가 가장 크고 넓다. 여기서 발굴된 주먹도끼는 기술적으로 발달한 아슐리안 석기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발굴된 것이다. 석기시대의 유물과 발굴 현장의 모습을 재현한 토층전시관, 전곡리 선사유적과 선사인들의 의식주를 비롯해 예술과 장례문화까지 한눈에 조명한 전곡선사박물관도 있다.


한탄강과 영평천이 만나는 지점을 아우라지라고 한다. 그곳에 용암이 차가운 물과 만나 빠르게 식으면서 만들어진 둥근 베개 모양의 용암이 있는데 생긴 모양대로 베개용암이라 부른다. 대개 깊은 바다에서 용암이 분출할 때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곳 베개용암은 내륙 지역의 강가에서 발견되어 매우 희귀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베개용암은 지형 아랫부분에 벌집처럼 촘촘히 박혀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또 이곳 주소는 포천시 창수면 신흥리지만, 베개용암을 볼 수 있는 곳은 연천군 전곡읍 신답리이므로 주의해서 찾아가야 한다. 하류로 내려가면 좌상바위를 마주한다.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이 바위는 높이만 60m에 이르는 일명 ‘새끼 화산’이다. 장구한 세월을 보내면서 화구가 반 정도 떨어져 나간 모양이 이채롭다.


철원에서 연천으로 흐르는 한탄강의 급한 물살은 바닥과 벽을 깎아내면서 흐른다. 그 모습이 흡사 아픔을 도려내고 새살을 돋게 하는 치유의 과정처럼 보인다. 급물살 속에는 그 옛날 궁예의 눈물과 동족상잔의 비극적 눈물 그리고 오늘 우리의 땀도 함께 뒤섞여 있을 것이다. 모든 아픔과 눈물을 안고 드넓은 바다를 향하는 한탄강, 그래서 한탄강은 ‘큰 여울이 있는 강’이 아닐까.


Info 함께 즐기면 좋은 문화재와 축제 # 철원 태봉제: 철원은 궁예가 건국한 옛 태봉국의 수도였다. 축제는 태봉제례를 비롯해 각종 민속놀이와 궁예왕 어가 행차, 즉위식 등 다채롭다. 매년 10월 초에 개최된다. # 철원 한탄강 물윗길 트레킹: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한탄강 태봉대교를 출발, 송대소, 마당바위, 승일교, 고석정, 순담계곡에 이르는 8km 구간의 코스를 걷는 행사이다. 한탄강의 비경과 주상절리를 벗삼아 걷는 것이 백미이다. # 연천 구석기축제: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펼쳐지는 체험 중심의 선사문화축제이다. 구석기 퍼포먼스, 구석기 캠프, 구석기 바비큐 등 다양한 행사가 매년 10월에 열린다. 여행 문의 철원군청 한탄강 관광 033-450-5532 연천군청 관광과 031-839-2061
문화유산 방문하고, 선물 받으세요! 가장 한국다움이 넘치는, 신비로운 우리 문화유산을 함께 만드는 길에 동참하세요. 10개의 길, 75개의 만남이 있는 문화유산 방문코스가 2022년 월간 <문화재사랑>을 통해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됩니다. 방문코스에 나오는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에 관한 이야기, 멋진 풍경에 푹 빠져보세요. 그리고 직접 <문화재사랑> 9월호에 소개된 방문코스 또는 그 외 ‘선사 지질의 길’ 코스를 방문해 인증 사진을 보내주세요. 네 분을 선정해 선물을 드립니다. 오른쪽 QR코드를 찍으면 이벤트 참여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인증사진을 첨부해 보내주세요. 9월호 코스: 선사 지질의 길 응모기간: 9월 18일까지 문화유산의 모습을 담아도 좋고 문화유산과 함께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담아도 좋습니다. 인증 사진을 찍고 메일로 보내주세요! * 문화유산에 따라 출입이 제한된 곳도 있습니다. 소중한 문화유산의 보호를 위해 출입이 제한된 곳은 절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글,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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