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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암 이회림 선생의 미술컬렉션과 사회 환원
작성일
2018-03-30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284

송암 이회림 선생의 미술컬렉션과 사회 환원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리는 송암 이회림 선생(1917 ~2007)은 개성에서 태어나 무일푼 10대 시절 만물상 배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그는 1959년 설립한 동양화학의 사업이 성공한 이후에도 함부로 돈을 쓰지 않았고, 식사 후 음식을 남기는 이들을 타박했으며, 항상 부지런히 일을 하며 시간마저 아껴 썼다고 그와 가까웠던 이들은 기억하고 있다.
남자가 비누세수를 하는 것도 사치라고 말했던 그가 말 그대로 ‘아낌없이’ 시간과 정성을 쏟은 것은 바로 우리나라 고미술품이었다.

소문난 구두쇠의 문화재 사랑

강인하고 엄격하기로 이름났던 송암에게 미술품은 유일하게 그의 낭만적 면모를 발현시킬 정도로 그를 매혹시킨 듯하다. 1950년대부터 미술품을 수집한 그는 원래부터 친분이 있던 동원 이홍근 선생과 교류하며 많은 조언을 받고, 이후 최순우 관장과 정양모 관장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설한 박물관 대학에서 보다 체계적인 공부를 하는 등 본인의 안목을 연마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1987년 설립된 송암문화재단은 송암회관에 자리 잡으며 한학(漢學) 사료 연구 지원과 문인화 등의 상설전시를 시작했다(송암회관은 송암이 상경하여 터를 잡았던 종로구 수송동의 집을 1989년 개축한 것으로 현재 송암문화재단 산하 OCI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통문화의 가치를 보존하고 대중과 그의 소장품을 나누고자 한 송암은 1992년 인천 학익동에 송암미술관을 건립했다. 동양화학의 공장이 있고 오랫동안 사업의 근간이 되어준 인천 시민에 대한 그의 고마움의 표시였고,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대형 미술관이 없었던 인천시에는 가뭄에 단비 같은 곳이 탄생한 것이다.

 

개성 있는 송암 컬렉션

당시의 컬렉터는 보통 서화에 집중한 반면 송암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의 자문을 받으며 수집한 도자기들은 송암의 취향을 반영하여 조선시대 청화백자가 많다. 다양한 형태와 문양의 병, 연적이나 필세(筆洗) 등은 대범함 속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그의 섬세함을 보여준다.

물론 송암 컬렉션의 압권은 회화다. 수없이 많은 민화와 <시왕도>를 비롯한 고려 불화, 그리고 오원(吾園)을 비롯한 조선말기 대가들의 작품 등이 송암 컬렉션의 수작들이다. 송암미술관 소장품 중 겸재(謙齋) 정선의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는 그 작품성뿐만 아니라 2001년 국내의 한 경매에서 당시 국내 최고(最高) 낙찰가로 거래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를 개인 소장이 아닌 사회 공공재(公共財)로서 미술관이 소장하도록 한 것은 중요 미술품의 보존뿐 아니라 우리나라 미술 시장의 활성화에도 기여한 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초 왕성하게 활동한 개성 출신의 ‘황씨(黃氏) 네 형제’의 작품도 송암 컬렉션의 한 축을 이룬다. 송암은 인생의 마지막 두 해를 북한 유화를 모으는 것에 몰두했다. 실력 있는 화가들이 그린 작품 속 북한 풍경과 인물들을 보면서 망향(望鄕)의 그리움을 달랬던 것으로 보인다.

 

평생을 바친 컬렉션을 인천시에 기증

보다 많은 작품을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그의 간절함은 송암미술관 개관 당시의 사진에서, 마치 만물상처럼 벽면 가득 빼곡하게 늘어선 작품 디스플레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원 선생도 좋은 작품을 구하기 위해 일부러 속아주면서 상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수집에 임했다는데, 송암 역시 상인들과 오랜 시간 대화하고 교류하며 그 사람 됨됨이부터 살폈다 한다. 그는 인류문명의 결정체인 미술품 자체만큼이나 작품을 두고 이어지는 사람들과의 인연,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역사를 소중히 여긴 것이다.

2005년 송암 선생은 평생 모은 작품 8000여 점과 미술관 건물, 그리고 미술관이 위치한 주위 대지까지 모두 인천시에 기부한다는 대결단을 내렸고, 그의 호탕한 기부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작년 여름 송암 타계 10주기를 추모하며 인천시립송암미술관이 개최한 특별전의 제목은 <어느 개성상인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송암이 남긴 선물은 비단 미술관만이 아니다. 동전 한 닢도 허투루 안 쓰며 모은 재산으로 훌륭한 미술품을 수집하며 보람을 느끼고, 그 값을 헤아리기 어려운 컬렉션을 사회로 환원시키며 진정한 행복을 추구했던 그 마음이 더 큰 선물이 아니었을까 한다.

 

글. 이지현(OCI미술관 관장) 일러스트. 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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