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꽃의 향기와 풍류가 머무는 우리 고유의 가향주(加香酒) 문화
작성일
2017-04-0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879

꽃의 향기와 풍류가 머무는 우리 고유의 가향주(加香酒) 문화 - 우리나라는 대략 3천 년의 양조역사를 자랑하는데, 다른 어떤 나라보다 특별한 양조기술과 고유한 음주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이 영위해 온, 밥이 주가 된 식습관과 계절별 세시풍속의 문화가 다양한 가향주를 등장할 수 있게 했으며 양조기술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서도 향기에 한 번, 빛깔에 또 한 번 취하게 되는, 꽃으로 빚어낸 우리의 전통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찹쌀 반죽과 꽃잎을 함께 버무리는 방식의 가향주

민족 고유의 식문화에서 시작한 가향주

우리 민족이 영위해 온 주식, 곧 밥의 재료가 되는 쌀을 술의 주원료로 이용해 왔다는 점에서 다른 민족의 양조문화와 차이를 갖는다. 특히 계절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꽃이나 잎, 과일, 열매 등 자연재료가 갖는 여러 가지 향기와 맛, 색깔을 술에 불어넣는 가향주 문화는 세계에 자랑할만하거니와, 이러한 가향주를 즐기는 나라 또한 드물다. 전 세계에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사계절의 변화에 맞춰 다양한 가향주 제조와 풍류가 깃든 음주문화를 가꾸어 온 민족은 거의 볼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가향주 문화는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우리 민족만의 고유하면서도 차별화 된 음주문화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역사적인 아픔을 겪으면서 가향주의 문화가 사라지고 잊혀 현대에 와서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 민족이 가향주를 즐기게 된 데에는 술을 단순히 기호 음료로만 인식하지 않고, 계절 변화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자연물을 섭생해 온 고유한 식문화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봄이면 산야의 나물을 채취해 푸릇한 봄의 미각을 즐기는 한편, 겨우내 결핍된 비타민 등 고른 영양섭취로 기운을 얻는다. 그뿐만 아니라 여름이면 성질이 찬 과일과 채소로 체내의 더운 열기를 다스리는 등의 식습관은 현대사회에서도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01.향주를 주제로 시화를 짓고 있는 모습 02.가을 국화로 빚은 국화주 03.연꽃으로 빚은 연엽주 04.반죽에 꽃잎을 켜켜이 쌓아 숙성시키는 방식

사시사철의 정취를 술로 빚어내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잎이 무성해지며, 가을이 되면 열매와 뿌리가 성해지는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술에 적용하는 지혜를 발휘해, 우리 선조들은 이른바 가향주를 빚어 즐겨왔다. 이처럼 가향주의 대부분은 재료를 자연에서 가져오는데, 겨울의 끝무렵부터 피기 시작하는 매화를 비롯하여 이듬해 늦가을까지 피는 국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꽃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나, 더러 유자나 귤 등의 과일이나 열매의 껍질, 또는 향기가 좋은 솔잎과 송순, 연잎 등 식물을 활용하기도 한다.

봄에는 진달래, 복숭아꽃, 살구꽃, 자두꽃 등을 술에 넣어 그 향기와 정취를 만끽하고, 여름이면 창포나 장미, 박하, 연꽃 등잎과 꽃으로 술을 빚어 마시며,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놀이나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놓고 즐기는 유상곡수(流觴曲水)로 더위를 씻었다. 가을에는 국화를 비롯해 구절초, 유자와 귤 등 과일 껍질의 향기를 술에 불어넣어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술에서 찾기도 했다. 또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엄동설한의 설중매(雪中梅)는 그 향기가 뛰어나, 반쯤 핀 매화를 술잔에 띄워 마시는 등 우리네 조상들은 술 한 잔에도 현장성의 풍류를 즐기는가 하면, 흥취 깃든 술자리를 통해 저마다의 심성을 맑게 정화하는 아름다운 음주문화를 가꾸어 왔다.

멋과 낭만이 있는 가향주 문화

기호 음료라고는 하지만, 마시는 술이 달라지면 그 술과 곁들여 먹는 음식까지도 바뀌게 되어 있다. 결국, 음주문화까지도 변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지난 30여 년간 전통주의 대중화를 위해, 특히 사라지고 있는 가향주와 그 문화를 되살리자는 취지의 가양주(家釀酒) 문화 운동을 전개해 온 배경이 여기에 있다. 주류시장의 개방과 함께 분별력을 발휘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물밀 듯이 들어온 각종 와인과 맥주, 사케에 길들여져 술자리마다 외국의 음주문화를 답습하는 경향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찬란했던 양조기술과 음주문화는 정체성을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우리 술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젊은이들에게 고유한 음주문화의 가치를 일깨워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꽃으로 빚는 가향주와 그 문화에 한국 전통주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의 가향주 문화는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수되어 왔다. 지역마다 집집마다 고유의 비법으로 맥을 이어왔으며, 최근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향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기도 하다.

가향주 문화가 어느 정도 성행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근거로 조선시대 사대부와 선비, 시인 묵객(墨客)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풍류를 들 수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돌아오는 삼짇날이나 단오 등 명절이 되면 들이나 산, 누정, 물가로 나가 자연과 더불어 술을 즐기는 것을 멋으로 알았다. 이때 주변의 매화나 국화, 창포 등이 있으면 즉석에서 따서 술에 띄워 마시는 멋과 낭만이 있었다. 이러한 현장성은 특히 시인 묵객들 사이에서 유행하며 수많은 시와 그림 등의 작품을 낳는 등 예술로 승화되기도 하였다.

가향주는 계절에 맞춰 꽃과 잎을 버무려 넣거나 시루떡 안치듯 켜켜로 넣는 방법으로 제조하고 있다. 특별한 양조법을 선호한다기보다 대중성을 구현해온 것이다. 또한, 가향주를 빚을 때는 우물물보다 계곡물이나 강물을 선호했는데 이는 미네랄 함량이 높아 왕성한 발효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한 술 향기를 발현하고자 했던 과학적 지혜가 깃들어 있다.

우리의 가향주와 그 문화는 저마다의 심성을 맑게 정화하는 한편, 음주를 통해 얻게 되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감응을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숭고한 정신이 담겨 있다.

 

글+사진‧박록담(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