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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 개국과 천상열차분야지도
작성일
2014-02-13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22165

조선 개국과 천상열차분야지도 - 천상열차분야지도란 하늘에 위치하고 천체와 그들이 운행하고 있는 천상을 영역으로 나누어 일정한 순서에 따라 펼쳐놓은 그림이라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성리학을 기본으로 한 조선의 통치이념을 보여주는 상징물이 아닌, 과학적으로 천체의 위치를 파악해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위대한 과학적 창의성이 담긴 과학문화유산이다.

 

1. 하늘의 뜻으로 세운 조선

고려 말은 대내적으로 전 국토에 걸쳐 동시 다발적으로 왜구가 침입하고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중국 땅에는 원나라가 퇴조하고 명나라가 새롭게 일어나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왜구를 물리치는데 가장 공을 많이 세운 태조 이성계가 국가의 권력을 장악했다. 급기야 태조 이성계는 1392년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인 조선을 개국하게 되었다.

개국하고 난 뒤 군사력에 의해 고려 왕조를 무너뜨렸다는 생각을 가진 백성들이 흔쾌히 새 왕조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태조는 개국을 하면서 우선 고려 왕조를 지탱하고 있던 불교를 배척하고 새로운 이념인 성리학을 조선의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성리학의 통치 철학의 기본은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을 잘 통치하는데 있다. 그리고 조선의 개국은 단순히 무력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인 천명(天命)을 받고 세웠음을 강조했다.

개국이 천명에 의한 것임을 밝히기 위해 태조는 가시적인 상징성을 가진 천문도를 만들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통해 조선 개국 초 민심을 한데 모으려는 노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미 당시 중국은 남송시대인 1247년에 전통적인 중국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를 돌판에 새겨 놓았다. 그러나 조선 태조는 중국의 천문도를 그대로 옮겨 제작하지 않았다. 우리의 정통성은 중국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던 중 때마침 한 백성이 옛날 고구려시대 평양성에 있었던 돌판에 새긴 천문도의 탁본을 바쳤다. 태조는 매우 기뻐하면서 이 천문도를 바탕으로 새롭게 고쳐 돌판에 새길 것을 명하였다. 이것이 태조 4년(1395)에 돌판에 별자리를 새겨서 제작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이다.

01. 국보 제1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 직육면체의 돌에 천체의 형상을 새겨 놓은것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고자 권근, 유방택 등 11명의 천문학자들에게 명을 내려 만들도록 한 것이다. 02. 조선을 세운 태조(1335~1408). 태조는 조선의 개국은 단순히 무력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인 천명(天命)을 받고 세웠음을 강조하였다.

 

2.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나타난 태조의 개혁 의지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한 목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조선 왕조는 힘으로 고려를 멸망시킨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고 개국했음을 만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둘째, 성리학적인 통치이념의 기본인 하늘을 공경하고 부지런히 백성을 보살피는 경천근민(敬天勤民)통치사상이다. 셋째,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면밀히 관측하여 때와 시를 살피고 이를 백성에게 알려주겠다는 관상수시(觀象授時)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넷째, 천상(天象)을 지속적으로 관측하여 하늘의 뜻인 천심(天心)을 읽어 백성들을 통치하는 기본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백성들에게 알리고자 한 것이다. 이렇듯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성리학을 기본으로 하는 백성들을 위한 강한 개혁 의지를 보여주고자 제작되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을 주도한 학자는 당시 조선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한 권근(權近, 1352-1409)을 중심으로 유방택, 설경수 등 총 12명이다. 유방택은 고려 말 유학자인 동시에 천문에 대한 전문가였다. 그는 천문도 제작에 필요한 별의 위치와 별자리 전반에 관한 전문적인 계산을 실제 전담했던 인물이다. 설경수는 천문도 제작에 들어가는 모든 내용을 정리하여 이를 직접 글로 남겼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두 정리하여 높이 211㎝, 폭 123㎝, 두께 12㎝인 돌판에 글자를 새긴 것이 천상열차분야지도이다. 이는 1985년 과학유물로서는 처음으로 국보 제128호로 지정되며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이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있는 천문도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만 원권 화폐의 뒷면 디자인에 활용되었다.

03. 천문도 전체에 그려진 별과 영역 04. 천문도 안에 있는 삼원이십팔수의 경계 영역

 

3. 고대의 천문지식과 정치사상이 담긴 천문도

그러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이러한 유학의 기본 통치이념을 백성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상징성만을 가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선 천상열차분야의 의미부터 살펴보면, 천상(天象)이란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천체와 천문 현상을 말한다. 열차(列次는 천체들을 선후의 순서에 따라 펼쳐 놓았다는 것이다. 분야(分野)는 지상에도 여러 나라가 일정한 영역으로 분포되어 있듯이 하늘도 이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법칙에 따라 분류해 놓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에 위치하고 천체와 그들이 운행하고 있는 천상을 영역으로 나누어 일정한 순서에 따라 펼쳐놓은 그림이라는 뜻이다. 간단히 말하면 천문도(天文圖)다.

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중심의 원형 안에는 별자리를 그린 천문도가 있고, 그 주위에는 천문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다양한 내용의 도설(圖說)들이 있다. 원형의 천문도 중심은 천구북극으로서 세계 어느 곳에서 보나 정확하게 정북을 향하는 방향이다. 원형 천문도 안에는 4개의 원이 그려져 있다. 천문도 중심에 있는 원은 한양에서 계절과 관계없이 항상 지평선 위에 올라와 있는 주극성의 범위를 의미한다.

이 원을 내규라고 한다. 또 한양에서 지평선에 올라오는 별의 범위의 한계를 원으로 표시한 것이 원형 천문도의 외곽 경계선이다. 이 원을 외규라고 한다. 내규와 외규 사이에는 두 개의 원이 서로 엇갈려 표시되어 있다. 그중 하나는 천구적도이다. 약간 중심에서 어긋난 원은 태양이 일 년 동안 별자리 위로 운행하는 경로로서 황도라고 한다.

천문도 중심의 내규 범위에 있는 별자리 영역을 자미원이라 하는데, 이곳은 하늘의 임금인 천제가 지내는 궁전이다. 그 주위에 황제를 보필하는 신하들이 살고 있는 태미원이 있고, 또 백성이 산다고 하는 천시원이 있다. 그리고 원의 중심에서 방사선으로 나누어진 28개의 영역이 있다. 이 영역은 황도 근처에 배열된 28개의 별자리 영역으로 정한 것이며 이를 28수라고 한다.

28수의 이름은 4방위에 따라 상징 동물을 붙여서 7개씩 모두 28개이다. 동쪽은 동방칠수라 하여 청룡을 상징한다. 이에 속한 별자리는 각수, 항수, 저수, 방수, 심수, 미수, 기수 등이다. 북쪽은 북방칠수라 하여 현무를 뜻한다. 이에 속한 별자리는 두수, 우수, 여수, 허수, 위수, 실수, 벽수 등이다. 서쪽은 서방칠수라하여 백호를 뜻한다. 이에 속한 별자리는 규수, 누수, 위수, 묘수, 필수, 자수, 삼수 등이다. 그리고 남쪽은 남방칠수라 하여 정수, 귀수, 유수, 성수, 장수, 익수, 진수 등이다. 그래서 고구려 고분에는 네 방위에 따라 사신도를 그리고 때로는 방위에 따라 별자리를 그려 넣기도 한다.

05.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 대표적 천문학자로,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을 제작하는 데 핵심역할을 수행한 유방택

 

4. 하늘의 시간, 하늘의 움직임을 중시한 선조들의 과학사상

이렇듯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하늘에 있는 모든 별자리를 말할 때 삼원이십팔수라 하였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천문도에 새겨놓은 별자리 수는 총 295개이고 전체 별의 개수는 총 1,467개이다. 돌판에 새겨진 별의 크기를 살펴보면 약간씩 서로 다른데 이는 별의 밝기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는 천문도에 있는 모든 별의 크기는 밝기에 상관없이 같게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 별자리의 체계가 중국의 삼원이십팔수와 거의 일치하지만, 별과 별을 연결하여 만든 별자리의 모양 또한 중국의 것과 서로 비교해 보면 많은 부분이 서로 다르다. 어느 경우는 중국과 전혀 다르게 별자리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별자리 묘사 방법이 중국과 서로 다르다는 점을 미루어 보건데 우리 조상이 전해준 고유한 문화가 중국과 다른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형 천문도의 주위에 쓰여 있는 다양한 설명인 도설에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중에 특징적인 것 몇 가지만 알아보기로 한다. 우선 천문도 위에 있는 작은 원은 24개의 방사선 모양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안에는 24기에 따라 당시 수도인 한양에서 초저녁과 새벽에 남중하는 별자리를 써 넣었다. 따라서 초저녁 또는 새벽에 하늘을 보았을 때 남중하는 별을 보고 계절 또는 날짜를 추정할 수 있다. 상당히 과학적인 계산을 바탕으로 표로 만든 것이다.

천문도 위쪽의 양쪽 구석에는 하늘의 별자리 전체를 12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지상의 방위와 연계하여 구분하고 있다. 각 영역과 방위에 따라 고대 중국 나라의 명칭을 붙였다. 그리고 천문도아래 부분에는 논천(論天)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이 부분은 조선시대 학자들이 알고 있었던 우주의 구조와 우주 체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내용은 주로 중국의 역사서인『 진서』 중‘천문지’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이어서 28수의 중심이 되는 별들을 한 개씩 선정하여 그 별이 북극과 떨어진 각도인 거 극도(距極度)와 28수의 중심이 되는 별들의 동서 방향으로 떨어진 각도인 입수도(立宿度)를 표시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 천문학에서 별의 위치를 정할 때 사용한 적위, 적경과 비슷한 개념을 가진 각도이다. 별의 위치를 표현하는 방법은 옛날이나 현재나 큰 차이가 없다.

천문도의 맨 아랫부분에는 천문도의 원본이 옛날 고구려 평양에 있었던 천문도가 근거가 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어서 성리학적 관점에서 천문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태조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하늘을 공경하고 그 뜻에 따라 백성을 통치하고 보살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 내용 중에는 중국 고대 제왕들이 펼친 선정 내용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천문도를 제작한 시기가 태조 4년(1395년)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고 천문도 제작에 관여한 12명의 천문학자들의 직책과 이름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단순히 성리학을 기본으로 한 조선의 통치이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 천체의 위치를 파악하여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지평선에 떠오르는 별의 위치를 관측하여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고, 또한 행성의 운행을 관측하고 혜성이나 신성이 나타나면 정확하게 그 위치를 관측할 수 있는 도구로서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우리 조상이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이자 우리 조상의 과학정신을 담고 있는 중요한 유물임을 알 수 있다.

글 이용복(서울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 소남천문학사연구소장) 사진 문화재청, 이용복, 류방택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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