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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뿌리 깊은 나무의 지혜를 구하다.
작성일
2016-03-03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2433

 뿌리 깊은 나무의 지혜를 구하다  경희대학교 국제대학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모두가 강남스타일과 한류에 열광할 때, 한국의 선비정신과 홍익인간 전통에 주목하는 사람이 있었다. 동아시아문화 영역의 저명한 석학이자 현재 경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만열 교수. 그의 저서 <한국인만 모르는 새로운 대한민국>은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전통문화의 가치와 새로운 대한민국의 방향을 모색하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선비정신과 홍익인간, 그 익숙하고도 낯선 화두

중국과 일본문화를 먼저 접하고 연구한 학자로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에게 처음부터 매력적인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지켜보는 동안 그는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전통과 가치를 발견하고 매료되었다.

“예전에 주미한국대사관 문화관 자문역으로서 한국과 한국문화를 외국인에게 소개하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그 제공되는 콘텐츠라는 게 너무나 빈약하고 문제가 많아 보이더군요. 한국인들이 스스로의 장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했지요.”

미국에서 태어나 예일대, 동경대를 거쳐 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화학 박사가 된 그에게 한국은 그저 ‘한강의 기적’이란 말로는 표현될 수 없는 깊이와 위대한 전통을 가진 나라다. 한국 전통문화 가운데 특히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선비정신과 홍익인간, 그리고 공동체 문화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듯하지만 막상 설명하고자 하면 그 이해의 피상적 수준이 드러나는 개념들. 왠지 그가 해석하는 선비정신의 의미가 어딘가 낯설다.

“선비정신에 대한 한국인들의 부정적 인식이 있는데, 대부분 일제에 의해 왜곡되고 폄하된 결과예요. 선비정신은 사회에 대한 지식인의 깊은 고민과 책임의식의 표현이었어요. 개인적 차원에선 도덕적 삶과 학문적 성취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행동으로 표현되지만, 사회적으로는 수준 높은 공동체를 유지하면서도 이질적 존재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고 있죠.”

그로선 대단한 발견이었다. 이거야말로 21세기에 요구되는 엘리트 상이기 때문이다. 그는 “만약 우리가 시대의 요구에 맞게 선비정신을 재창조할 수 있다면 한국을 넘어 전 지구인이 향유하는 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알게 모르게 용도 폐기된 우리 전통의 가치를 외부인의 눈과 입을 통해 설득되고 있는 이 상황은 분명 아이러니하지만,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통찰의 기본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기 충분해 보인다.

사색과 성찰의 전통을 가진 한국인

한국이 이뤄낸 고도성장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것만이 한국을 설명하는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세상의 어떠한 문명적 발전도 이전의 정신적· 물질적 토대 없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인은 과거의 가치는 발전을 저해하는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하지만 오히려 거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합니다. 고도성장과 경제발전은 외부에서 만들어준 게 아니잖아요? 그럴 수 있는 역량과 노하우가 스스로에게 있었던 겁니다.”

한국인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9년째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만열 교수. 그가 지금껏 목격하고 경험한 대한민국은 지구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문화적 역동을 가진 나라다. 이미 깊어진 한국에 대한 관심과 인연의 힘으로 그는 끝없이 이 같은 문제를 환기하고 대화하기를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열심히 스펙 쌓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다 주말엔 고궁도 산책하고 책도 읽는다? 이건 본래 한국인의 모습이 아니에요. 예전 선비들을 보면 일상 속에서 사유하고 성찰하며 지적인 소통도 활발했죠. 이거야말로 이 시대가 지향하는 인문학적 전통 아닌가요?”

그는 전통의 가치를 현재적 맥락 속에 재창조하는 일은 대한민국의 인지도를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코리안 프리미엄을 찾게 할 유일한 해답이라 거듭 강조한다. 선비정신을 국가 브랜드화하는 것으로 국제사회를 리드하는 ‘1등 한국’도 가능하리라는 기대. 그것은 결코 과장이 아닌 객관적 진단에 입각한 제안인 것이다.

‘서울은 하나의 마을이었다’는 말의 의미

한국살이 9년 차를 맞는 그에게 평소 즐겨 찾는 한국의 거리를 물으니 의외의 답이 나온다. 청계천 일대의 상가와 을지로 인쇄골목, 오래된 철공소나 공구점, 작은 식당 등이 밀집된 거리다. 청계천이 아닌 청계천 상가, 인사동이나 북촌이 아닌 을지로 골목이라니! 깔끔하게 단장된 관광거리보다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살아 숨 쉬는 현장에서 그는 진정한 한국인의 삶과 문화의 정수를 발견한다고 했다.

“조선의 한양은 하나의 마을이었어요. 그것도 아주 생태적이고 합리적인 행정시스템을 가진 도시였죠. 이렇게 긴 역사를 마을공동체로 운영된 도시는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 그런 요소와 흔적을 발견할 때, 그때가 저에겐 진정한 한국의 멋을 공감하게 되는 순간이죠.”

한양이 서울로 변모하는 동안 사라져 버린 것들은 단지 낡은 전통가옥과 저잣거리 풍경만은 아닐 것이다. 근대화의 성공과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공동체적 가치도 해체되었다. 물질적 풍요를 얻는 대신 정신적 박탈감이 심화되고 있는 현대 도시인에게 최근 ‘마을공동체의 복원’이 대안적 모델로 논의되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쨌거나 좋은 전통과 행복한 삶의 노하우는 더 늦기 전에 되살리는 게 무조건 유리한 법이다. 따지고 보면 이미 있었던 과거가 현재의 모순을 해결하는 대안으로 다시금 소환되고 있는 셈인데, 더 많은 소비와 더 높은 성취로 보장되는 행복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걸 뒤늦게나마 알아차린 결과다.

오래된 것을 무조건 낡은 것으로 간주하여 ‘철거대상’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한국문화가 가진 약점 중 하나라는 그의 지적은, 우리가 동경해마지않는 유럽의 도시들 대부분이 스스로의 전통을 유지한채 현대를 접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설득력이 있다.

 

글‧김수연 사진‧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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