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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임금 앞에서도 굴하지 않던 사관의 기록 정신
작성일
2022-05-30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206

임금 앞에서도 굴하지 않던 사관의 기록 정신 (태종이)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하여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 하였다. - 『태종실록』 7권, 태종 4년 2월 8일

조선 태종 4년, 사냥을 좋아하는 태종이 말을 타고 활시위를 당기다 그만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경황이 없는 가운데서도 태종이 내뱉은 첫마디는 이러했다. “이 일을 사관이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러나 사관은 사관이 모르게 하라는 말까지도 기록했고 이는 『태종실록』에 그대로 실렸다.


이 일화에 등장하는 사관은 민인생(閔麟生)으로 그는 온종일 태종의 곁에 찰거머리처럼 붙어 일거수일 투족을 기록했다. 측근 몇몇만 데리고 나가는 비공식 사냥에 복면까지 한 채 뒤따라갔고, 태종이 개인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때도 병풍이나 휘장을 들춰내고 몰래 엿보다가 쫓겨났다. 태종이 역정을 내자 민인생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관의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최고 권력자인 국왕의 언행과 행동뿐 아니라 관리들의 평가와 주요 사건, 사고 등을 기록했던 사관(史官)은 조선 초기부터 엄격한 과정을 거쳐 선발했다. 사관에 결원이 있으면 춘추관의 당상 6품 이하의 문신 가운데서 경서와 사기, 문장을 시험하고, 또 그 문벌을 조사해 흠이 없는 사람을 뽑아서 임명했다고 한다. 역사의 서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지식을 갖춰야 하며, 글 쓰는 탁월한 능력도 필요했다. 또한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해야 하기에 권력 앞에 맞서는 용기도 필요했다.


이 같은 조선시대 사관의 기록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궤』 등 귀중한 기록유산을 남겨 주었다. 최고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책임의식으로 무장한 사관들의 직업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무적핑크
서울대학교 디자인과 졸업. 2009년부터 2014년에 걸쳐 「실질객관동화」, 「실질객관영화」, 「경운기를 탄 왕님자」을 연재했다. 2014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린 「조선왕조실톡」이 큰 관심과 주목을 받아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며 톡 형식과 역사 장르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그 인기로 YLAB과 함께 웹툰업계 최초 레이블 ‘핑크잼’을 세워 저스툰에 「세계사톡」을, 네이버웹툰에 「삼국지톡」을 연재하며 톡 시리즈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00.『태종공정대왕실록(太宗恭定大王實錄)』 또는 『태종실록(太宗實錄』은 조선 태종 원년인 1401년 부터 태종 18년(1418) 8월 10일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조선왕조실록』의 한 부분을 이루며 편년체로 쓰여 있다. 태종이 승하한 후, 『정종실록』과 함께 세종 6년(1424) 3월부터 편찬 하기 시작해 세종 13년(1431) 음력 3월 17일 『태종실록』을 완성했다. 세종 24년(1442)에 『정종실록』과 함께 개수했으며, 선조 37년(1604) 실록을 새로 내면서 오자를 교정했다.


정리. 편집실 일러스트. 무적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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