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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의 성문
작성일
2014-12-05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399

한국의 성문 성문城門이란
성문은 성의 안팎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사람이나 동물, 각종 물자가 출입하기 위해 시설한 시설물이다. 또 유사시에

는 적의 공격을 막고, 전세가 유리할 때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통로로 사용했다. 성문은 둘레에 옹성(성문을 지키기 

위해 성문 밖에 쌓은 작은 성)이나 적대(좌우에 높은 대를 쌓고 군사를 배치해 사람을 감시하거나 적을 막기 위해 

쌓은 시설)를 설치하기도 했고, 외관을 크고 높게 해 적으로 하여금 공격 의욕을 꺾고자 했다.
우리나라의 성문은 중국처럼 동·서·남·북의 절대적인 방위를 취하고 있지는 않지만 입지여건에 따라 사면(四面)

에 성문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규모가 큰 성의 경우 더 많은 성문을 두기도 했다. 시기적으로 보면 삼국시대의 

성문은 고구려 용강대묘벽화(龍岡大墓壁畵, 북한 남포시 소재)의 성곽도 (城郭圖)에 보이는 중층의 누각과 그 좌우 

단층의 누각을 통해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보다 후대인 남한산성의 경우, 지형 여건상 성문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경우에는 암문(성벽에 누(樓) 없이 만든 문)을 쌓아 출입기능을 담당하도록 한 것이 특색이다.
조선시대의 성곽은 크게 도성과 읍성, 산성으로 구분해볼 수 있는데, 한양도성의 경우 4대문과 4소문을 갖추었으나 

현재는 3대문과 3소문이 전해지고 있다. 수원부는 4대문이 현존하며 2개의 문루가 원형으로 남아있다.
서산 해미읍성에는 동·남·서에 문루(門樓)가 있는데, 남문은 원형으로 남아 있고 동문과 서문은 1974년에 복원됐

다. 읍성의 문루형식은 도성에 비해 대개 그 규모가 작으나 산성보다는 다소 규모가 큰 편이다. 성곽 길이에는 딱히 

규제가 없었지만 조선시대 행정체계를 놓고 볼 때, 군·현의 성곽 보다는 목의 성곽이, 목의 성곽 보다는 부의 성곽 

규모가 커서, 상위 행정체계의 읍성 규모가 하위 읍성보다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은 도성인 한성부의 방위체제를 담당하기 위한 외곽 산성으로 축조됐다. 남한산성은 대표적인 산성으로, 한

성부로 들어오는 적을 미리 막을 수 있는 천연 요새이었으며, 1624년 축성 당시에는 대문 4개, 암문 16개 등 20개의 

성문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우리나라 성문은 성 내외를 연결해 주는 통로 형태에 따라 평문식(平門式)과 현문식(懸門式)으로 구분된다. 

평문식은 다시 개거식(開据式, 성문이 돌이 아닌 나무로 만들어져 개방될 수 있도록 한 형태, 고창읍성 북문 등)·

평거식(平据式, 성문 윗부분을 장대석이나 판석과 같이 평평한 돌을 놓아 만든 형태, 강화산성 북문 등)·홍예식(虹

霓式, 성문 윗부분을 둥근 무지개와 같게 만든 형태, 수원 팔달문, 서울 숭례문 등) 등으로 구분된다. 한편 현문식

은 성문의 설치 위치가 성벽 몸체의 일정 높이에서 시작하여 사다리를 통해야만 출입이 가능한 형식으로, 경기도 포

천시 반월성 동문지, 충북 보은군 삼년산성 북문 외에 최근 조사된 경북 문경시 고모산성의 서문지·남문지 등에서 

확인된다.

 

 

충남 홍성군에 있는 성으로,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

분이 남아있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홍주성의 둘레와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고을의 읍성을 새로운 격식에 맞추어 쌓게 되었던 조선 세종 때에 처음 쌓기시작해 1451년(

문종 1)에 새로 고쳐 쌓았다. 당시 성의 규모는 둘레가 4,856척(약 1.5㎞), 높이는 11척(약 3.3m)이며 문은 4개가 

있었고, 여장·적대 등의 여러 시설이 설치되었으며 안에는 우물 2개가 있었다고 한다.
동문인 조양문(朝陽門)은 1975년 복원한 것으로,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 등이 이 

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덕산으로 격퇴시킨 일이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읍성으로 이어졌으며, 조선 초기 새로운 형식에 의해 쌓은 성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01. 강화 광성보(사적 제227호) ⓒ문화재청 02. 남한산성(사적 제57호) 북문 ⓒ문화재청

03. 수원 팔달문(보물 제402호) ⓒ문화재청 04. 서산 해미읍성(사적 제116호) 진남문 ⓒ

문화재청

 

1. 현판(懸板) : 글씨를 새겨 방이나 건물의 문 위 또는 벽에 다는 액자들(편액)

2. 문루(門樓) : 성문 위에 사방을 두루 살피는 기능을 한 누각 형태의 건물

3. 여장(女牆) : 성 위에 ‘凸’ 자 모양을 연속해서 쌓은 담

4. 성돌 : 성곽을 이루고 있는 돌

5. 홍예석(虹霓石) : 홍예문이나 홍예다리 등을 트는 데 쓰는 쐐기 모양의 돌

6. 무사석(武沙石) : 홍예석 옆에 층층이 쌓는 네모반듯한 돌

 

감수 조상순(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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