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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옛날을 생각하며 회포(懷抱)를 적다
작성일
2022-10-28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89

옛날을 생각하며 회포(懷抱)를 적다 억석년회천만 현판(憶昔年懷千萬 懸板) 00.억석년회천만 현판(憶昔年懷千萬 懸板), 1691년, 나무, 34×73cm

영조(英祖, 재위 1724~1776)가 1774년 3월 21일 왕세손[훗날 정조(正祖, 재위 1776~1800)]과 함께 궁궐 안 여러곳을 돌아보고 지은 글을 새긴 현판이다. 81세였던 영조는 왕세손을 데리고 경봉각(敬奉閣: 중국 명나라 황제의 칙서를 보관하던 경희궁 건물)을 참배한 후 홍문관(弘文館: 왕의 자문 기관), 춘방(春坊: 세자 교육 담당 기관으로 세자시강원이라고도 함), 승정원(承政院: 왕의 비서 기관) 등 세 곳을 돌아보며 한 일이 옛날에 행해졌던 일과 일치하는 것을 뜻밖이라 생각하며 다음 날 글을 남겼다.


영조는 홍문관에서 『시경(詩經)』의 풍천장(風泉章)을 강론하고 춘방에서는 왕세손에게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읽게 했는데, 이는 문종(文宗, 재위 1450~1452)이 당시의 집현전에서 밤낮으로 학문에 몰두하던 것을 본받고자한 것이다. 영조는 자신이 왕세손과 함께 행한 세 가지 일 즉, 할아버지와 손자가 경봉각을 참배한 일, 승정원과 춘방을 찾아간 일, 홍문관과 춘방에 가서 강독한 일이 뜻깊다며 감회를 적었다. 그리고 중국 고대 요(堯) 임금이 강구(康衢: 태평성대의 세상)를 노닌 것처럼 영조가 궁궐을 노닐고 있는 일, 한나라 광무제(光武帝, 재위 25~57)가 1년동안 남양 지역에 부역을 면해 준 것과 같이 영조가 삼원(三院) 즉, 세 관서(官署)의 아전과 하인에게 1년간 부역을 면제해 준 일 모두 지난날에 행해졌던 일과 우연히 일치하니 그 개요를 기록해 후손에게 보이고자 했다.


이에 영조는 이 글을 현판으로 만들어 후대에 전하도록 했는데 승정원 호방승지(戶房承旨) 이재간(李在簡)에게 글씨를 써 삼원에 걸게 명했다. 또 한 건은 첩(帖)으로 만들어 가져오게 했다. 현판 뒷면에는 ‘츈방 셔남’이라 보이는 한글 묵서가 남아 있는데, 춘방 곧 세자시강원의 서남쪽에 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궁중 현판은 새겨진 의미를 널리 알리고 후대까지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궁궐 건축물의 안팎에 걸었음을 알 수 있다.




글. 임지윤(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 연구사)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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