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근대화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황포돛배
작성일
2017-05-08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959

근대화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황포돛배 - 미국 여류화가 릴리안 밀러 황포돛배는 오랜 세월 동안 한강과 대동강을 오르내리며 농산물을 운반하던 중요한 운송수단이었다. 바람을 따라 황포를 펄럭이며 강을 오가는 황포돛배는 근대에도 같은 역할을 수행했고, 우리나라를 방문한 서양 여행가와 화가들은 이런 전통적 운송법을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한강의 황포돛배> 다색목판, 46 x 23cm, 1920년

한강의 운송수단, 황포돛배

새벽 물안개를 가르며 나루터에 도착하였을 황포돛배 위에서 상인 두 명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미국의 여류화가 릴리안 밀러(Lilian Miller, 1895~1943)가 1920년에 제작한 다색목판화<한강의 황포돛배> 속 풍경이다. 조선 후기 기록을 보면 한강을 오르내리던 황포돛배의 수는 하루 평균 100척이었고, 배 한 척에 대략 30가마니의 쌀이나 소금을 실었다고 한다. 밀러의 작품에 보이는 자루 수도 그쯤 되어 보이니 일제강점기에 황포돛배로 운반하던 물건의 목록도 조선시대와 비슷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밀러는 수령이 제법 되어 보이는 소나무의 껍질과 돛포, 짙푸른 솔잎과 강물의 빛이 조화를 이루는 이 작품의 제목을 <한강의 황포돛배>라고 함으로써 배경이 한강임을 확실하게 밝혔다. 또한 작업노트에 ‘이 나루터 근처에 연꽃이 많은 연못이 있다’라고 기록해 양수리 나루터의 풍경임을 짐작하게 한다. 양수리(두물머리)에는 팔당댐이 완공되기 전까지 나루터가 존재했고, 근처에 연꽃 연못이 있었다. 양수리 나루터 자리에서 강을 바라보면 그림에서 보이는 것 같은 작은 섬(족자섬)이 보인다.

밀러는 1920년부터 1932년까지 서울주재 미국 영사로 근무했던 랜스포드 밀러(Ransford Miller)의 딸로 서울에 거주하면서 우리나라의 풍광과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목판화에 담았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근무할 때 일본 화가들로부터 목판화 교육을 받았고, 미국 바사(Vassar) 대학 미술학과에서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받은 후 서울로 돌아왔다. 밀러는 금강산 마하연, 대동강의 황포돛배, 한강의 황포돛배, 한강 나루터, 혜화문, 농촌풍경, 시골 할아버지, 아주머니의 모습 등 우리나라 소재 작품을 40여 점 남겼다.

붉은 노을로 젖은 대동강의 절경

<노을 속의 황포돛배>는 일곱 척의 황포돛배가 붉은 노을 가득한 대동강 물길을 따라 유유히 내려오는 모습을 두 장의 목판을 연결해서 제작한 작품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지 돛포가 활짝 부푼 일곱 척의 배는 노을 가득한 대동강 물길을 따라 유유히 내려온다. 하늘과 강물을 뒤덮은 붉은 노을의 장엄한 모습은 주요한(1900~1979)이 대동강 노을을 바라보며 쓴 시 ‘불놀이’를 떠오르게 한다.

<노을 속의 황포돛배> 다색목판 두 쪽 연결, 36 x 76cm, 1928년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위에, 스러져가는 분홍빛 놀 … 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이라 파일날, 큰길을 물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 주요한 <불놀이> 中 -

밀러는 이 작품의 배경이 대동강이라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왼쪽 절벽에 삐져나온 두 그루의 소나무와 절벽 위 정자를 보면 대동강의 연광정임을 알 수 있다. 연광정은 예로부터 평안도 관서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던 곳으로, 부벽루와 함께 평양 감사가 연회를 열었던 누각이다. 연광정은 고려 예종 때 고시(古詩)로 이름을 날려 해동 제1인자라고 추앙받던 김황원(1045~1117)이 누각에 올라 종일토록 생각에 잠겼다가 ‘성벽을 끼고 흐르는 강물 넓고 질펀한데 강 건너 넓은 동쪽 들에는 점찍은 듯한 조그만 산 <노을 속의 황포돛배> 다색목판 두 쪽 연결, 36 x 76cm, 1928년만 아득하네’라는 글귀만 낸 채 시상이 막혀 마침내 통곡하며 내려갔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그만큼 주변 경치가 기막힌 절경이다. 밀러의 <노을 속의 황포돛배>에는 김황원이 시로서 표현한 ‘넓고 질펀한 대동강과 동쪽 들판과 조그만 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풍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시인과 화가의 감수성은 시공을 초월해 비슷하기 때문이리라.

근대화와 함께 한강과 대동강을 오가던 황포돛배는 기차와 트럭에 운송품을 빼앗겼다. 황포돛배로 한강을 오르내리던 강상(江商)과 함께 포구에서 장사를 하던 객주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릴리안 밀러는 1932년 우리나라를 떠난 후 일본, 하와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생활하다 1943년 1월 11일 눈을 감았다. 1998년 8월 19일부터 1999년 1월 3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의 퍼시픽 아시아 박물관(Pacific Asia Museum in Pasadena)에서 ‘릴리안 밀러 회고전-두 세계의 사이에서’가 개최된 바 있다.

 

글‧이충렬(소설가)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