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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신라의 조각명장 양지 스님
작성자
박윤정 연구관
게재일
2017-02-09
주관부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조회수
1818


  신라의 대표적 예술가를 꼽자면, 서예가 김생, 화가 솔거, 음악(거문고) 백결, 그리고 조각가 양지스님이 있다. 『三國遺事』 卷第四 義解 第五 <良志使錫>조는 신통력과 함께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발휘했던 신라 승려 양지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조상이나 고향은 현재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다수의 연구자들은 양지 스님이 선덕여왕 때뿐만 아니라 문무왕 때까지 경주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예술가이자 승려였다고 추정한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신라 수도 경주에는 양지라는 이름의 스님이 살았다. 조상도 고향도 알려지지 않은 한 승려가 1,30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그의 걸출한 예술 세계와 더불어 그의 작품으로 알려진 우수한 불상들 때문일 것이다. 영묘사의 장육삼존상과 천왕상 및 전탑의 기와, (사)천왕사 탑 아래 팔부신장상, 법림사의 주불삼존과 좌우 금강신상 등 약 5m 이르는 거대한 불상에서부터 20~30㎝ 정도의 작은 기와까지, 이토록 다양한 걸작이 모두 양지 스님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빗대어 ‘이탈리아에는 미켈란젤로, 신라에는 양지 스님’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니, 그 종횡무진의 예술 세계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三國遺事』 <良志使錫>조에는 양지스님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가 영묘사의 불상을 만들 때 도성 안의 남녀들이 함께 불상의 재료가 되는 진흙을 날랐다고 한다. 그때 부르던 노래가 향가로 전해지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풍요’라는 향가이다. “오다 오다 오다/슬픔 많아라/슬픔 많은 우리 무리여/공덕 닦으러 오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이후에도 경주 사람들은 방아를 찧거나 다른 일을 할 때도 줄곧 이 노래를 불러왔는데, 이 역시 양지 스님의 행적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三國遺事』의 저자 일연 스님은 양지 스님을 “스님은 재주가 온전하고 덕이 충족했으나, 큰 인물(大方)로서 하찮은 재주에 숨었던 자라고 하겠다.”라며 애석한 극찬을 하였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6~2012년까지 신라 호국사찰 사천왕사 터를 발굴하였다. 그리고 양지스님의 작품으로 알려진 녹유벽전의 여러 조각을 수습하였으며, 3종류의 벽전을 모두 복원하여 2015년 이를 기념하는 <良志使錫>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설명사진


<복원된 녹유신장벽전>


 



설명사진


<녹유벽전 출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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