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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민초 염원 품은 미황사 거북과 게 초석
작성자
조상순 연구관
게재일
2017-01-12
주관부서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
조회수
1126


  종교는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고 사람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소통의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종교의 지도자들은 예배나 법회와 같은 모임과 다양한 강론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들을 이어주고,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염원과 문제들에 대해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하여 왔다. 이러한 모습들은 종종 종교 건축물의 벽화나 장식들에 표현된다.


  전라남도 해남에 위치한 미황사(美黃寺)는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인 749년에 건립된 사찰이다. 기록에 의하면 우전국(于闐國)에서 보낸 돌로 된 배가 이 곳 바닷가에 닿아, 사람들이 배에 실려 있던 법화경과 금으로 된 사람 등을 땅에 내려놓았는데, 그 날 밤 의조화상(義照和尙)은 꿈에서 소가 누웠다가 일어나는 곳에 사찰을 지어달라는 우전국의 임금의 부탁을 받게 된다. 그래서 미황사의 ‘미(美)’는 소의 울음소리를 취하고, ‘황(黃)’은 금빛을 취한 것이라고 전한다. 미황사의 중심전각은 대웅보전으로, 이 건물의 초석에는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조각물이 있는데, 연꽃과 거북, 그리고 게가 새겨져 있다. 수 백 년의 바닷바람을 견뎌낸 게의 길쭉한 두 눈은 부처를 모신 대웅보전 내부를 향하고 있고, 여덟 개의 다리는 선명하다. 거북 또한 부처를 향하여 예불을 드리듯 두 앞발을 뻗고 있다. 이러한 문양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승탑에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부처를 모신 종교건축이니 연화문(蓮華文)이 등장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거북과 게는 왜 연꽃잎을 올라타고 있는 것일까.


  미황사가 위치한 곳은 ‘토말(土末)’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사자봉의 남쪽으로 바다를 면하고 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바다와 관련된 업을 하고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이해가 된다. 곧 부처님의 자비를 받아, 바다로부터 풍요로운 이득을 얻고, 거친 바다로부터 가족의 안위를 지키고자 하는 일반 서민들의 염원을 불교가 받아들여 조화를 이루고자 한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불교를 받아들이게 한 것이 아니라, 불교가 사람들을 포용함으로써 사람들과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하나의 사회 속에서 서로 다른 주장과 가치들이 대립하는 요즘, 새삼 수 백 년 전 연화문 위에 일반 백성들의 뜻을 새기도록 한 스님의 혜안이 그리워진다.


  한편 미황사는 정유재란 때인 1597년 모든 건물이 소실된 후 재건되는데, 대웅보전과 응진당은 17세기 중반의 건축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1727년에 그려진 괘불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미황사가 위치한 달마산 일원은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뒤에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절벽의 풍광은 수많은 등산객들이 으뜸으로 꼽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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