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페이지 경로
기능버튼모음
본문

문화재 기고

제목
조선의 역사 살아 숨쉬는 남산
작성자
최인화 연구관
게재일
2017-04-20
주관부서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조회수
2040

 


  벚꽃이 한창 핀 4월 중순, 남산에 올랐다. 장충 체육관에서 출발하여 남산N타워에 올라갔다가, 벚꽃 길을 따라 남산도서관을 지나 숭례문까지 걸어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다리가 꽤 아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남산을 걸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조선시대 궁궐과 도성 연구자인 나에게 남산은 예쁜 벚꽃 그 이상으로 아주 특별하다. 남산은 한양도성의 남주작(南朱雀)에 해당하는 산이자, 조선의 역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남산을 얘기하려면 숭례문이 빠질 수 없다.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 이후 복구가 한참일 때, 나는 숭례문에서 발굴조사를 담당하였다. 그 때 당시 복구계획에는 숭례문뿐 아니라 이에 연결된 성벽까지 포함되어 있어, 그 흔적을 찾아 열심히 발굴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비록 남산으로 올라가는 방향에는 성벽을 쌓기 위해 다진 층만 확인되었지만, 그 때 당시 사진이나 기록 등을 참고하여 현재 숭례문 옆으로 일부 성벽이 복원되어 있다.


  같이 간 친구는 쭉 이어지지 않고 끊겨있는 성벽이 어색하다 한다.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한양도성의 성벽은 숭례문에서 시작하여 마치 만리장성처럼 남산을 타고 올라가 도성 전체를 하나의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는 게 정상이기 때문이다. 한양도성은 전체 18.6km나 되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 유지되었던 도성이었다고 알려주니, 그제야 놀랍다고 한다. 남산에 가면 이런 한양도성의 성벽을 힐튼호텔 앞이나 남산타워 근처, 국립극장 인근에서 장충체육관에 이르는 구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산 꼭대기에는 많은 이들의 약속 장소인 ‘팔각정’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자리에 국가의 중요한 제사를 지내던 ‘국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남산은 원래 목멱산이라고도 했는데, 태조는 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모시고 일반인의 제사를 금하였다 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남산 봉수가 위치한다. 남산 봉수는 전국의 봉수가 집결하는 종점에 해당하는 중요한 봉수로, 현재의 봉수는 복원된 것이다. 총 5개의 봉수에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를 피워 적의 침입을 알렸다고 한다. 하나는 평안, 두 개는 적의 출현, 세 개는 적군이 국경에 접근했음을, 네 개는 적이 국경을 침범, 다섯 개는 교전이 일어났음을 알려줬다고 한다.


  이처럼 남산은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여러 역사를 품고 있다. 비록 많은 부분이 남아 있진 않지만, 다음에 남산에 가면 남산 타워만 들리지 말고 남아있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설명사진


<남산의 한양도성(힐튼호텔 앞 회현자락)>

첨부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한승훈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