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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연 속에서 자연과 벗해 살았던 조상의 숨결
작성일
2019-07-30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933

자연 속에서 자연과 벗해 살았던 조상의 숨결 목조문화재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생활하기 편한 아파트에 살고 빌딩에서 일을 한다. 잘 부식되지 않고 관리가 쉬운 재료로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 머물거나 무언가를 보관한다. 사람이나 물건을 수용하기 위한 구조물, ‘건축물’을 지을 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실용적이고 미적인 부분만을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필요하면 주변의 산을 깎고 물길을 막는 등 자연환경을 바꾸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옛 사람들은 사람들이 머물기 위한 집을 짓든 궁궐이나 향교·서원을 짓든, 또는 사리를 보관하는 탑을 짓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한 조상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목조문화재에 대해 알아보자. 01. 국보 제224호 경복궁 경회루는 손님을 맞거나 잔치를 여는 곳 이었다. ⓒ이미지투데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물과 가장 큰 누각

왕이 살던 공간, ‘궁궐’을 알면 그 시대의 사상과 문화, 사회상, 과학기술을 가늠할 수 있다.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왕이 사는 곳인 만큼 나라의 우수한 인재와 과학기술, 건축기술을 총동원해 지었기 때문이다.

조선 건국과 함께 제일 처음 지어진 사적 제117호 경복궁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궁궐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1335~1408)는 즉위 후 궁궐을 어디에 지을지 고민하다 결국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1395년(태조 4) 경복궁을 새로 지었다. 처음에는 390여칸 으로 근정전과 강녕전, 연생전 등 주요 건물들만 있었으나 경회루도 다시 짓고 차츰 건물 수를 늘렸다. 그러다 임진왜란(1592~1598) 때 불이 나는 바람에 경복궁은 폐허가 되었다. 그러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고쳐지어 다시 궁궐로 썼는데, 이때 다시 지은 경복궁은7,000칸이 넘었다고 한다.


02. 국보 제223호 경복궁 근정전 내부 옥좌. 근정전은 왕이 정치활동을 하는 근엄한 공간이다. ⓒ이미지투데이


국보 제223호 근정전과 경회루는 경복궁의 중심 건물이라 할 수 있다. 근정전은 왕이 정치활동을 하는 근엄한 공간이고, 국보 제224호 경회루는 손님을 맞거나 잔치를 여는 곳이었다. 근정전은 앞에서 보면 다섯 칸, 옆에서도 다섯 칸인데 나무로 지은 우리나라 건축물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또한 근정전은 바닥에 이중으로 단을 만들어 높이 지었다. 이것을 ‘기단’이라고 하는데, 기단의 난간이 꺾이는 곳마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수호신과 십이지신상이 있다.


근정전이 엄숙하고 공식적인 건물이라면 경회루는 그보다 유쾌하고 편안한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금님이 머리를 식히거나 손님을 맞이해서 술도 마시며 노는 곳이었다. 경회루는 연못을 파고 그 안에 만든 건물 이라 주위가 확 트여 있다. 왕은 사방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쐬며 시를 짓거나 활을 쏘며 풍류를 즐겼다. 이곳에 서면 인왕산, 북악산, 남산이 한눈에 보인다. 원래 경회루는 경복궁을 지을 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는데, 1492년(태종 12)에 연못을 넓히고 건물도 다시 크게 지었다. 경회루는 단일 평면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누각이다.


03. 국보 제55호 보은 법주사 팔상전은 밖에서 보면 5층이지만 실제로는 1층에만 들어갈 수 있고 건물 안에서 보면 5층까지 뻥 뚫려있는 구조이다. ⓒ이미지투데이 04. 보물 제917호 배자예부운략목판. 시나 운문을 지을 적에 운(韻)을 찾기 위하여 만들어진 기초 사전이다. ⓒ문화재청 05. 보물 제1895호 퇴계선생문집 목판은 판본학적으로 매우 귀중한 문화재일 뿐 아니라, 서지학연구와 조선시대 중기의 목판인쇄문화연구 등에도 크게 활용될 수 있는 자료이다. ⓒ문화재청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목조건축물

현재는 거의 석탑만 남아 있지만, 예전에는 목탑도 많이 만들었다.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신라), 부여 군수리 사지의 목탑(백제), 평양 청암리 사지의 목탑(고구려) 등 시대마다 목탑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탑’이란 말은 원래 고대 인도에서 ‘부처님의 유골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이라는 뜻의 ‘스투파’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뒤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 대신 불상이나 불경 등을 봉안한 탑도 지었다.


속리산 법주사에는 우리나라 목탑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국보 제55호 법주사 팔상전이 있다. 팔상전은 기둥에 창방, 평방, 공포 등 목조건축물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밖에서 보면 5층이지만 실제로는 1층에만 들어갈 수 있고 건물 안에서 보면 5층까지 뻥 뚫려 있는 구조이다. 천장이 높은 집이다.


한편 목조탑과 견주어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보면 각 면마다 작은 문이 달린 것을 볼 수 있다.

문 안에서 서로 통한다. 기둥 위에 판판한 돌을 겹쳐 얹어 평방과 창방의 흉내를 냈다. 기단은 처마 선 안에 있는 낮은 단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모든 부분에서 목조탑을 흉내 내려고 애쓴 것이 보인다. 미륵사지 석탑에 비해 국보 제9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목조탑의 모습을 떠나 석탑의 고유 양식을 완성한 유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목탑의 양식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좁고 얕은 단층 기단, 각 층의 기둥에 보이는 배흘림 양식, 지붕돌받침에 남아 있는 창방과 평방의 흔적들에서 목탑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나름대로 정돈하려고 애쓴 모습을 볼 수 있다.



유교문화와 학문적 성과를 새긴 나무판

목조문화재에는 건축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글이나 문양을 찍어내기 위해 이들을 뒤집어 새긴 나무판, 즉목판이 대표적이다. 예로부터 유교문화가 융성한 경북의 안동지역에서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책으로 펴내기 위해 만든 목판들이 수백 년 동안 보존되어 전해오고 있다. 이들 목판을 ‘유교책판’ 이라 부른다.


유교책판은 후손과 후학들에 의해 문중 재실이나 종택, 서원의 장판각 등에 보관되어왔는데, 한국국학진흥원이 2002년부터 10여 년 동안 기탁받아 한자리에 모았다. 이렇게 모인 305개 문중의 책판 718종 6만 4,226장으로, 대부분 유학자의 문집, 성리학 서적, 족보 및 연보, 예학서, 역사서, 훈몽서, 지리서 등이다. 이 가운데에는 보물 제1895호 퇴계선생문집목판, 보물 제917호 배자예부운략목판 등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책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지금도 인출이 가능할 정도로 책판은 본연의 우수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개인의 학문적 성과인 문집을 간행할 목적으로 만든 책판이지만, 유교책판은 개인 기록물을 인쇄하는 과정에서 나온 단순한 산물이 아니다. 책판은 사후 ‘공론(公 論)’이라는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야만 제작되었다. 목판 제작과정을 관장하고 막대한 비용을 부담한 것도 공론 참여자들이었다. 국가적 차원이나 영리 목적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공동체 출판물’이라는 점에서 유교책판의 가치는 남다르다. 서적 간행이 끝난 뒤 책판은 영구 보존되었다.


 서원에서는 책판의 보존을 위해 장판각이라는 별도의 건물을 지었으며, 이곳에 보관된 책판은 끝까지 변치 않는 학문의 상징으로 여겼다. 이처럼 유교책판은 학문을 통해 유교적 이상사회를 이루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에 대한 열망을 품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스스로 일궈낸 지성의 보고이다.


글. 성혜경



목조문화재와 관련된 직업 문화재보존과학자 Q&A 정소영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복원기술연구실 학예 연구관

● 목조문화재와 관련된 직업이 궁금한 당신을 위한 미니 인터뷰


Q. 문화재보존과학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A. 문화재보존과학자(문화재보존가)는 문화재 재질별 상태를 진단하고 조사, 분석하는 것부터 직접 보존처리하는 것까지 굉장히 다양한 일을 담당합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목조문화재 생물피해 상태를 조사하고 보존을 위해 적절한 방제대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목조문화재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흰개미 피해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육안이나 장비를 이용한 조사 이외에도 흰개미 탐지견을 활용하여 조사하고 있습니다.


Q. 문화재보존과학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면 말씀 해주세요.

A. 연구소에 입사하기 전까지 저는 문화재 관련 분야의 업무는 발굴이나 역사학 전공자들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구직을 하는 중에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목조문화재를 대상으로 생물피해를 조사하고 방제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을 알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Q. 문화재보존과학자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과정을 거치셨나요?

A. 문화재보존과학자(문화재보존가)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재보존과학 또는 물리, 화학, 생물, 환경공학, 재료공학 등 이공계열의 학과를 졸업해야 합니다. 저는 생물학과를 졸업한 이후 문화재청의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Q. 문화재보존과학자라는 직업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A. 담당하는 일마다 장점이나 힘든 점은 다 다를 것입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목조문화재의 생물피해 방제 연구를 예로 들자면 장점은 국내에 있는 다양한 목조문화재를 눈으로 직접 보고 조사할 기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대신 전국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를 조사하기 위해 현지조사 출장이 많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어려워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이 힘든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목조문화재에 대한 흰개미 피해 조사에 흰개미 탐지견을 활용한 것이 2007년부터입니다. 벌써 10년도 넘었는데, 2007년부터 조사에 참여했던 1세대 탐지견들(보람, 보배)이 2016년 현업에서 은퇴를 했습니다. 그간의 공로를 인정해서 문화재청과 탐지견센터에서 탐지견 은퇴식을 해줬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요?

A. 문화재에는 흰개미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물종들이 많은 피해를 주고 있는데, 지금 진행하고 있는 목조문화재에 대한 생물피해 진단과 방제방법에 대한 연구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생물피해는 한번 발생하면 발생하기 전의 상태로 되돌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목조문화재 관리자나 소유자들이 생물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일상관리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Q. 문화재보존과학자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세요?

A.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문화재에 대해서도, 문화재 보존과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보면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고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문화재와 보존과학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분 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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