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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사명대사의 금란가사와 장삼
작성자
안보연 연구사
게재일
2017-05-11
주관부서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조회수
1962


  겨울에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있다면, 초여름에는 석가탄신일이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대롱대롱 매달린 연등이 초여름과 함께 석가탄신일을 알려준다. 그래서 오늘은 조선시대 유명한 승려 사명대사의 가사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1979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된 사명대사(四溟大師,1544∼1610)의 금란가사와 장삼은 사명대사가 나라를 구한 공을 인정받아 선조가 하사하였다고 전한다. 가사는 승려들이 입는 법의(法衣)인데, 장삼을 입고 그 위에 왼쪽 어깨에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던 옷이다.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될 당시부터 금란가사는 원래의 색을 잃고 가사의 한 가운데가 완전히 두 동강으로 분리되어 본래의 모습을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원래 가사(袈裟)는 누더기 옷의 칙칙한 색깔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스크리트어 카사야(Kasaya)를 음차하여 가사라고 일컫는다. 카사야는 부정색(不正色), 괴색(壞色)이라는 뜻으로 색이 없는 것을 말한다. 어쨌든 가사는 ‘욕심이 생기지 않도록(화폐가치가 없는)’ 낡은 색의 천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드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세로의 한 줄을 조(條)라고 부르며 승려의 품계에 따라 9, 11, 13, 15, 17, 19, 21, 23, 25조 등이 있다.


  또한 가사는 바람구멍, 부처가 다니는 길이라고 하는 통문(通門)을 둔다. 앞에서 보면 빠진 데 없이 바느질하였는데, 뒷면을 보면 1㎝ 미만의 바느질하지 않은 구멍이 숨어있다. 살짝 들쳐보아야만 알 수 있다. 한쪽 통문에 콩알을 넣어 사방으로 굴려 가사의 모든 통문을 지날 수 있도록 막힘이 없어야 한다. 25조 가사의 경우 많게는 통문은 332개나 된다.


  사명대사의 금란가사는 최상급인 25조 홑가사이며, 퇴색하여 일부 흔적만 남아 있지만 귀한 홍색으로 염색한 여덟 가지 보배로운 문양의 비단(八寶紋緞)으로 만들었다. 크기만 해도 가로 270㎝, 세로 83㎝이다. 1984년에 습식클리닝 등 보존처리를 한 적이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찢어지고 헤진 부분이 많아 30㎝ 남짓한 작은 유물상자에서 꺼내기조차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두 조각으로 분리된 사명대사의 금란가사를 원래의 모습대로 되돌리기 위한 보존처리가 필요했다.


  2014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기본적인 세척 등의 보존처리를 마치고, 분리된 주폭(主幅)을 이어 형태를 복원하였다. 가사의 형태 복원만 대략 수개월이 걸렸으며, 유물의 바느질법 그대로 진행되었다. 유물의 구성법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조각을 잇거나 통문을 두기 위해 철저한 계산과 꼼꼼한 바느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문은 바느질 하지 않고 가장자리(襴)는 무려 7땀 상침을 둘렀다. 사명대사의 금란가사는 보강천(유물을 지지해주는 받침 직물) 위에 얹혀 헤진 부분을 고정시켰으며, 결실된 부분은 원래의 형태를 가늠할 수 있도록 보존처리 완료하였다. 가사의 밑받침 옷인 장삼(長衫) 역시 깃의 한가운데가 없는 상태였다. 세척 후에 깃과 양쪽 무를 복원하였다. 사명대사 장삼은 염색하지 않은 면직물로 만들어 졌다.


  유물은 보존처리 완료 후 원 소장처인 밀양 표충사로 인계되었다. 올해는 특별전 계획이 없어 일반인에게 공개되지는 못하였지만, 돌아오는 석가탄신일에는 전시소식이 있기를 기다려본다. 불자는 아니더라도, 한 번 쯤은 가사의 한 조각 한 조각에 담긴 정성과 고행, 무소유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설명사진


<국가민속문화재 제29호 사명대사의 금란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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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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