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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태곳적 숨결 따라 설화와 자연의 길을 걷다 제주(濟州)
작성일
2020-07-30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963

태곳적 숨결 따라 설화와 자연의 길을 걷다 제주 濟州 탄생부터 신비로운 섬. 그 신비의 열쇠를 찾아 제주를 찾았다. 화산과 용암이 만든 수많은 오름과 동굴들. 그 속에 감춰진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지자 세계인이 주목했고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제주는 기억한다. 뜨거웠던 화산의 숨결, 생명을 향한 지극한 구애 섞인 숨결. 그리고 그 위에 켜켜이 쌓인 역사의 숨결을. 01.명승 제77호 제주 서귀포 산방산. 산방산은 평탄한 지형 위에 우뚝 솟은 타원형의 돔형(dome) 화산으로 한라산, 성산일출봉과 함께 제주의 3대 산으로 꼽히며, 신비스런 분위기의 영산이다. 옥황상제가 한라산의 봉우리를 뽑아 던져 만들었다는 전설 등이 전해진다.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문화재청은 올해부터 진행하는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많은 사람들이 문화유산을 방문할 수 있도록 홍보한다.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에서는 우리의 대표 문화유산을 지역과 특색에 따라 묶어낸 일곱 가지의 길(문화유산 방문코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번 호에서는 일곱 가지 중 네 번째 길인 ‘제주 설화와 자연의 길’로 안내하고자 한다

신화의 섬 다운 진면목,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제주도 서남부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종처럼 봉긋한 산이 보인다. 워낙 모양이 특이해서인지 사람들은 이 산에 그럴싸한 이야기를 덧입혔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다. 전설의 내용은 이렇다. 한라산에서 어느 포수가 백록(白鹿)을 사냥하려고 활을 쏘았는데 백록은 잡지 못하고 실수로 애꿎은 옥황상제의 배를 맞히고 말았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한라산 꼭대기를 뽑아 서쪽으로 던졌다.


이때 한라산 정상은 움푹 파인 백록담이 되었고 내던진 산봉우리는 명승 제77호인 제주 서귀포 산방산(濟州 西歸浦 山房山)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용암이 지표로 분출해 화구 위로 솟아올라, 종을 엎어놓은 모양으로 형성된 화산, 즉 종상화산체이다. 주변이 평지여서 어디에서나 조망이 가능한 산방산은 높이가 340m에 이를 정도로 위세 등등하다.


산방이란 산에 굴이 있다는 뜻으로 산 중턱에 불상이 안치된 해식동굴이 있어 산방굴사(山房窟寺)라 부른다. 이곳은 제주의 경치 좋은 10곳을 일컫는 영주십경(瀛州十景) 중 제8경에 해당한다. 산방산 트레킹은 산방굴사까지 오를 수 있다. 들머리부터 산방굴사까지 돌계단이 놓여 있어 안전한 편이지만 생각보다 높은 곳이어서 꽤 길게 느껴진다.


산방굴사 앞에 서면 쪽빛 바다를 배경으로 용의 머리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형상을 닮은 용머리해안과 하멜상선 전시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용머리해안 왼쪽엔 조선시대 봉수대 같은 역할을 한 산방연대가 있다. 산방굴사 주변 암벽에는 지네발란, 섬회양목 등 희귀 암벽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굴 주변과 굴 천장 암벽에 흥건한 물은 산방산 암벽을 지키는 여신 산방덕이가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고 한다.


산방산을 내려와 천연기념물 제526호인 제주 사계리 용머리해안으로 향한다. 용머리해안은 첫인상부터 매우 강렬하다. 이름처럼 용이 꿈틀거리는 형국이다. 헤아릴 수 없이 기나긴 세월 동안 층층이 쌓인 사암층 암벽은 파도에 깎여 기묘한 절벽을 이루고 있다. 실로 태곳적 풍경이다.


또 절벽 곳곳엔 비밀스러운 해식동굴이 여럿 있다. 켜켜이 쌓은 듯 가로로 난 결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이 떠오른다. 깎아지른 절벽 앞으로 평탄한 파식대가 펼쳐져 탐방로로 쓰기에 제격이다. 그 탐방로를 따라 용머리해안 전체를 돌아보는 데 30분 정도 걸린다. 너럭바위 주변에는 해녀들이 좌판을 깔고 해산물을 판매한다. 금방 물질한 해산물에서는 ‘날것’의 진미가 느껴진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을 뒤로하고 발길이 닿는 곳은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423호인 마라도 천연보호구역, 육각기둥 모양의 절벽이 넓게 펼쳐져 있고, 파도가 높은 날에는 더욱 웅장한 천연기념물 제443호 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바다와 맞닿아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명승 제78호 제주 서귀포 쇠소깍이다.


02.용머리해안 들머리에서 바라본 산방산 03.삼나무가 군락을 이룬 거문오름 들머리

신비에 쌓인 신령한 숲, 거문오름

쇠소깍 다음 코스는 설화와 자연의 길 핵심 구간인 거문오름이다. ‘거문’은 ‘신(神)’을 뜻하는 ‘검’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숲이 우거져 검게 보여 ‘검은오름’으로 부르다가 거문오름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어느 것이 맞든 중요한 것은 매우 울창해 신성시할 만한 숲이라는 점이다. 거문오름은 해발 456m, 둘레는 4,551m에 이른다.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이 월정리까지 흘러간 것으로 보는데 이때 만들어진 동굴들을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상류동굴군이라하며 천연기념물 제552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제주 창조 설화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이 직접 치마에 흙을 담아 날라서 한라산을 쌓았다고 한다. 그때 치마 사이로 흙이 한 줌씩 떨어졌는데 그것이 제주 전역에 흩어져 360여개에 이르는 오름이 되었다고 한다. 거문오름은 그들 오름 가운데 규모나 지질학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두고 봤을 때 의의가 크다. 그래서 무작정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거문오름 탐방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30분 간격으로 50명씩 하루 450명, 예약자에 한해 탐방할 수 있다. 탐방예약은 당일에는 불가능하다. 희망일 전월 1일부터 선착순으로 인터넷과 전화로 가능하다. 탐방 코스는 한라산을 조망하는 정상 코스 1.8km(1시간), 분화구 내의 알오름과 곶자왈, 역사 유적지 등을 탐방하는 분화구 코스 5.5km(2시간 30분), 분화구 능선을 따라 오름 전체를 탐방하는 완주 코스 10km(3시간 30분)로 나뉜다.


탐방은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분화구 코스까지 진행되며 완주 코스는 자율 탐방이다. 운동화나 등산화가 필수이며 앞이 트인 샌들, 등산용 스틱, 양산 등은 이용할 수 없다. 세계자연유산센터 안내소에서 해설사가 탐방에 앞서 이름표를 지급하고 주의사항을 전달한다. 그러고 나서야 드디어 신령한 숲으로 갈 수 있다.


안내소를 지나면 곧바로 거문오름 입구에 이르고 이내 하늘 높이 솟아오른 삼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숲이 워낙 울창한 탓에 숲 안팎의 기온은 물론이고 습도와 명암 차이가 극명하다. 외줄기 강한 빛이 습기 가득한 삼나무숲 사이로 내리쬐면 신비롭기 그지없다. 가파른 삼나무 숲길을 10여 분 오르면 하늘이 개벽이라도 한 듯 탁 트인 정상 전망대에 도착한다.


04.산수국이 만개한 거문오름  05.거문오름의 삼나무 군락

안개가 없는 쾌청한 날에는 한라산을 또렷하게 볼 수 있지만, 습도가 높은 여름에는 안개가 가려 쉽게 모습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대신 따라비오름, 성불오름, 민오름, 백약이오름 등은 쉽게 볼 수 있어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능선을 따라 신부 부케로 전혀 손색이 없는 산수국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산수국의 안내를 받아 도착하는 곳은 알오름 전망대이다. 거문오름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으로 손꼽히는 이곳은 거문오름의 9개 봉우리 가운데 기운이 한 곳에 모인 형국으로 여의주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런 까닭에 제주에서 권세 있는 양반들의 묫자리로 유명했다.


알오름 전망대를 내려서자 드디어 분화구 안으로 들어선다. 한때 분화구 안은 용암으로 가득 찼을 터이다. 그러다 약한 틈, 북서쪽 경사면이 허물어지면서 제주 해안 월정리까지 흘러내렸다. 뜨거운 용암이 휩쓸고 간 길에는 협곡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뱅구굴로 이어지는 용암 붕괴도랑이다. 용암의 기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로 이어졌다.


이처럼 신비한 화산섬 제주의 모습과 용암동굴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다. 오는 9월 4일부터 20일까지, 17일간 제주에서 열리는 2020 세계유산축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바로 그 기회다. 세계유산축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국내 세계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전 국민이 향유하기 위해 문화재청에서 올해 처음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축전이 열리는 곳인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전 구간이 ‘자연의 숨결 따라’라는 주제로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테마길 ‘불의 숨길’로 조성된다. 또 20km에 이르는 불의 숨길 구간에는 세계유산의 가치 확산을 위한 프로그램도 선보인다.


구간 내 주요 지점 및 자연유산마을에서 함께 숨 쉬고 즐길 ‘불의 숨터’, 셀럽들과 함께하는 ‘가치 나눔 공감’, 거문오름에서 성산일출봉까지 순례하는 ‘숨길 순례단’, 비공개구간을 전문가와 함께 탐험하는 ‘특별 탐험대’, 세계자연유산 전역을 답사하는 ‘워킹투어’ 등이 그것이다.

06. 서쪽 면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07.만장굴 내부 ⓒ제주관광공사

자연과 생명 그리고 제주 역사의 ‘숨결’, 거문오름

거문오름의 분화구 내부는 태곳적 모습처럼 신령스럽다. 특히 나무와 덩굴식물, 암석이 뒤엉킨 숲이 있어 그 자체로 신비롭다. 이곳을 제주에서는 곶자왈이라 부른다. 용암이 만든 제주만의 독특한 생태계로서 자연의 숨결인 셈이다. 곶자왈에는 용암 협곡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깊은 웅덩이처럼 푹 파였는데 이끼류와 덩굴식물, 고사리류가 빈틈없이 자라고 있다. 곶자왈에는 바위틈에서 선선한 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곳도 있다. 풍혈(風穴)이라는 것인데 여름과 달리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뿜어져 생명의 숨결을 실감하게 한다. 큰 바위에 타조 알만 한 크기의 화산탄이 박힌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지구과학 교과서에서나 사진으로 봄직한 것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어 경이롭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제주 사람의 고단한 삶의 여정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숯가마 터가 대표적이다. 현무암을 둥글게 쌓아 만든 숯가마 뒤쪽에는 타원형의 숨구멍을 두어 통풍구를 만들었고, 움막을 지어 숯을 만드는 사람이 생활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구축한 갱도진지 10여 곳과 일본군 주둔지도 확인된다. 제주4·3 당시에는 양민들이 와서 숨은 피란처이기도 했다. 이처럼 거문오름에 켜켜이 쌓인 자연과 생명의 숨결은 역사의 숨결로 이어진다.


천연기념물의 향연, 성산일출봉과 김녕굴 및 만장굴 탐방

거문오름 다음 코스는 천연기념물 제420호인 성산일출봉 천연보호구역이다. 깎아지른 절벽이 바다와 맞닿은 성산일출봉은 화산이 분출해 형성된 곳으로 웅장한 성채를 보는 듯하다. 성산일출봉의 높이는 182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경사가 가팔라 단숨에 정상까지 오르기 어렵다. 급경사면인 동·남·북쪽은 바다와 면하고 평탄면인 서쪽은 본섬 제주도와 접하고 있다.


등산은 서쪽 잔디 능선을 지나 계단을 따라 시작한다. 등산 시 앞만 보기보다 지나온 풍경을 즐기는 것이 포인트이다. 파랗다 못해 검은빛이 감도는 바다와 푸른 잔디, 알록달록한 집과 돌담이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선사한다.


중턱쯤 오르면 ‘등경돌’을 마주한다. 전설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이 바느질하기 위해 불을 밝혔다고 한다. 정상에서 보는 성산일출봉의 모습은 로마의 콜로세움 같기도 하고 산성(山城) 같기도 하다. 실제로 고려시대 삼별초가 몽골의 침략에 맞서 토성을 쌓아 항쟁했고, 임진왜란 때는 제주 목사 이경록(1543~1599)이 수산진성을 이곳으로 옮기기도 했었다.


설화와 자연의 길 종착지는 천연기념물 제98호인 제주 김녕굴 및 만장굴이다. 두 동굴 모두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대표적인 동굴이다. 원래 두 동굴은 하나였다. 그러던 것이 동굴 내부를 흐르던 용암이 중간 부분에서 막히면서 분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만장굴은 ‘아주 깊다’라는 뜻처럼 총연장 약 7.4km를 자랑하는 용암동굴이다. 그 가운데 일반에게 공개되는 구간은 아쉽지만 약 1km이다. 이처럼 전체구간 중 일부만 공개된 까닭에 이번 세계유산축전을 맞아 미공개 구간을 전문가와 함께 탐험하는 특별 탐험대의 ‘만년의 비밀 속으로’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태곳적 신비가 고스란히 응축된 세계자연유산 제주, 그 깊은 숨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갈 2020 세계유산축전이 기다려진다.


여행정보 즐길 거리
# 쇠소깍 카약 체험 | 국가지정문화재인 쇠소깍은 서귀포시에 있는 자연하천으로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있다. 쇠소깍 주변 기암괴석들을 감상하여 카약을 즐길 수 있다. # 이중섭 거리 | 6·25전쟁 당시 서귀포에서 피란 생활을 하며 그림의 열정을 불태웠던 이중섭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가 머물던 집과 이중섭 미술관, 거리 풍경이 볼 만하다. # 서귀포 올레시장 | 서귀포에서 규모가 가장 큰 60년 전통의 재래시장. 다양한 제주 먹거리와 감귤류를 비롯한 신선식품, 관광 기념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문의 제주관광정보센터 064-740-6000 세계자연유산센터 064-710-8981 ‘설화와 자연의 길’ 탐방 코스 ➊산방산 ➋용머리해안 ➌마라도 ➍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➎쇠소깍 ➏거문오름 ➐성산일출봉 ➑만장굴


글,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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