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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망 한 자락 마음에 품고 다다른 곳 명승 남해 금산(南海 錦山)
작성일
2022-10-28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626

소망 한 자락 마음에 품고 다다른 곳 명승 남해 금산(南海 錦山)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 시인은 「남해 금산」이라는 시로 남해 금산의 정취를 노래했다. 시인이 그곳의 아름답다 못해 쓸쓸한 정취를 이야기했다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바람을 품고 남해 금산을 찾는다. 00.남해 금산을 찾았던 조선의 선비들은 그곳의 아름다움을 ‘금산 유람록’으로 남겼다. 특히 조선 후기 문신 유의양(柳義養)은 그가 쓴 『남해문견록(南海聞見錄)』에서 남해 금산 기록에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명승 남해 금산은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남해도의 남단에 자리해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가운데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정상에 서면 아득한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과 드넓은 바다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거기에 가을이면 오색으로 물든 단풍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이룬다.


이곳은 금산 38경(錦山 三十八景)으로도 불린다. 38경은 제일 높은 봉우리인 망대부터 원효대사, 의상대사 등이 기단을 쌓고 기도를 올렸던 삼사기단까지 각각의 장소마다 다채로운 풍광을 선사한다. 조선 태조(太祖, 재위 1392~1398)와 관련된 장소도 있다. 이성계가 기도를 드렸다는 이태조기단(李太祖祈壇)과 그 뒤편에 자리한 천계암(天鷄岩)이 그것이다.


바람을 이루고 선물한 이름, 금산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보광사(普光寺)를 짓고 수도하면서 보광산으로 불린 남해 금산이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된 데는 조선 건국이 관련되어 있다. 조선 개국 전 이성계는 전국의 유명한 기도처를 찾아다니며 왕이 되기를 기원했다. 그렇게 보광산을 찾았고 백일기도를 하던 중 설핏 잠이 든 이성계의 꿈에 신령이 찾아왔다. 신령의 도움으로 조선을 건국하게 된 이성계는 신령의 부탁대로 보광산 전체를 비단으로 두를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 한 신하가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두르는 대신 ‘비단 산’이라는 의미로 금산(錦山)이라 부르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는 답을 내었고 이성계는 크게 기뻐하며 보광산 대신 금산이라 부르도록 각 지방에 명했다. 바람을 이루게 해 준 산에 전한 선물은 ‘금산’이라는 영구불멸의 이름이었다는 설화이다.


조선 건국과 관련된 설화를 알지 못해도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곳을 찾고 싶어 한다. 정상에 강화도 보문사(普門寺), 낙산사 홍련암(洛山寺 紅蓮庵)과 더불어 우리나라 주요 기도처 중 하나인 보리암(菩提庵)이 자리해 있기 때문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11월, 누군가는 자녀가 좋은 점수를 얻길 바라는 소망 하나를 품고 남해 금산에 오를 것이다. 걸음걸음 정성을 담고 마음 한가득 바람을 새기며 남해 금산을 오를 그들처럼 지극한 바람 하나 마음에 품고 그 길에 오르고 싶은 계절이다.


신령의 도움으로 조선을 건국하게 된 이성계는 신령의 부탁대로 보광산 전체를 비단으로 두르는 대신 ‘비단 산’이라는 의미로 금산(錦山)이라 부르도록 각 지방에 명했다. 바람을 이루게 해 준 산에 전한 선물은 금산이라는 영구불멸의 이름이었다는 설화이다.




정리. 편집실 사진.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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