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기고
- 제목
- 문화재의 뒤안길(114)-세한도 (서울경제, '21.11.22)
- 작성자
- 박지영
- 게재일
- 2021-11-22
- 주관부서
- 대변인실
- 조회수
- 4200
문화재의 뒤안길(114) (서울경제, '21.11.22)
모진 겨울 이겨내듯 숭고했던 176년
추사 김정희가 그린 국본 '세한도'/ 사진제공 - 문화재청
<세한도(歲寒圖)>는 1844년에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할 때 그린 그림이다. ‘세한(歲寒)’은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는 뜻이다.
제자 이상적이 유배 중인 자신에게 굳건하게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고 그를 송백(松柏)의 지조에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그림 옆에 글을 남겨 “그대가 나를 대함에 있어 유배 전에 더 잘한 것도 없고, 그 후에 더 못한 것도 없다.”라고 하였다.
조선 말기 학문과 예술을 풍미하다가 말년에 귀양살이를 하게 된 김정희가 몸소 느낀 절조의 의미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후 <세한도>는 여러 수장가들을 거쳤고 1930년대에는 일본인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의 수장품이 되었다.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그는 김정희를 연구하며 자료를 수집했고 <세한도>를 일본으로 가져갔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던 1944년에 서예가 손재형은 후지즈카를 끈질기게 설득해 <세한도>를 고국으로 가져왔다.
곧이어 일본에서는 미군의 공습이 이어졌고 후지즈카의 연구실도 폭격을 받았다.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 같은 귀환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수장가들을 거치다가 1970년대에 안목 높은 수장가 손세기에게 전해졌다가 지난 해 그의 장남 손창근에 의해 아무 조건 없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기증되었다.
1844년에 제작된 이후 176년간 이어진 <세한도>의 긴 여정이 숭고하게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세한도>의 기증이 알려진 이후, <세한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높은 예술성뿐만 아니라 작품에 담긴 여러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를 견디고 있는 지금이 가장 혹독한 겨울인지도 모른다. <세한도>를 보며 우리 각자의 겨울을 무사히 버텨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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