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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서유견문』, ‘서양’을 번역해 ‘근대’와 소통하다.
작성일
2021-01-27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760

『서유견문』, ‘서양’을 번역해 ‘근대’와 소통하다. 1883년 11월, ‘보빙사(報聘使)’의 일원으로 미국 땅을 밟은 28살의 조선 청년이 ‘벽안(碧眼)의 스승’을 찾아 메사추세츠의 작은 마을 세일럼(Salem)으로 향했다. 상투를 자르고 양복을 갖추어 입은 그는 미국의 석학 에드워드 모스(Edward Morse)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조선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 기록된 이 청년은 『서유견문』의 저자 유길준이다. 미국의 눈부신 발전을 확인한 유길준은 ‘오랑캐’로 여겼던 바로 그곳에 남아 서양이 이룩한 근대 문명을 탐사하게 된 것이다. 『서유견문』이라는 기념비적 저술은 역전되어 버린 문명의 위상에 관한 2년여의 탐사 결과라고 할 수 있다. 01.1889년 탈고된『서유견문』의 초고 ⓒ고려대학교 박물관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기록한 ‘서양’의 모든 것

『서유견문』은 근대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집대성한 저작으로서 ‘개화(開化)’와 ‘반개(半開)’ 및 ‘미개(未開)’로 위계화된 문명의 피라미드 속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는 동시대의 서양을 71개 항목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정치체제의 구분과 정당의 조직, 조세와 화폐제도, 군대와 경찰, 교육과 학문, 종교와 의식주에 이르기까지, 『서유견문』이 기록해 놓은 ‘서양’은 체계적으로 정리된 백과사전을 방불케 한다.


‘서양’을 소개한 동시대의 저작 가운데 정치와 경제, 천문과 지리, 역사와 과학을 망라한 텍스트는 『서유견문』이 유일하다. 『서유견문』에는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뿐만 아니라 블루멘바흐(Johann Blumenbach)의 인종론과 지진에 관한 지질학자 다나(James Dana)의 학설, 그리고 ‘천하의 명장(名將)’ 몰트케(Helmuth Moltke)의 일화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교차되어 있다.

02.서양식 복장을 한 유길준 ⓒThe Peabody Essex Museum

하지만 『서유견문』은 바로 그 백과사전적 특징 때문에 완독이 어려운 저술로 손꼽힌다. 흥미진진한 여행기를 떠올리며『서유견문』을 펼쳐 든 독자라면 유길준의 ‘여행’에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서양을 여행하며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다’는 책의 이름과는 달리 『서유견문』에는 여행의 일정이 나타나지않을 뿐만 아니라 견문의 주체인 1인칭 화자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최초의 서양 견문록으로 회자되어온 『서유견문』에서 정작 견문 기록을 찾기 어렵다는 아이러니는 미국 이외의 서양을 여행할 수 없었던 유길준의 제한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길준은 갑신정변으로 미국 유학이 중단되자 귀국길에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을 여행하며 근대 문명의 정수를 목격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세계 지도 위에 복잡하게 표시된 그의 귀국 여정은 유길준이 경험한 ‘서양’의 크기를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유길준은 일본으로 향하는 증기선을 타기 위해 잠시 런던에 머물렀을 뿐 유럽 대륙에 발을 내딛지 못했다. 유길준이 경험한 ‘서양’은 사실상 미국뿐이었다.

03.유길준이 번역한 덤머 아카데미의 지리교과서 An Elementary Treatise on Physical Geography ⓒHathi Trust (www.hathitrust.org) 04.『서유견문』 에서 정치 관련 항목의 주요 참고문헌이었던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사정』ⓒ慶應義塾大学 05.『서유견문』의 또 다른 참고문헌 『만국명소도회』ⓒ神戸大学

‘번역’을 통한 근대 지식의 수용

그렇다면 『서유견문』이 보여준 방대한 지식의 세계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유길준이 자신도 가보지 못한 서양 여러 나라의 문물을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번역’의 힘이다. 총 20편으로 구성된 『서유견문』 가운데, 서론에 해당하는 1편과 2편은 자신이 유학했던 덤머 아카데미(Dummer Academy)의 지리교과서 An Elementary Treatise on Physical Geography를 번역한 것이다. 또한 3~18편의 절반가량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서양사정(西洋事情)』을 참고하였고 마지막 19~20편 역시 『만국명소도회(萬國名所圖繪)』라는 일본의 여행안내책자를 발췌한 내용이다. 향후 유길준이 참고했던 문헌 자료들이 온전히 밝혀진다면 『서유견문』에서 ‘번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다.


『서유견문』이 번역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의 독창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기 쉽다. 하지만 근대 지식의 번역은 단순한 언어의 변환이 아닌 번역자의 의도와 사상이 개입된 새로운 창작에 가깝다. 수많은 참고문헌 가운데 누구의 책을 선택해 어떠한 내용을 번역할지, 혹은 어떠한 내용을 번역에서 제외할지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번역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참고문헌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오해와 오역(誤譯)까지 고려한다면 ‘번역’은 원작자가 아닌 번역자의 사상을 담을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유길준의 번역에는 다수의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인도차이나’를 가리키는 ‘Farther India’를 ‘인도’라고 생각했고 ‘나일(Nile) 강’을 모로코의 강으로 소개했으며 이탈리아의 ‘포(Po) 강’은 스페인의 강이라고 오역했다. 전 지구를 망라한 근대지리학의 방대한 지식을 서양의 언어로 학습한다는 것은 그만큼 험난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유길준은 오역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읽었던 지리서 가운데 진입장벽이 가장 높았던 덤머 아카데미의 교과서를 참고문헌으로 선택했다. 그가 미국의 교과서를 번역한 까닭은 자신이 학습한 최신의 지리학을 통해 세계의 팽창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길준은 이름조차 생소한 지구상의 수많은 산과 강을 소개함으로써 동아시아 바깥에 더 큰 세계가 존재함을 보여주려던 것이다.


낯선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곤 한다. 유길준 역시 미국을 경험한 최초의 관찰자로서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의 드넓은 평원을 질주하였고 고층빌딩이 즐비한 뉴욕의 거리를 거닐었다. 그에겐 『서유견문』은 아닐지라도 『미유견문(美遊見聞)』을 남길 정도의 경험적 자산은 충분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보고 들은 것만으로는 ‘서양’이라는 더 넓은 세계를 알 수 없으며, ‘견문록’이라는 관찰기록 역시 서양의 실체를 보여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서양이 아시아에 비해 백 배나 부강한 이유를 찾으려던 그에게 견문록은 적절한 글쓰기의 방식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가 전달하려던 것은 체험의 범위를 넘어서는 체계적인 지식이었고 유길준은 ‘번역’을 통해 지구 반대편의 세계와 소통할 수 있었다.



글, 사진. 서명일(고려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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