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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픈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이 공존하는 경계의 땅, 철원
작성일
2014-12-05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4206

아픈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이 공존하는 경계의 땅, 철원
자유로운 철새들의 군무 아래로 한국전쟁 당시,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경계의 땅. 쓰라린 전

쟁의 흔적을 묵묵히 보듬어 주는 자연이 우리 마음에 숙제 하나를 남기는 곳. 철원의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01. 철

원여행 중 빼놓을 수 없는 장관 중 하나인 고석정. 한탄강 지류가 맞닿은 곳 아래 여러 사람이 모여 구경할 만한 강

모래밭이 있다.

 

은하수가 흐르는 아름다운 여울, 한탄강

철원 땅에 들어서니 차갑지만 맑고, 강하지만 유연한 한탄강이 비쳐온다. 탄식한다는 한탄(恨歎)으로 오해하기 십상인 이 물길은 ‘은하수가 흐르는 아름다운 여울’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한탄(漢灘)이란 ‘한여울’ 곧 큰 여 울을 뜻하는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만 년 전 이곳은 북쪽에서 흘러온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위로 비가 내리고 물이 흐르면 서 용암지대는 깎이고 녹아내렸다. 천혜의 절경 한탄강에는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이 깃들어 있다.

가파른 수직 절벽 아래로 철원을 가로지르는 한탄강은 거대한 석벽을 울타리 삼아 대지 깊은 곳을 흘러간다. 절 벽 아래로 흐르다 보니 평야에서는 그 속살을 제대로 보기 힘들다. 배를 타야만 그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다. 배에 오르니 양옆 물길 사이로 웅장하게 서있는 거대한 암벽들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잔잔한 물살과 구비 도는 협곡을 따 라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풍광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한탄강 최고의 풍광은 고석정(강원도 기념물 제8호)이다. 10m 높이의 기압괴석과 푸른 소나무가 어울린 모습이 한 폭의 겨울 산수화다. 고석정에는 조선시대 의적인 임꺽정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임꺽정은 바위 중간 자연 동굴에 은신하며 건너편 산에 석성을 쌓고 의적활동을 했다고 한다. 관군이 가까이 추격해오면 꺽지 라는 물고기로 변해 물속에 숨었다는 전설도 있다. 그래서 꺽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무기의 전설이 전해지는 송대소에서는 한탄강을 대표하는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주상절리는 지류 깊숙한 곳 까지 흘러든 뜨거운 용암이 물과 만나 굳어버린 흔적이다. 액체상태의 마그마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만들어낸 결정구 조는 큐빅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박아놓은 듯 신비롭고 정교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수십만 년 전 뜨거운 불길의 흔적 을 품은 한탄강은 화산과 물 그리고 억겁의 시간이 만들어낸 자연이 준 선물이다.

 

02. 한탄대교와 나란히 자리한 승일교(등록문화재 제26호)

 

함께 만들었지만 같이 달리지 못한 다리, 승일교

한탄강 위, 붉은 아치가 아름다운 한탄대교 바로 옆에는 남과 북이 함께 만들었다는 승일교(등록문화재 제26호) 가 있다. 1948년 북한에서 공사가 시작된 승일교는 미완성 상태로 6.25전쟁을 맞았고, 가장 치열한 전쟁터였던 철원 수복 이후 남한 정부가 반쪽만 남아있던 승일교를 완공했다. 그래서 6.25전쟁 발발 전에 만들어진 다리는 구소련의 유럽식 공법이, 철원 수복 이후 만들어진 쪽은 미국식 공법으로 만들어 졌다. 중간을 보면 서로 다른 공법이 확연하 게 보인다.

그래서 남북 합작으로 완성된 이 다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승’ 자와김일성의 ‘일’ 자를 따서 승일교라는 기 막힌 이름을 만들어냈다. 남북이 갈라진지 61년, 오늘도 그 다리 아래로 흐르는 한탄강은 현대사의 질곡을 말없이 흘려보내고 있다. 함께 만들었지만 같이 달리지는 못했던 다리, 승일교. 이곳에 서니 분산의 역사가 현실이 된다.

 

새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청정의 땅

추수가 끝난 드넓은 철원 평야의 겨울 들녘은 쓸쓸하다. 이맘 때 철원평야에서 풍요를 누리는 이들은 따로 있다. 머나먼 북쪽나라에서 날아드는 찾아드는 귀한 손님, 철새들이다.

사람의 왕래가 적은 민통선과 넓은 평야가 있는 철원은 철새들이 겨울을 나기에 제격이다.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도 겨우 내 철원에 들판에서 체력을 보충한 뒤 남쪽 나라로 날아간다. 민통선 안에 위치한 양지리 마을의 별칭은 ‘철새마을’. 이곳에는 새들과 지혜롭게 공존하는 법을 아는 가슴 따듯한 이들이 살고 있다. 겨울이 되면 양지리 사람들은 분주하다. 먼 곳에서 찾아온 철새 손님을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고, 철새들의 먹이가 부족한 시기 가 되면 강산저수지 앞, 샘통철새도래지, 대마리 등 철새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규칙적으로 먹이를 뿌려주고 있 다.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온 새와 그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양지리 사람들에게 새는 어느새 삶의 한 부분 이 되었다.

 

굴곡진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낸 현장

철원은 한국전쟁 당시 남과 북이 서로 밀고 밀리던 치열한 격전지로 우리의 아픈 현대사가 고스란히 관통해온 지 역이다. 지금도 이 땅에는 전쟁의 상처와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민통선 안쪽 안보관광을 하기 위해 고석정 안내관광소를 찾았다. 이곳에서 간단한 출입 절차만 거치면 하루 4번 자기 차량을 이용해 민통선 안을 관광할 수 있다.

안보관광 첫 번째 행선지는 1975년 발견 된 제2땅굴. 높이 2m의 아치형 터널로 만들어진 제2땅굴은 지하 50~160 미터 지점에 있다. 총길이는 3.5㎞, 그 중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1.2㎞가 내려와 있었다고 한다. 정전 2만 여일이 지 났지만 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닌 멈춘 상태인 듯하다.

평화전망대에 오르니 북녘과 남녘땅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비무장지대와 궁예의 성터, 북한의 평강고원 삼전 마을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6.25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인 백마고지 전투의 현장도 보인다. 10일 동 안 불과 395m의 고지 하나를 두고 국군과 중공군 수천여 명이 전사한 곳이다. 당시 열두 차례의 공방전에서 24번이 나 주인이 바뀌는 동안 발사된 포탄만 30여만 발, 포획이 거친 고지는 수목이 다 쓰러지고 흡사 백마가 누워있는 형 상으로 변했다.

산과 들은 맞닿아 있는데 더 이상 나아갈 수는 없는 땅. 갈수 없는 길과 두 발로 들어설 수 없는 땅을 바라보고 만 돌아서자니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사실이 실감이 난다.

 

멈춰선 길은 아프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월정리 역에 도착했다. 원래는 비무장지대에 있었던 것을 이전해 놓은 것이다. 예전 서울을 출발한 기차는 월정리역을 지나 금강산을 향했다. 이 철길을 따라 기차를 타고 북으로 여행을 가던 시절도 있었다. 전쟁으로 끊어진 철길은 이제 열차도 사람도 더는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이 되었다.

역사 뒤편으로 들어서니 잘린 철길 위로 포탄을 맞아 부서진 열차가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 채 누워있다. 잘린 철 길은 허리가 잘린 한반도의 현실을 말해주는 듯 하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하지만 끊어져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 멈춰 선 길은 아프다.

전쟁 당시 폭격으로 지금은 앙상한 형체만이 삼층으로 남아있는 노동당사(등록문화재 제22호)에 서니 건물에 남 아 있는 벌집 같은 총탄 자국에서 격렬했던 6.25전쟁의 아픔이 느껴진다.

체재와 이념이 첨예하고 부딪히고, 민족이 갈리는 슬픈 역사가 새겨진 땅. 포탄에 무너지고 세월에 깎이고 뼈대 만 간신히 남은 건물이 전쟁의 흔적들은 아직도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한다.

민족의 허리가 철조망으로 갈린 지 61년. 무심한 세월은 쌓이고 쌓여 거대한 벽이 되어버렸다. 그 경계의 땅위로 철새들만이 남과 북을 자유로이 오가며, 아름다운 공존의 법칙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03. 서울에서 원산까지 이어진 경원선 철도의 간이역이었던 월정리역. 남방한계선에 근접

한 최북단에 있다.

04. 철원 비무장지대와 북한지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평화전망대 05. 파괴되고 녹이 

슬어 더 이상 달리지 못하는 우리 현대사의 상징 철마(鐵馬)

06. 6.25전쟁 이전에 북한 지역이었던 철원 노동당사(

등록문화재 제22호)가 휴전 이후 남한 지역에 남았다.

 

글 이현주 사진 남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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