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기고
- 제목
- 문화재의 뒤안길(96) - 고려도경 (서울경제, '21.6.21)
- 작성자
- 진호신
- 게재일
- 2021-06-21
- 주관부서
- 대변인실
- 조회수
- 1595
문화재의 뒤안길(96) (서울경제, '21.6.21)
송나라 사신이 본 900년 전 고려
고려도경(高麗圖經)
글/ 진호신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 고려도경./사진 제공=문화재청
[서울경제] 서긍(徐兢)은 중국 송나라 휘종(徽宗) 때 문신(文臣)으로 고려에 파견된 사신이다.
일행은 지난 1123년 관선 신주(神舟) 2척, 민선 객주(客舟) 6척을 대동하고 중국의 무역항 영파를 출발해 고려의 예성항에 도착했다. 서긍 일행은 고려의 수도 개경(開京)에 한 달 남짓 머무르면서 고려의 풍속·인물·궁전·바닷길·선박 등 많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40권을 저술했다.
이 책은 본래 글과 그림으로 이뤄져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림은 발견되지 못했고 사행기록 40권만 오늘날에 전해져 사료가 부족한 900년 전 고려시대 역사에 관해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11~13세기에는 수많은 송나라 상인과 사신들이 고려를 왕래하던 시기다.
역사서에 기록된 송나라 상인만 해도 무려 5,000명에 이르고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고려를 방문했다. 이와 같이 고려는 바다를 통해 개방적이고 국제적 문화가 꽃피었던 문화적 황금기를 누렸다.
다가오는 2023년은 서긍의 고려도경이 저술된 지 900주년이 되는 해다.
서긍 일행과 송나라 상인들이 이용했던 우리나라 서해 바닷길 곳곳에는 11~13세기 문화적 르네상스를 누렸던 해양 실크로드 문화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것은 흑산도-위도-선유도-태안 마도-영종도-강화도-예성항 벽란도로 이어지는 해상 문화 유적이다.
흑산도 무심사 인근에는 통일신라부터 내려오는 객관(客館) 터가 주춧돌과 함께 오늘날에 전해져 오고 있으며 군산시 선유도 망주봉 인근에도 최고급 고려청자와 기와가 다량으로 산포돼 있는 객관 유적이 있다.
서긍 일행이 정박했던 부안군 위도(蝟島)는 예로부터 고슴도치섬으로 불리며 송대 상인들의 해상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던 치도리 마을 유적이 있으며 강화도 용당돈대 인근에도 송대 상인들이 제사를 지냈던 합굴용사(蛤窟龍祀)라는 제사 유적이 남아 있다.
지금은 갈 수 없지만 북한의 개풍군 예성강 입구 벽란도에도 송대 사신들이 머물렀던 벽란정(碧瀾亭) 유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최근 국토 개발 붐을 타고 소중한 우리의 해양 역사 유적이 많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오는 2023년 고려도경 900주년이 사라져가는 해양 실크로드 역사 유적을 체계적으로 발굴·복원해 관광 자원화하고 동북아시아 제2의 문화적 황금기를 열어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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