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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순신 장군이 선택한 전략적 요충지 ‘천성진성’ (天城鎭城)
작성일
2022-07-2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701

이순신 장군이 선택한 전략적 요충지 ‘천성진성’ (天城鎭城) 부산 가덕도에서 대한해협 방향을 바라보면 시야를 가리는 섬이 없어 대마도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그 때문에 대마도에서 바다를 건너온 왜군을 바로 맞닥뜨리는 천성진성은 조선시대 최전방 수군진성이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봉화를 올렸던 연대봉(煙臺峯) 아래 위치한 천성진성의 입지는 ‘하늘이 내린 성’이라는 이름만큼 탁월하다고 평가된다.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는 임진년(1592) 안골포해전 중 왜군을 쫓던 이순신 장군이 직접 천성진에 상륙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01.천성진성의 동쪽 성벽에서 확인된 안쪽의 대형 계단

조선의 역사와 함께한 천성진의 흥망성쇠

천성진성은 삼포왜란과 사량진왜변을 계기로 중종 39년(1544)에 가덕진과 함께 축성됐다. 임진왜란 당시 천성진성은 조선 수군 활동의 주목표 지역으로서 중요한 위상을 가지며 이순신 장군은 천성진성을 중간기지로 삼아 부산포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남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효종 3년(1652)에는 천성진을 안골포에 있는 신문(新門)으로 옮겼으며, 효종 7년(1656), 가덕도의 원래 위치로 이설했다. 고종 8년(1871)까지 왜선과 이양선 등의 출현에 따라 외적 방어 역할을 맡게 되지만, 고종 32년(1895) 갑오개혁 이후 군제 개편으로 쇠락했다.


천성진성의 규모와 성곽 수리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는데 1872년 지방도 〈천성진도〉에 관아건물과 4대문만 간략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외딴섬 가덕도에 있어서일까, 천성진성은 빈약한 사료와는 달리 양호한 모습으로 남아 1989년 부산광역시 기념물이 되었다. 부산박물관은 2016년 부터 현재까지 5차례 발굴조사를 진행하면서 축성 당시의 모습과 복진 후 변화상을 밝혀 나가고 있다.


발굴조사는 천성진성이 처음 축성됐던 시기에 만들어진 동쪽 성벽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성벽 위에서는 건물 흔적을, 성벽 안쪽에서는 대형 계단을 확인했다. 성벽 위 건물지는 천성진성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이자 천성항과 진해만을 넓게 관망하는 위치에 있어 장수가 올라서서 명령, 지휘하는 장대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성벽 위 건물로 올라가기 위해 만든 계단은 그 폭이 5.5m에 달해 현재까지 조사된 수군진성의 계단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이 부분의 성벽 기초부에서 ‘가정18년’(嘉靖十八年, 1539년) 명문기와, 조선시대 전기로 편년되는 자기 등이 출토돼 초축 당시의 성벽임을 알 수 있다. 건물지 바닥에 깐 와전(瓦塼), 대규모 계단 시설 등을 통해 그 위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02.1872년 군현지도(─年郡 縣地圖) 천성진도 ©규장각한국학 연구원 03.천성진성에서 출토된 두정갑의 철미늘 04.연대봉과 천성진성

치열했던 해전사를 간직한 곳

복진 후 천성진성은 동쪽과 북쪽 성벽 바깥으로 대대적인 증축이 이뤄졌다. 2016년 조사에서 돌출된 성벽 안쪽에서 원래 성벽 흔적을 확인해 처음 축성되었을 때 직사각형이었던 성곽이 복진 후 현재의 형태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2021년에는 성내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인 객사를 찾기 위한 조사를 추진했으며, 〈천성진도〉에 객사가 그려진 위치에서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큰 기둥자리를 발견하여 객사로 특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편 두정갑(頭釘甲) 철미늘[鐵甲札]의 다량 출토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수확이었다. 두정갑이란 두루마기 형태의 옷 안에 갑옷미늘을 부착하는 방식의 조선시대 갑옷으로 겉에서 보면 갑옷미늘이 보이지 않고 갑옷미늘을 고정시키는 못 머리[頭釘]만 보인다. 2021년 객사터 발굴조사 현장에서 발견됐는데 옷감은 삭아 없어지고 못머리가 부착된 철제 미늘만 560여 점 수습됐다. 갑옷 5벌은 족히 될 것 같은 수량으로, 부산대학교 윤용출 교수는 “1905년 내부(내무부)와 외부(외무부) 사이에 내왕한 공문서에 ‘가덕진의 갑주(갑옷·투구) 5건을 탈취해 천성으로 가져와 갑옷은 천성진에 버리고, 필요한 것은 천성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했다’라는 기록과 관련된 것”이라고 추정했다.


천성진성은 우리 땅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수군진성 가운데 이순신 장군의 해전사와 조선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유적이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앞으로 적절한 조사와 보존이 병행된다면 천성진성의 역사를 실체로 드러내어 직접 당시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우리 곁의 역사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사진. 김유정(부산광역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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