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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본의 평성경
작성일
2017-05-08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4073

멀리 100년 앞을 내다본 문화재 조사와 복원 - 일본의 평성경 평성경은 일본 고대 궁궐 평성궁 유적을 포함한 방대한 도성터다. 나라문화재연구소는 도성과 궁성터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쌓으면서 50년 이상 기획발굴을 해왔다. 반세기 가량 유적을 확인하고, 수차례의 가상 모형실험 등을 통해 몇십 년 간 복원 과정을 수행해왔다. 문화재 복원을 위한 100년을 내다본 장기 계획을 들여다본다. 평성경 내 동대사

정치·외교·경제의 중심, 도성의 가치

고대와 중세에는 자신의 권위를 도성의 외관을 통해 표현했다. 왕실과 지배계급들은 그들의 권력을 보여주기 위해 또는 주변 국가에 자국의 국력을 과시하는 목적으로 도성의 조영과 치장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도성의 위용은 현대인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도성을 조영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인력, 그리고 돈과 기술이 필요하다. 후보지가 정해지면 관리와 기술자들이 시찰하고 설계에 들어간다. 주변 국가나 과거 도성제의 장단점을 따져서 설계를 하는 동시에 도성의 조영을 책임질 관청을 만들고 담당자를 뽑아서 배치한다. 도성이 들어설 장소에 이미 거주하던 백성들이 있으면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고, 필요한 자재(돌, 나무, 기와, 철물 등)를 마련하는 한편, 물자의 운반을 위한 도로나 운하를 만들기도 한다. 자연 상태인 부지의 낮고

 

습한 곳은 메우고, 높은 곳은 깎아서 평탄하게 정비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왕궁과 관청, 사찰 같은 중요 건축물이 들어설 곳은 지반을 강화하는 토목공사를 실시하여야 하는데, 홍수나 가뭄에 대비하여 강물의 흐름을 바꾸거나 제방을 쌓는 경우도 있다.

토목공사가 마무리되면 본격적인 건축공사에 들어간다. 도성내부를 바둑판처럼 정연하게 구획하고 크고 작은 도로를 배치한다. 도성의 중앙, 혹은 북측에 왕궁이 마련되고 그 주위에 관공서, 귀족의 저택이 차례로 들어서게 된다. 중요 사원, 시장과 창고도 접근성이 좋은 곳에 배치된다. 모든 공사가 끝나면 점을 쳐서 좋은 날을 잡아 이주를 시작한다.

이렇듯 고대와 중세의 도성은 정치, 경제, 제례, 외교의 중심무대이자 첨단 과학과 기술의 총체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적 중에 도성과 관련된 것이 유독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의 국내성, 백제의 공산성과 사비도성, 신라의 월성, 그리고 고려의 도성인 개성이 모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710년부터 784년까지 고대 일본의 도성이었던 평성경은 사찰, 신도건축과 함께 고대 나라의 역사적 기념(Historic Monuments of Ancient Nara)이란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다.

(좌)평성경 유물 (우)등원궁 발굴

느려도 한 발 한 발 정도(正道)를 밟는 복원

어느 국가나 자국의 고대 도성 유적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며 우리와 일본도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화재 조사기관은 나라문화재연구소이다. 1952년에 국가기관으로서 설립된 나라문화재연구소는 원래 고대 사찰 조사를 목적으로 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하여 고대 도성 유적이 파괴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도성 유적의 조사와 연구, 전시와 보존을 전담하는 종합연구기관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1963년에는 평성경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왕궁 자리, 즉 평성궁 발굴조사를 전담하는 조사부가 설치되었다. 10년 후인 1973년에는 평성경 이전 시기의 도성인 아스카(飛鳥)와 후지와라(藤原)에 대한 조사를 담당하는 조사부를 결성했다. 이로써 나라문화재연구소는 고대 일본의 도성 유적을 전담하는 종합연구기관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물론 도성 유적만을 조사하는 것은 아니어서 나라일대에 분포하는 사원이나 왕릉조사도 겸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이용하여 해외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요 업무는 고대의 도성 유적 조사와 복원이다.

1965년 최초의 발굴조사 이후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평성경 내부에서 총 1,000회가 넘는 크고 작은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모든 조사 결과는 치밀하게 정리됐고 최고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유적의 성격을 토론했으며 그 성과를 전시와 도록, 연구물로 풀어내었다. 궁 내부의 주작문, 태극전, 동원정원 등이 복원되었고, 궁 바깥의 사원, 정원과 시장 등지로 조사가 확산되고 있다. 나라문화재연구소는 8세기 일본 고대사 연구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손에 의해 조사·복원된 아스카, 후지와라, 헤이죠(平城) 3개의 도성은 자신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긍지이기도 하다.

사전 준비와 꼼꼼한 매뉴얼 마련은 일본의 장점이다. 문화재의 조사와 복원에서는 느리게 보이더라도 장기적인 계획과 전략을 수립하여 한발씩 내딛는 방식만이 최선이다. 나라의 도성 유적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나라문화재연구소의 장기간에 걸친 활동은 우리에게도 좋은 시사점을 준다.

글+사진‧권오영(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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